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시론] 불평을 수용하는 성숙한 정치로

[대한시론] 불평을 수용하는 성숙한 정치로

김유남 기자 기자
입력 1999-08-07 00:00
수정 1999-08-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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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온통 물난리를 겪고 수해복구에 소란한데 여기저기서 불만의 소리가 높다.지난 3년간 똑같은 수재를 반복하는 까닭은 나라의 홍수대책이 국민의 불평과 비판을 외면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정치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생각하며 정치와 불평의 관계를 생각해 본다.

요즘 나라의 정치가 잘 되지 않는다고 걱정하는 사람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그 책임이 정치학자에게 있다고 한다.처음부터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격인데,그 이유는 고등교육과정에서 정치학을 잘못 가르쳤다는 것이다.우리나라정치지도자들의 상당수가 고등교육을 받은 분들인데,과연 그들이 정치학을어떻게 배웠기에 정치를 이 모양으로 만들었는가 하는 것이다.

잘못이 있다면 외국에서 수입한 가장 이상적인 정치모델들만을 가르쳤다는고백일 것이다.한국정치 현실에 맞는 자생적 패러다임이 없었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정치가 원래 ‘천의 얼굴을 가진 치국의 예술이라면’ 잘 안되는 정치를 해결하는 정치학을 공부했어야 했다는 것이다.왜냐하면 정치는 본래 잘 안되는 인간관계를 잘되게 푸는 노력이고,이를 연구하는 것이 정치학일 것이기 때문이다.

60년대 미국 정치학의 이론적 접근 틀로 유명세를 얻었던 ‘DM모델’(정책결정 모델)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인간관계에 있어서 잘 안되는 일,즉 엇갈린 반대와 모순들을 푸는 변수의 종합이었다.좋은 민주주의는 좋은 정당정치와 함께 나란히 나아간다.좋은 정당정치는 지지보다는 비관과 불평 및 비판과 반대 등의 갈등으로 엇갈리는 다양한 국민의사를 정당이라고 하는 매개체를 통해 수렴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의 정치가 잘 안되는 까닭은 우리의 정계가 비관,불평,비판,반대 등으로 거부하는 요소를 수용하지 못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따라서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상대를 ‘좋다와 싫다’ 또는 ‘지지와 반대’ 부류로 갈라놓고,싫다는 사람과 반대하는 쪽을 적(敵)의 캠프로 몰아 버리고 상종도 하지 않는 데서 시작되었다.칼자루를 쥔 사람은 일반적으로 매사를 걱정하는 사람을 ‘습관적 비관론자’로 못박아 버리고,무턱대고 낙관론자만을 끌어안는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개선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낙관론자는 무책임한 동조자일 뿐 쓸모없는 기회주의자일 수 있으나,대안을 제시하는 비관론자는 생각이 깊은 동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속 빈 낙관론자는 부실한 ‘예스맨’(Yesman)일 수 있으나,속 찬 비관론자는 옴부즈맨(Ombudsman)의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숙한 지도자는 불평하는 이들을 ‘왕따’로 몰아버린다.노골적으로 하기어려우면 은근히 소외시키는 ‘은따’로 내몰기도 한다.따지고 보면 모두가똑같이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로 모인 조직사회에서 불평은 당연한 것이다.그러나 불평은 민주화로 가는 관문에 해당한다.불평은 미처 보지 못한 사각지대로 눈을 돌리게 함으로써 지도자가 반드시 넘어야할 관문이기 때문이다.

비판은 발전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다.비판을 통해 문제가 잉태되어야 비로소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생긴다는 뜻이다.또한 건설적인 비판이 있어야 보다 완벽한 대안을 세워서 같은 문제가 반복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때문에 비판은 성장과 성숙이 필요로 하는 양식이며,자유로운 비판은 높은차원의 완숙을 약속할 수 있을 것이다.우리 사회는 이제 많은 비판을 수용하는 아량이 요구된다.

반대는 민주주의의 출발점이 된다.반대의 이유를 캐고 그 뿌리를 찾아내면반대자를 설득하여 지지하는 사람으로 바꿔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민주주의가 성장한 역사를 들춰보면 그곳에는 언제나 반대를 지지로 이끌어 낸 대중적 선각자들이 있었다.처음부터 지지하는 사람들만을 위한 정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따라서 민주주의가 성숙한 나라는 언제나 무수한 반대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다.우리의 정치는 걱정하는 비관론,거침없는 불평,다양한 비판,그리고 볼멘 반대의 소리를 모두 폭넓게 수용하고 소화시키는 합(合)의 장으로 승화되어야 할 것이다.

金裕南 단국대 교수·비교정치
1999-08-07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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