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산상봉/ 北 하경씨 재혼 부인과 극적 해후

남북이산상봉/ 北 하경씨 재혼 부인과 극적 해후

조현석 기자 기자
입력 2000-08-18 00:00
수정 2000-08-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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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의 부인을 만나지 못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던 북한의 영화 촬영감독 하경씨(73)에게 귀환 하루를 앞둔 17일 경사가 겹쳤다.

지난 두차례 상봉에 나타나지 않았던 부인 김옥진씨(78)와 함께 육군 모부대에 근무 중인 장손자 종훈씨(23)가 ‘특별 휴가’를 얻어상봉장에 나왔기 때문이다.

하씨는 그동안 “50년 전 헤어진 아내에게 죽기 전 마지막 속죄라도하고 싶다”는 애틋한 ‘망부가’를 여러차례 피력했으나 부인 김씨가 수절하지 못한 죄책감과 재혼해 낳은 자식들에 대한 미안함이 겹쳐 만남을 꺼리는 바람에 이틀밤을 실의에 빠져 보냈었다.

김씨는 이날 오후 4시에 시작된 마지막 개별 상봉장에도 나타나지않았다.

“이제 죽기 전엔 못보갔구만…” 하씨는 더 이상 아내의 얼굴을 볼 수 없다고 체념하는 빛이 역력했다.

그렇게 30분쯤 지났을까.50년 전의 새색시처럼 화사하게 차려입은부인 김씨가 종훈씨와 함께 707호실 문을 열고 나타났다.하씨의 얼굴이 환해졌다.

하씨는 “왜 이제 왔노,옛날 고운 모습은 그대로구려…”라며 뜨겁게 김씨를 껴안았다.김씨는 “미안해요”라며 젊은 시절 ‘멋쟁이’남편이 즐겨 끼었던 ‘선글라스’를 선물로 가져와 남편 얼굴에 끼워주곤 울음을 터뜨렸다.옆에서 지켜보던 아들 문기(55) 정기(54) 승기(51)씨와 적십자사 관계자들도 울었다.

하씨와 김씨는 지난 45년 광업진흥회사에서 사내 커플로 만나 열애끝에 1년만에 결혼했다. 하씨는 옆에 있던 문기씨가 김씨와 함께 온 육군 상병 종훈씨를 장손자라고 소개하자 자신의 젊은 시절 모습을 꼭 닮은 데 대해 또 한번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인하대 화학과 2학년에 다니다 지난해 군에 입대한 종훈씨는 북에서 할아버지가 왔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부대장의 배려로 특별휴가를 나왔다.

종훈씨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만나는 모습을 보니 무척 기쁘다”면서 “통일이 되면 할아버지와 함께 살겠다”며 할아버지의 두손을꼭 잡았다.

북한 방문단 중 가장 안타까움을 샀던 하경씨가 방북단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다시 만날 기약도 없이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여보,만나자마자 헤어져야 하는구려.우리 또 언제 만날 수 있겠소?” “건강하면 만날 수 있겠지요” 하씨는 다시 눈물을 쏟아내며 김씨를 껴안은 뒤 복도까지 쫓아나오며 안타깝게 손을 흔들었다.

조현석기자 hyun68@
2000-08-18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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