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열 독립투쟁](18)김상옥 의사 <끝>

[의열 독립투쟁](18)김상옥 의사 <끝>

정운현 기자 기자
입력 1999-12-31 00:00
수정 1999-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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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1월 12일 저녁 8시.서울시내 한복판인 종로 네거리에 있던 종로경찰서(현 제일은행 본점자리)에 폭탄이 날아들어 일경과 신문기자 등 수 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당시 종로경찰서는 조선인 탄압의 대표적 기관으로 이곳에 폭탄을 던진다는 것은 엄두도 낼수 없는 일이었다.사건직후 일경은 총동원령을 내려 범인검거에 나섰으나 실패하였다.

사건 발생 10일만에 일경은 겨우 단서를 잡고 범인검거에 나섰는데 검거과정에서 일경측은 간부 등 수 명이 목숨을 잃었고 범인은 자결로 최후를 장식하였다.일제통치의 심장부에 폭탄을 던진 범인은 당시 33세의 조선인 청년김상옥이었다.

김상옥(金相玉) 의사는 1890년 1월 5일 서울 어의동(현 효제동)에서 태어났다.본관은 김해,구한말 군관을 지낸 김귀현(金貴鉉)의 3남 1녀 중 차남으로태어난 김 의사는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14세때부터 낮에는 대장간에서 말 발굽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 가사를 도왔다.러일전쟁후 동대문교회에 나가 기독교에 입교한 김 의사는 1906년 동대문 교회안의 신군(信軍)야학교를 다니며뒤늦게 주경야독하며 시세에 눈을 뜨게 되었다.

이후 어의동 보통학교를 다니면서도 마을 서당에서 한문을 수학하며 배움의 의지를 불태운 김 의사는 20세 되던 해인 1909년 직접 동흥야학교를 세워불우한 청소년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었고,이곳에서 손정도,이종소,임용호 등을 만나 시국을 토로하면서 민족의식을 키워갔다.1912년 김 의사는 동대문밖 창신동에 영덕철물상회를 설립,경영하였다.철물상회는 날로 번창하였으나 김 의사는 망국민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특히 삼남지방의 장터를 다니면서 약을 팔고 기독교를 전도하면서 일제의 조선침략상을 더욱 뼈저리게 체험하게 되었다.

1919년 3·1의거가 발발하자 4월 1일 동대문교회내 영국인 피어슨 여사 집에서 비밀결사 ‘혁신단’을 조직,‘혁신공보’를 발간하여 독립사상을 전파했다.김 의사는 이 해 12월 암살단을 조직하여 일본고관 및 친일파에 대한응징과 숙청을 기도했고 이듬해 4월에는 광복단 결사대의 한훈,유장렬 등과함께 전라도 지방에서 친일파수 명을 총살하고 오성 헌병대분소를 습격,장총 3정과 군도 1개를 탈취하였다.김의사는 이 해 8월 미국의원단 일행이 동양 각 국을 시찰하는 길에 내한한다는 소식에 접하고 5월부터 미국의원단 환영행사에 참석하는 사이토 총독을 암살키로 하였다.그러나 이 계획은 사전에 일경에 탐지되어 함께 거사를 모의했던 동지들이 대거 체포되었다.

한편 상하이로 건너간 김 의사는 의열단에 입단,1921년 7월 국내로 들어와충청도·전라도 등지에서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한 후 다시 상하이로 돌아갔다.김 의사는 1923년 1월 조선총독이 일본제국의회에 참석하기 위해 도쿄로 가는 기회를 이용하여 또다시 총독을 처단키로 하였다.권총 4정과 실탄 수 백발,대형폭탄을 가지고 농부차림으로 변장한 김 의사는 야음을 틈타 압록강철교를 건너 국내 잠입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사전에 정보를 입수한 상하이주재 일본영사관의 통보로 조선총독부에서 엄중한 경계를 편 데다 상하이로부터 들여온 무기를 보관하고 있던 한우석 동지가 일경에 체포되면서 거사는 곤란한 상황에 빠졌다.그러던 중 1월 12일 밤 종로경찰서 투탄사건이 발생했다.이 사건으로 종로경찰서 건물 일부가 파괴되고,행인 7명이 크게 다쳤다.

거사후 김 의사는 삼판동(현 후암동)에 있는 매형(고봉근)집에 은신하였다.

그러나 집요한 추적을 벌이던 일경은 폭탄 투척 후 5일만인 1월 17일 새벽김 의사의 은신처를 급습하였다.종로경찰서 수사주임 미와 경부(警部)의 지휘 아래 20여명의 무장 일경들이 집을 포위한 가운데 총격전이 벌어졌는데이 과정에서 종로경찰서 형사부장 다무라가 사살되고 이마세,우메다 경부 등 수명이 중상을 입었다.일경의 포위망을 뚫고 나와 남산을 가로질러 장충동쪽으로 은신한 김 의사는 왕십리의 안장사(安藏寺)에 이르러 승복으로 변장한 후 일경을 기만하기 위해 짚신을 거꾸로 신고 산을 내려왔다.무내미(현수유리) 이모집을 거쳐 19일 새벽 일경의 경계망을 피해 혁신단 동지인 효제동 73번지 이혜수(李惠受·여)의 집에 은신,동상을 치료하는 한편 앞으로의거사를 구상하였다.그러나 거사 10일만인 1월 22일 새벽 이곳 은신처도 일경에발각되고 말았다.

경기도 경찰부장 우마노의 지휘 아래 시내 4개 경찰서의 기마대와 무장경찰 수 백명이 효제동 일대를 겹겹이 포위한채 결사대가 지붕을 타고 집안으로들이닥쳤다.이후 3시간 반에 걸친 총격전 끝에 일경 10여 명을 살상한 김 의사는 오른쪽 넓적다리에 총상을 입은 채 인근집 화장실로 피신하였다가 단한 발 남은 탄환으로 자신의 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고는 33세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마감하였다.가족들이 김 의사의 시신을 수습하면서 확인한 총상은 무려 열 한 군데였다고 한다.김 의사는 1남 1녀를 두었으나 장남은 해방전에 요절하였고 조카 태운(泰運·72·경기도 수원 거주)씨가 양자로 입적돼있다.

이명화 독립기념관 연구원 * '의열 독립투쟁' 연재를 마치며지난 8월부터 시작된 본 연재는 이번 회로 막을 내린다.8월 13일자 ‘매국노의 상징’ 이완용을 응징한 이재명 의사를 시작으로 그간 의·열사 열여덟 분의 위국헌신(爲國獻身)의 삶을 되새겨 보았다.일황을 처단하려 했던 이봉창·박열·김지섭 의사,조선총독 사이토를 처단하려 했던 강우규·송학선 의사,일제 침략자를 처단(모의 포함)한 안중근·윤봉길·백정기·전명운·장인환·조명하 의사,일제 침략기관에 폭탄을 던진 김익상·장진홍·김상옥·곽재기·박재혁·나석주 의사,친일파를 처단한 이재명 의사,그리고 의열단원으로 일곱 차례나 일경에 붙잡혀 16년동안 감옥생활을 한 김시현 의사 등등.우리 항일투쟁사에서 찬란한 공적을 남긴 의·열사는 이 분들 외에도 무수히많다.그 분들에 대해서는 후일을 기약키로 한다.

연재를 마치면서 한 가지 언급해 두고 싶은 것은 이 분들의 후손들의 삶이다.연재 중 확인결과 대부분의 후손들은 그동안의 소문대로 생활형편이 여유롭지 못했다.대개의 경우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이 큰 원인이었다.특히 몇몇 후손들의 경우 현행 관계법의 문제로 인해 연금수혜조차 받지 못하고 있어안타까움을 더했다.최근 이들 가운데 일부는 선대가 받은 건국훈장을 당국에 반납,사회적 논란을 야기시킨 바 있다.관계당국은 그들을 외면만 할 것이아니라 관계법령을 개정해서라도 대책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다.

조국광복을 위해 일신을 초개와 같이 국가에 바친 의·열사들의 애국적 삶은 한민족과 더불어 유방백세(遺芳百世)할 것이다.

박중화 서울시의원 “지하철·버스 요금 인상 논의, 고물가 속 시민 눈높이 맞춰 신중해야”

서울시의회 박중화 의원(국민의힘, 동대문구 제1선거구)은 최근 거론되는 대중교통 요금 인상 논의에 대해 행정사무감사 교통실 질의에서 우려를 표했다. 박 의원은 장기화된 경기 침체와 고물가로 시민들이 큰 경제적 고통을 겪고 있는 만큼, 서울시가 요금 인상 문제에 보다 신중하고 투명한 태도로 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 의원의 질의에 대해 여장권 서울시 교통실장은 “택시는 현재 인상 계획이 없으나, 버스와 지하철 등은 누적된 요금 인상 요인에 따라 관계기관 협의를 진행 중”이라며 “물가대책위원회 심의 등을 거칠 경우 실제 적용 시점은 내년 여름경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추진 일정을 밝혔다. 이에 박 의원은 “지금 시민들은 아파트 관리비조차 내기 버거울 정도로 극심한 경기 침체와 생활고를 겪고 있다”며 “이러한 시기에 대중교통 요금 인상이 추진된다면 시민들이 체감하는 충격과 반발은 매우 클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박 의원은 “원가 상승이나 무임승차 손실 등 인상 요인이 있더라도, 정책 수립 단계부터 시민들에게 상황을 투명하게 알리고 충분한 사전 소통과 의견 수렴을 거쳐 이해를 구하는 선제적 노력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박중화
thumbnail - 박중화 서울시의원 “지하철·버스 요금 인상 논의, 고물가 속 시민 눈높이 맞춰 신중해야”

정운현기자 jwh59@
1999-12-31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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