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상반되는 가치가 조화를 이루어 가는 것이 세상 이치인 듯하다.음(陰)과 양(陽)이 그렇고,명(明)과 암(暗)이 그렇다.‘느림’과 ‘빠름’도 그 중하나일 것이다.
광속(光速)시대를 맞아 ‘빠름’은 그야말로 필수적인 생존무기가 되고 있다.‘21세기에는 속도가 가치를 창출한다’는 빌 게이츠의 속도론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빠름’은 디지털시대의 관건임이 분명하다.주위를 둘러보아도 온통 속도와의 전쟁일 뿐이다.디지털사회는 우리에게 더 빨리 보고,더빨리 정보를 얻고,더 빨리 반응하기를 원한다.그리고 세상은 모든 일을 빠르게 척척 처리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움직인다.그런데도 우리는 빠르게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더 빨리 움직일 것을 강요당하고 있다.한때 빠른 움직임으로인정받던 사람들조차 인터넷과 정보로 무장한 신세대들의 속도앞에서는 주눅이 들 따름이다.때마침 미국에서는 광속(초속 30만㎞)보다 빛이 더 빨리 움직일 수 있다는 실험결과가 나와 화제가 되는 모양이다.그러나 이 또한 따지고 보면 속도에 대한 현대인의 집착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특수상대성 이론의 대전제인 광속 불변원리가 수정될 처지에 놓여 있을 정도로 ‘빠름’을향한 희구는 정녕 끝이 없는 것일까.
아이러니컬하게도 요즘 이탈리아에서는 ‘느린도시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투스카니와 움브리아 지방의 그레베시 등 33개 소도시가 ‘느린도시(Citta Slow)’로 탈바꿈을 선언해 자동차를 몰아내고 현대식 건물을 짓지 않으며,유전자변형(GM) 식품을 팔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숨막히게 바쁜 일상을 벗어나 ‘느림’의 여유를 되찾아 보자는 취지일 터이다.
프랑스 철학자이자 작가인 피에르 쌍소는 국내 서점가에도 돌풍을 몰고온‘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에서 이렇게 외치고 있다.“일할 때도 빨리,놀때도 빨리,세상 모든 일을 재빠르게 해치우는 사람들은 불행을 자초하고 있다.그들은 늘 빨리빨리 살면서 스스로 불행하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불행을불러들이고 있을 뿐이다”.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느림은 빠른 속도로 박자를 맞추지 못하는 무능력이나 게으름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시간을 급하게다루지 않고, 시간의 재촉에 떠밀리지 않으면서 나 자신을 잃어 버리지 않는능력을 갖는 것이다” 사실 우리 조상들에게도 ‘느림’은 곧 한가로움이며,이 한가로움은 ‘유유자적’이나 ‘관조’와 같은 여유와 풍류로 통했다.앞만 보고 달려나가다 보니 진지하게 책임감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 드문 세상인 것같다.그러한 책임부재는 여기저기서 후유증을 남겨 결국에는 빨리 달려간 것이 부질없었음을 우리는 수없이 목도해왔다.‘느린도시’를 가꿔서라도 ‘느림’을 확보해야 할 사람은 정작 ‘얼른! 후딱! 퍼뜩!’에 물든 우리민족이 아닐까.
朴建昇논설위원 ksp@
광속(光速)시대를 맞아 ‘빠름’은 그야말로 필수적인 생존무기가 되고 있다.‘21세기에는 속도가 가치를 창출한다’는 빌 게이츠의 속도론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빠름’은 디지털시대의 관건임이 분명하다.주위를 둘러보아도 온통 속도와의 전쟁일 뿐이다.디지털사회는 우리에게 더 빨리 보고,더빨리 정보를 얻고,더 빨리 반응하기를 원한다.그리고 세상은 모든 일을 빠르게 척척 처리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움직인다.그런데도 우리는 빠르게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더 빨리 움직일 것을 강요당하고 있다.한때 빠른 움직임으로인정받던 사람들조차 인터넷과 정보로 무장한 신세대들의 속도앞에서는 주눅이 들 따름이다.때마침 미국에서는 광속(초속 30만㎞)보다 빛이 더 빨리 움직일 수 있다는 실험결과가 나와 화제가 되는 모양이다.그러나 이 또한 따지고 보면 속도에 대한 현대인의 집착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특수상대성 이론의 대전제인 광속 불변원리가 수정될 처지에 놓여 있을 정도로 ‘빠름’을향한 희구는 정녕 끝이 없는 것일까.
아이러니컬하게도 요즘 이탈리아에서는 ‘느린도시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투스카니와 움브리아 지방의 그레베시 등 33개 소도시가 ‘느린도시(Citta Slow)’로 탈바꿈을 선언해 자동차를 몰아내고 현대식 건물을 짓지 않으며,유전자변형(GM) 식품을 팔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숨막히게 바쁜 일상을 벗어나 ‘느림’의 여유를 되찾아 보자는 취지일 터이다.
프랑스 철학자이자 작가인 피에르 쌍소는 국내 서점가에도 돌풍을 몰고온‘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에서 이렇게 외치고 있다.“일할 때도 빨리,놀때도 빨리,세상 모든 일을 재빠르게 해치우는 사람들은 불행을 자초하고 있다.그들은 늘 빨리빨리 살면서 스스로 불행하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불행을불러들이고 있을 뿐이다”.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느림은 빠른 속도로 박자를 맞추지 못하는 무능력이나 게으름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시간을 급하게다루지 않고, 시간의 재촉에 떠밀리지 않으면서 나 자신을 잃어 버리지 않는능력을 갖는 것이다” 사실 우리 조상들에게도 ‘느림’은 곧 한가로움이며,이 한가로움은 ‘유유자적’이나 ‘관조’와 같은 여유와 풍류로 통했다.앞만 보고 달려나가다 보니 진지하게 책임감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 드문 세상인 것같다.그러한 책임부재는 여기저기서 후유증을 남겨 결국에는 빨리 달려간 것이 부질없었음을 우리는 수없이 목도해왔다.‘느린도시’를 가꿔서라도 ‘느림’을 확보해야 할 사람은 정작 ‘얼른! 후딱! 퍼뜩!’에 물든 우리민족이 아닐까.
朴建昇논설위원 ksp@
2000-07-26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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