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포럼] 베를린시대의 개막

[대한포럼] 베를린시대의 개막

이기백 기자 기자
입력 1999-08-25 00:00
수정 1999-08-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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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는 영광,땅에는 축복이 가득했다.독일 국민들은 희망과 기대에 들떠 보는 이마다 얼싸안고 열광했다.” 90년 10월3일 당시 동베를린 제국의회(Reichstag) 광장에서 벌어진 독일통일 축제 현장의 분위기를 전한 기사 내용이었다.그로부터 10년이 지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오는 9월1일 베를린에서 첫 내각회의를 주재하고 의회가 종전후 처음으로 새로 단장한 제국의회 청사에서 개회함으로써 통일독일의 ‘베를린 시대’가 막을 올린다.

통일독일의 ‘베를린 시대’가 갖는 역사적 의미는 대단하다.베를린은 1871년 독일의 첫 통일국가로 군사강국이었던 프로이센왕국의 수도가 된 이후 1945년 2차세계대전 패망때까지 제3제국의 수도로서 독일과 유럽 역사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광기(狂氣)의 패권주의·민족주의·권위주의의 주무대였다는 점에서 베를린 천도(遷都)는 독일내에서뿐만 아니라 인접 유럽국가들로부터 경계의 대상이 돼 왔다.

베를린의 중요성은 종전후 승전국인 미·프·영·소 4개국이 베를린을 분할통치하며 전후 세계질서의 주도권을 잡으려 했던 것으로도 알 수 있다.옛소련은 자유사상의 침투를 막기 위해 61년 베를린장벽을 쌓았고 이어 베를린봉쇄에 대항해 당시 미국 케네디 대통령이 베를린을 방문해 “나는 베를린시민(Ich bin Berliner)”이라며 결연한 의지를 보인 사실은 유명한 사건이었다.

독일 내부에서는 ‘역사의 짐’을 벗고 ‘민주적인 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천도가 필요하다고 찬성하는 여론과 베를린이 독일 역사에서 갖는 부정적 이미지와 200억마르크(약 12조2,000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이전 비용을들어 반대하는 여론이 맞섰다.

전후 사민당(SPD)과 기민당(CDU) 등 역대정권들은 통일정책을 전개하면서이같이 좋지 못한 이미지를 불식시키는 데 주력해 왔다.초대 에르하르트 총리로부터 브란트·스미스·콜 등 역대 총리들이 일관되게 추진해 온 통일정책의 기조도 ‘강력한 통일독일’을 경계하는 주변 국가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유럽속의 독일(Deutschland in Europa)’정책이라 하겠다.이 때문에 독일은 정치적으로는 유럽연합(EU) 창설에,경제적으로는 유럽단일통화 제정에,군사적으로는 ‘나토 안에서의 작전’에 어느 국가보다 앞장서 왔다.

독일은 2차대전후 처음으로 지난 3월 나토군의 일원으로 유고에 병력을 파견함으로써 패전국의 멍에를 벗고 국제사회에서 경제력에 걸맞은 정치력을발휘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이는 독일이 과거 역사의 부담에서 벗어나고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며 베를린 천도는 독일의 이같은 입장을 강화시켜줄 것으로 예상된다.

대전의 피해자로서 유일하게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 독일통일의 마지막 과정인 베를린 천도는 부러움이 아닐 수 없다.독일이 ‘유럽속의 독일’을 강조하며 통일대업을 성취하는 동안 2차대전의 같은 패전국인일본은 침략행위에 대한 반성이나 동북아 안정 추구보다는 경제적 이윤을 바탕으로 한 군사대국화·우경화(右傾化)에 힘을 기울여 온 것이 아닌가 하는짙은 의구심을 갖게 한다.

독일이 통일과업을 완수할 수 있었던 것도 외교적으로는 주변국의 경계심을해소시키는 ‘유럽속의 독일’ 정책과 더불어 물적·인적·통신교류라는 3통(通)정책을 꾸준히 벌여 동서독 민족간의 이질감을 최소화하는 데 성공한 결과라 하겠다.세계 대전의 피해자인 우리지만 뒤늦게나마 포용정책을 펴게 된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더욱이 우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4+2회담’이 성공한다면 통일의 내외적인 여건은 이루어질 것이다. 통일은 인내심과 먼 앞날을 내다보는 안목이며 스스로 준비하는 길만이 첩경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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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백 논설위원 kbl@]
1999-08-25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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