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나 리치,샤넬,랑방.발렌티나.
지구촌 누구라도 댈만한 금세기 대표적 브랜드가 디자이너의 이름을 땄고남성이 주름잡고 있는 패션계에서 이들 디자이너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아는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남성이 주도해온 20세기 세계 패션계에서 여성들은 특유의 상상력과 창조력,뛰어난 감성으로 그 한쪽에 우뚝 서있다.자본주의의 빛나는 성장과 함께 패션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며 생활의 질과 품격을 높이는 ‘미의 전도사’로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코코 샤넬’,‘샤넬 넘버5’로 널리 알려져 있는 가브리엘 샤넬(1883∼1971).그녀는 여성스러움의 상징인 ‘샤넬’의 전설을 열었다.버나드 쇼는 ‘세상의 가장 가장 중요한 두명의 여성’으로 마리 퀴리와 샤넬을 꼽았을 만큼 샤넬이 20세기에 남긴 영항은 지대하다.
투피스,쓰리피스로 구성되는 ‘샤넬수트’는 1차대전중 만들어져 세계적 인기를 끌었으며 50년대 다시 유행하다 지금도 여전히 인기를 누리는 디자인이다.그녀의 말대로 ‘패션은 사라져도 스타일은 남는 셈’이다.샤넬,마들렌비요네,발렌티나 사니나 등과 1세대 여성 디자이너로서 명성을 날린 엘자 스키아파렐리(1896∼1971).새로움에의 도전을 즐겼던 그녀는 스포츠웨어와 인공소재를 개척한 선구자였다.
59년에는 메리 퀀트가 미니 스커트를 선보였다.전세계에 충격을 던진 짧은스커트는 단지 길이를 짧게 잘라낸 치마가 아니라 젊은이들의 반항적인 문화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이들의 뒤를 잇는 70∼80년대 2∼3세대로는 프랑스의 안마리 베르타,소냐리키엘,엘리자베스 센느빌과 이브닝드레스로 명성을 얻은 영국의 잔드라 로즈 등을 꼽을 수 있다.
프랑스 패션왕국의 아성은 미국에 의해 깨지고 말았다.클레어 맥카델은 ‘아메리칸 룩’(American Look)의 창시자로 최초의 미국 출신 여성 디자이너였다.역시 미국출신의 노말 로렐도 그의 옷이 오트 쿠티르(고급맞춤옷)가 아닌 프레타 포르테(기성복)였지만 하이패션 전통을 추구했다.
세계적인 패션잡지 보그는 90년대 패션계의 총아로 존 갈리아노·헬무트 랑·톰 포드 등 8명을 꼽았다.모두 남성이다.그러나 남성우위의 현대패션계에서 캐서린 햄닛,도나 카란,샹탈 토머스 등은 세계 여성 명디자이너의 계보를잇고 있다.
햄닛은 80년대말 환경문제로 부상했다.데뷔 때부터 생태계 보호에 남다른관심을 보였던 그녀는 무공해 천연섬유를 사용하자는 캠페인을 벌이는 등 디자이너로선 독특하게 환경운동가로도 눈부신 활약을 보였다.
카란은 독립해 컬렉션을 연지 몇년되지 않았지만 급성장했다.그녀는 ‘뛰어난 아이디어 개발능력과 풍부한 재정적 지원’이 결합한 대표적 현대 디자이너로 분류된다.앤 클라인의 수석디자이너 출신인 그녀는 84년 독립한 뒤 ‘미국 패션계의 여왕’으로 불릴 만큼 고도성장을 이뤘다.
이밖에 일본의 라이카 구보,벨기에의 안드넬 미스터,영국의 비디안 웨스트우드 등도 21세기 인류의 아름다움을 패션으로 연출해나갈 기대주로 꼽힌다.
황성기기자 marry01@**'美 전령사' 패션 모델…지구촌 동시 패션시대 열어 패션 디자이너가 ‘미의 창조자’라면 이들의 옷을 대중앞에 선보이는 패션모델은 ‘미의 전령사’.
몇몇 디자이너들의 뛰어난 감각과 미디어의 힘,그리고 자본의 자체 논리로인해 20세기 지구촌은 동시 패션시대를 즐기게 됐다.패션사업이 발달한 초기상류층의 문화였던 ‘패션’은 대중문화의 한 장르로 까지 발전했다. 그 주역이 바로 패션모델.패션 디자이너들의 옷을 선보이던 조역에서 주역으로 탈바꿈,패션디자이너들의 흥망을 가름할 정도까지 이르렀다.할리우드 영화스타와 가수들 못지않은 인기와 명예,부를 누리며 21세기를 주도할 엔터테이너로자리잡았다.
60·70년대 지방시 등 유명 패션 디자이너들의 널리 알린 것은 일반 모델이아닌 오드리 헵번과 같은 영화배우들. 패션쇼에서 모델들이 어필하는 것보다영화나 이벤트에서의 은막스타들의 옷맵시가 더욱 효과적이었다.
80년대 들어서 판도는 급속히 바뀐다.‘엘리트’사 등 세계 유명 모델에이전시들이 수퍼모델 선발대회를 개최하고 신디 크로포드,클라우디아 시퍼,나오미 캠벨과 같은 만능 톱 모델들이 패션쇼 무대와 잡지 모델,스크린을 장악하면서 모델의 위상은 급상승했다.
신장 180㎝,34-26-35의 신디 크로포드(33·미국)는 82년에 데뷔,현재 연 900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
87년 데뷔한 클라우디아 시퍼(29·독일)도 패션쇼당 3만달러를 받는다.화장품 회사인 레블롱에 전속돼있고 베르사체,샤넬의 단골 모델이다.
특히 20세기말 패션산업및 모델의 급성장과 함께 두드러진 한 특징은 백인을 중심으로한 미의 기준이 흑인이나 아시아계통으로 옮겨간 점이다.‘흑조’나오미 캠벨(29·영국)의 등장 전에 흑색미인 시대를 이끈 주인공은 75년보그지 사진작가에 의해 뉴욕에 소개된 소말리아 태생의 이만 압둘 와지드.
당시 18살의 나이로비대 정치학과 대학생이던 이만은 ‘아프리카 공주’로불리며 89년 은퇴할 때까지 미국과 유럽의 패션계를 주름잡았다.
이탈리아 밀라노,프랑스 파리,미국 뉴욕 컬렉션 등 세계 패션무대를 주름잡으며 21세기를 주도할 대표적인 세계적인 모델들은 타이라 뱅크스(23·미국)와 암버 발레타(25·미국),브리지트 홀(22·미국),크리스티 털링턴(30·미국),커스티 흄(22·스코틀랜드),레티샤 카스타(21·프랑스),린다 에반젤리스타(34·캐나다) 등이다.
김수정기자 crystal@
지구촌 누구라도 댈만한 금세기 대표적 브랜드가 디자이너의 이름을 땄고남성이 주름잡고 있는 패션계에서 이들 디자이너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아는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남성이 주도해온 20세기 세계 패션계에서 여성들은 특유의 상상력과 창조력,뛰어난 감성으로 그 한쪽에 우뚝 서있다.자본주의의 빛나는 성장과 함께 패션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며 생활의 질과 품격을 높이는 ‘미의 전도사’로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코코 샤넬’,‘샤넬 넘버5’로 널리 알려져 있는 가브리엘 샤넬(1883∼1971).그녀는 여성스러움의 상징인 ‘샤넬’의 전설을 열었다.버나드 쇼는 ‘세상의 가장 가장 중요한 두명의 여성’으로 마리 퀴리와 샤넬을 꼽았을 만큼 샤넬이 20세기에 남긴 영항은 지대하다.
투피스,쓰리피스로 구성되는 ‘샤넬수트’는 1차대전중 만들어져 세계적 인기를 끌었으며 50년대 다시 유행하다 지금도 여전히 인기를 누리는 디자인이다.그녀의 말대로 ‘패션은 사라져도 스타일은 남는 셈’이다.샤넬,마들렌비요네,발렌티나 사니나 등과 1세대 여성 디자이너로서 명성을 날린 엘자 스키아파렐리(1896∼1971).새로움에의 도전을 즐겼던 그녀는 스포츠웨어와 인공소재를 개척한 선구자였다.
59년에는 메리 퀀트가 미니 스커트를 선보였다.전세계에 충격을 던진 짧은스커트는 단지 길이를 짧게 잘라낸 치마가 아니라 젊은이들의 반항적인 문화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이들의 뒤를 잇는 70∼80년대 2∼3세대로는 프랑스의 안마리 베르타,소냐리키엘,엘리자베스 센느빌과 이브닝드레스로 명성을 얻은 영국의 잔드라 로즈 등을 꼽을 수 있다.
프랑스 패션왕국의 아성은 미국에 의해 깨지고 말았다.클레어 맥카델은 ‘아메리칸 룩’(American Look)의 창시자로 최초의 미국 출신 여성 디자이너였다.역시 미국출신의 노말 로렐도 그의 옷이 오트 쿠티르(고급맞춤옷)가 아닌 프레타 포르테(기성복)였지만 하이패션 전통을 추구했다.
세계적인 패션잡지 보그는 90년대 패션계의 총아로 존 갈리아노·헬무트 랑·톰 포드 등 8명을 꼽았다.모두 남성이다.그러나 남성우위의 현대패션계에서 캐서린 햄닛,도나 카란,샹탈 토머스 등은 세계 여성 명디자이너의 계보를잇고 있다.
햄닛은 80년대말 환경문제로 부상했다.데뷔 때부터 생태계 보호에 남다른관심을 보였던 그녀는 무공해 천연섬유를 사용하자는 캠페인을 벌이는 등 디자이너로선 독특하게 환경운동가로도 눈부신 활약을 보였다.
카란은 독립해 컬렉션을 연지 몇년되지 않았지만 급성장했다.그녀는 ‘뛰어난 아이디어 개발능력과 풍부한 재정적 지원’이 결합한 대표적 현대 디자이너로 분류된다.앤 클라인의 수석디자이너 출신인 그녀는 84년 독립한 뒤 ‘미국 패션계의 여왕’으로 불릴 만큼 고도성장을 이뤘다.
이밖에 일본의 라이카 구보,벨기에의 안드넬 미스터,영국의 비디안 웨스트우드 등도 21세기 인류의 아름다움을 패션으로 연출해나갈 기대주로 꼽힌다.
황성기기자 marry01@**'美 전령사' 패션 모델…지구촌 동시 패션시대 열어 패션 디자이너가 ‘미의 창조자’라면 이들의 옷을 대중앞에 선보이는 패션모델은 ‘미의 전령사’.
몇몇 디자이너들의 뛰어난 감각과 미디어의 힘,그리고 자본의 자체 논리로인해 20세기 지구촌은 동시 패션시대를 즐기게 됐다.패션사업이 발달한 초기상류층의 문화였던 ‘패션’은 대중문화의 한 장르로 까지 발전했다. 그 주역이 바로 패션모델.패션 디자이너들의 옷을 선보이던 조역에서 주역으로 탈바꿈,패션디자이너들의 흥망을 가름할 정도까지 이르렀다.할리우드 영화스타와 가수들 못지않은 인기와 명예,부를 누리며 21세기를 주도할 엔터테이너로자리잡았다.
60·70년대 지방시 등 유명 패션 디자이너들의 널리 알린 것은 일반 모델이아닌 오드리 헵번과 같은 영화배우들. 패션쇼에서 모델들이 어필하는 것보다영화나 이벤트에서의 은막스타들의 옷맵시가 더욱 효과적이었다.
80년대 들어서 판도는 급속히 바뀐다.‘엘리트’사 등 세계 유명 모델에이전시들이 수퍼모델 선발대회를 개최하고 신디 크로포드,클라우디아 시퍼,나오미 캠벨과 같은 만능 톱 모델들이 패션쇼 무대와 잡지 모델,스크린을 장악하면서 모델의 위상은 급상승했다.
신장 180㎝,34-26-35의 신디 크로포드(33·미국)는 82년에 데뷔,현재 연 900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
87년 데뷔한 클라우디아 시퍼(29·독일)도 패션쇼당 3만달러를 받는다.화장품 회사인 레블롱에 전속돼있고 베르사체,샤넬의 단골 모델이다.
특히 20세기말 패션산업및 모델의 급성장과 함께 두드러진 한 특징은 백인을 중심으로한 미의 기준이 흑인이나 아시아계통으로 옮겨간 점이다.‘흑조’나오미 캠벨(29·영국)의 등장 전에 흑색미인 시대를 이끈 주인공은 75년보그지 사진작가에 의해 뉴욕에 소개된 소말리아 태생의 이만 압둘 와지드.
당시 18살의 나이로비대 정치학과 대학생이던 이만은 ‘아프리카 공주’로불리며 89년 은퇴할 때까지 미국과 유럽의 패션계를 주름잡았다.
이탈리아 밀라노,프랑스 파리,미국 뉴욕 컬렉션 등 세계 패션무대를 주름잡으며 21세기를 주도할 대표적인 세계적인 모델들은 타이라 뱅크스(23·미국)와 암버 발레타(25·미국),브리지트 홀(22·미국),크리스티 털링턴(30·미국),커스티 흄(22·스코틀랜드),레티샤 카스타(21·프랑스),린다 에반젤리스타(34·캐나다) 등이다.
김수정기자 crystal@
1999-11-22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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