[여성 선언]우리 사회 투시경 문화

[여성 선언]우리 사회 투시경 문화

박미라 기자 기자
입력 2000-11-15 00:00
수정 2000-11-15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포르노의 천국 일본에서 투시경 안경을 발명했다고 해서 아연실색한적이 있다.그 안경을 쓰면 모든 사람의 나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그렇게 자신의 일상을 포르노로 만들고 싶은 것일까.사실 포르노영화도,한층 실감난 여관방이나 모 여대 앞 몰래카메라도 같은 종류의 결과물 아닌가.포르노의 주인공이 아닌 주변사람들까지 모두 벗겨 알몸을 확인함으로써 그 사람들을 단순히 성적인존재로 바라보겠다는 인간들의 심술은 진지하게 분석해 볼 만하다.그걸 인간의 본능이라고 얘기하기에는 너무나 집요하고 반(反)사회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습성은 주로 남성이 가지고 있는 듯하다.며칠 전에도 참으로 민망스러운 뉴스 하나가 인터넷 매체인 오마이뉴스를 시작으로해서 몇몇 신문 지면을 장식한 적이 있었다.이정빈 외무부장관이 미국무장관인 올브라이트의 가슴을 두고 한 농담이 화근이 된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이 장관은‘아셈 뒷풀이’장소에서‘올브라이트와 포옹을 해보니 나이가 60이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가슴이 탱탱하더라’는 발언을 한 것이다.

농담이었음직한 이런 부류의 발언은 안타깝게도 미 국무장관에 그치지 않고 다시 한국의 평범한 여성들에 대한 언급으로 이어졌다.‘방송 심야토론에 나가 토론을 하면서 졸릴 때마다 방청객으로 온 여성들의 짧은 스커트 속 팬티를 보면서 잠이 깼다’는 말이 그것이다.

비슷하게 기억나는 사건이 하나 더 있다.지난 7월쯤 환경부 소속 기관인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 위원장이 공개 석상에서 김명자 환경부장관을 일본식 이름인‘아키코’라고 부르면서 한 말이 물의를 빚었다.그 역시 술자리에서 환경부장관을‘우리 마누라보다 얼굴이 곱다’는 둥‘여자가 안경을 쓰면 매력이 떨어지니 벗고 다니라’는 둥의말을 여기자들에게 했다가 사퇴했다.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해본 남성들이라면 알 것이다.이런 유의 발언으로 사퇴까지 한다는 게 남자로서는 참으로 운없는 경우라는 사실을말이다.그런 얘기를 허심탄회하게 할 수 있는 남자라면 그들만의 세계에서는 솔직하고 유머있는 괜찮은 남자가 아닌가.또 직장생활을 한여성들은 생각할 것이다.‘그런 경우도 문제가 된다면 사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남성들이 잘려야 한다’고 말이다.

그만큼 이런 말들은 사석·공석을 막론하고 수시로 얘기되고 있어서새삼스러울 것도 없는,지루하기까지 한 뉴스라는 것이다.혹자는 그런구설수를 만들어내는 우리의 술자리 문화를 개탄하기도 하지만 사실남자들의 생각을 좀더 솔직하게 만들어줄 뿐인 술이 무슨 죄이겠는가.

그러고 보면 남성들은 참 대단하다.자기 앞에 선 여자들이 어떤 일을하는 사람이건 간에 순식간에‘여자’로 만들어버리는 막강한 재주를 가졌으니 말이다.그녀가 미국 국무장관이라는 역할을 남자 이상으로 강단있게 해내든 말든,자신의 상사이든 말든,자신을 취재하러 온기자이든 아니든 그런 건 상관없다.남자들 앞에서 여자는 그저 가슴과 외모로 판단되는 한 명의 여자일 뿐인 것이다.

종종 성공하려는 여성들에게 세상은 이런 충고를 한다.“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여성들 자신이 더 문제다.유리 천장을 걷어내고 남자들처럼 과감하고 적극적으로 일에 뛰어들라”고말이다.그러나 교단에 선 선생님에게,공식 석상에 선 정치인에게 보내는 남성들의 시선이 그녀의 말이나 행동에 가 있지 않다면,투시경이라도 쓴 것처럼 그녀의 얼굴 생김새나 알몸을 훑고 있다면 도대체여성들은 얼마나 유능해질 수 있을까.얼마나 강한 심장과 두꺼운 얼굴을 가져야 그 시선을 무시할 수 있을까 말이다.투시경 안경을 갖고싶은 욕망을 생각한다면 길거리를 지나는 어떤 여자든 인간으로서당당하게 가슴 펴고 다닐 수조차 있는 것일까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박 미 라 if 편집위원
2000-11-15 6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탈모약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재명 대통령이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탈모는 생존의 문제”라며 보건복지부에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탈모를 질병으로 볼 것인지, 미용의 영역으로 볼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이 정치권과 의료계, 온라인 커뮤니티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당신의 생각은?
1. 건강보험 적용이 돼야한다.
2. 건강보험 적용을 해선 안된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