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의 광주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그리고 오늘 2000년 5월의 광주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80년 5월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그리고 2000년 5월 오늘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많은 세월이 흐르면서 1980년 5월의 광주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사람들에게다가가고 있다. 그 동안 우리는 5·18에 대한 무관심과 외면으로 혹은 한을안고 살아 왔거나,5·18을 또 하나의 기회로 삼고 허둥대며 20년이란 세월을살아왔다.
이러는 동안 5·18은 계층별,지역별,또는 정치적 이념에 따라 다양하게 채색되고 포장된 채 각양 각색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던 것이다.
그러나 무심한 세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은 5·18은 80년대와 90년대를거치면서 우리 사회의 변화와 맞물려 보편적인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사실이다.5·18은 독재의 암울했던 시절,압제에 저항하는 민주화의 상징이었다.모두가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던 시절 5·18은 신군부 등장의 서곡이자 동시에 종식을 재촉했던 기폭제가 되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한 커다란 시금석이 됐던 것이다.
나아가 5·18은 우리가 지켜야 했지만 그 동안 각박하고 고단했던 세월 속에서 잃어버리고 살아왔던 우리 자신들의 참모습을 다시 일깨워 주는 상징이기도 하다.80년 5월의 광주는 서로가 서로를 아끼며 걱정하는 눈물나도록 정겨운 곳이었고 우리 본래의 이웃사랑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삶의 공간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뿐만 아니라 5·18은 국가권력의 폭력 앞에 허물어지는 인간의 존엄성을 온몸을 던져 지키고자 했던 처절한 외침이었다.삶과 생명의 소중함에는 가진자와 못가진 자,배운 자와 못배운 자,힘있는 자와 힘없는 자간에 차별이나높낮이가 있을 수 없는 그런 아름다운 세상을 오늘도 망월동의 영령들은 소리없이 기다리고 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5·18이 지니는 이러한 보편적인 상징적 의미가 어떤이념이나 특정집단 혹은 특정지역의 이해관계에 의해 무시되고 왜곡되거나또는 지나치게 미화돼서도 안된다는 점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그동안 5·18은 우리 국민 모두의 5·18이 아니라 광주지역과 그 지역주민들만의 것이었고 참여자만의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5·18이었다.
나머지는 방관자 내지는 가해자처럼 5·18을 외면하거나 또는 그렇게 취급해 왔다.이러한 보편적 상징의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독점이라는 이율배반적인 현상은 그 동안 5·18이 각종 이념과 이해관계들로 도색되고,지역감정으로 멍들고,정치판의 도구로 악용되어 왔던 결과인 것이다.
이렇게 5·18은 우리 모두의 소중한 상징으로 공유되지 못하고 지역적이고지엽적인 한계를 지닌 채 20년이란 세월을 지내왔다.그럼에도 불구하고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5·18은 여전히 우리 모두가 지향하고 만들어가야 할,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끊임없이 붙들고 씨름해야 할 우리자신의 업보이며 한이며우리 모두의 화두이다.이제 5·18을 모든 오염으로부터 해방하여 청정하게다시 태어나게 하여야 한다.이것이 우리 모두의 할 일이며 망월동의 영령들이 편안한 안식에 들게 하는 길이다.
이러한 점에서 5·18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金 斗 植 대구대교수·사회학
그리고 2000년 5월 오늘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많은 세월이 흐르면서 1980년 5월의 광주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사람들에게다가가고 있다. 그 동안 우리는 5·18에 대한 무관심과 외면으로 혹은 한을안고 살아 왔거나,5·18을 또 하나의 기회로 삼고 허둥대며 20년이란 세월을살아왔다.
이러는 동안 5·18은 계층별,지역별,또는 정치적 이념에 따라 다양하게 채색되고 포장된 채 각양 각색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던 것이다.
그러나 무심한 세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은 5·18은 80년대와 90년대를거치면서 우리 사회의 변화와 맞물려 보편적인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사실이다.5·18은 독재의 암울했던 시절,압제에 저항하는 민주화의 상징이었다.모두가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던 시절 5·18은 신군부 등장의 서곡이자 동시에 종식을 재촉했던 기폭제가 되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한 커다란 시금석이 됐던 것이다.
나아가 5·18은 우리가 지켜야 했지만 그 동안 각박하고 고단했던 세월 속에서 잃어버리고 살아왔던 우리 자신들의 참모습을 다시 일깨워 주는 상징이기도 하다.80년 5월의 광주는 서로가 서로를 아끼며 걱정하는 눈물나도록 정겨운 곳이었고 우리 본래의 이웃사랑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삶의 공간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뿐만 아니라 5·18은 국가권력의 폭력 앞에 허물어지는 인간의 존엄성을 온몸을 던져 지키고자 했던 처절한 외침이었다.삶과 생명의 소중함에는 가진자와 못가진 자,배운 자와 못배운 자,힘있는 자와 힘없는 자간에 차별이나높낮이가 있을 수 없는 그런 아름다운 세상을 오늘도 망월동의 영령들은 소리없이 기다리고 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5·18이 지니는 이러한 보편적인 상징적 의미가 어떤이념이나 특정집단 혹은 특정지역의 이해관계에 의해 무시되고 왜곡되거나또는 지나치게 미화돼서도 안된다는 점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그동안 5·18은 우리 국민 모두의 5·18이 아니라 광주지역과 그 지역주민들만의 것이었고 참여자만의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5·18이었다.
나머지는 방관자 내지는 가해자처럼 5·18을 외면하거나 또는 그렇게 취급해 왔다.이러한 보편적 상징의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독점이라는 이율배반적인 현상은 그 동안 5·18이 각종 이념과 이해관계들로 도색되고,지역감정으로 멍들고,정치판의 도구로 악용되어 왔던 결과인 것이다.
이렇게 5·18은 우리 모두의 소중한 상징으로 공유되지 못하고 지역적이고지엽적인 한계를 지닌 채 20년이란 세월을 지내왔다.그럼에도 불구하고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5·18은 여전히 우리 모두가 지향하고 만들어가야 할,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끊임없이 붙들고 씨름해야 할 우리자신의 업보이며 한이며우리 모두의 화두이다.이제 5·18을 모든 오염으로부터 해방하여 청정하게다시 태어나게 하여야 한다.이것이 우리 모두의 할 일이며 망월동의 영령들이 편안한 안식에 들게 하는 길이다.
이러한 점에서 5·18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金 斗 植 대구대교수·사회학
2000-05-19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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