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27)한승헌의 ‘어떤弔辭’(중)

[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27)한승헌의 ‘어떤弔辭’(중)

임헌영 기자 기자
입력 1999-07-07 00:00
수정 1999-07-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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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승헌의 '어떤 弔辭'(중) 1975년 1월23일 한승헌 변호사가 수사당국에서 일단 풀려난 뒤부터 재연행당한 3월21일까지의 두 달 동안은 반유신독재운동의 전환기로 접어든 격동의연속이었다. 박정희독재정권은 1974년 긴급조치 1·4호로 300명 가까운 민주인사와 학생들을 구속했으나 국내외의 강력한 비판에 굴복하여 1975년 2월 15일 상당수를 석방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바로 이 날 밤 9시40분 영등포구치소에서 풀려난 김지하 시인이 “종신형을 받았는데 벌써 나오다니…세월이 미쳤든지 내가 미쳤든지 아니면 둘 다 미쳤든지”란 출소소감은 당시의시대적인 분위기를 단적으로 축약해준다.

여기에다 1974년 말 동아일보의 자유언론실천운동을 선두로 시작된 언론자유화 운동은 해가 바뀌자 조선·중앙·문화방송 등 각사들로부터 언론자유실천 결의문이 채택되는 등 독재정권은 점점 궁지로 몰리고 있었다.

이때의 유명한 사건이 바로 관계당국의 개입으로 동아일보에 대한 일체의 광고게재 중단사태이다. 역사상 유례없는 광고란 백지 신문이 나오는가 싶더니이내 독자들의 격려광고가 쇄도하는 자유언론 실천 기간이 잇따랐다.바로 이런 과정에서 김지하 시인은 ‘동아일보’에다 ‘고행…1974’(1975년 2월25일∼27일)를 연재했는데,그 알맹이는 긴급조치 아래서 일곱 사형수를 낸 인혁당 사건의 허구성을 그 사건 당사자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밝혀내는 것이었다.

바로 이 글 때문에 김지하 시인은 3월13일 당시 성북구 정릉동 소재의 박경리 여사 댁 앞에서 연행,재구속 수감당하고 말았다.

이런 역사적인 격랑 속에서 한승헌 변호사는 무엇을 했을까.국제앰네스티한국위원회 창립발기위원이자 이사였고 민주회복국민회의 중앙위원,자유실천문인협의회 이사,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 인권위원이었던 그는 각종 선언문의발표자에다 동아일보 격려광고 기탁 주동자 등으로 이미 깊숙이 던져진 반독재 투쟁의 대열 속에서 몸을 뺄 처지는 커녕 지도적 위치에 서 있었다. 여기에다 결정적인 계기가 닥친 건 바로 김지하 시인의 구속이었다.

한 변호사는 서둘러 김지하 변호인단을 구성,3월19일 서울지방검찰청에 변호인 선임계를 제출했는데,의외로 그 반응은 빨라서 곧장 정보부로부터 변호인 사퇴를 종용받게 되었다.

이미 지난 1월에 취조해둔 ‘어떤 조사’로 언제든지 필요하면 반공법 위반으로 입건할 수 있다는 위협에도 아랑곳 없이 변호인의 기본자세인 권리와의무를 들먹이며 냉정히 거절한 그에게 이튿날에도 똑같은 전화가 걸려왔으나 역시 냉정히 사퇴를 거절했다.

그리고 3월21일 밤.그는 시내 어느 모임에서 곧바로 낯익은 남산 지하실로연행,이틀만에 서울구치소에 수번 2111번으로 수감되었다.요즘과는 달리 당시에는 반공법 피의자에겐 철저한 독거수용으로 일체의 접견이나 도서 반입을 엄금시켰던 시절인데다 특히 변호사란 특수 신분을 감안하여 검찰의 심문조차도 구치소 안에서 실시하여 그야말로 수감자로 하여금 처절한 고립감을주입시킨 때였다.

정치적인 의도가 분명한 사건이기에 석방은 시간문제일거라는 예측이 없지않았고,더구나 검찰총장이 한 원로 법조인에게 석방을 귀띔까지 해주었건만“중정과 청와대 쪽에서 완강히 제지하는 바람에 검찰총장의 모처럼의 언명이 빈말처럼 되어버렸다”(한승헌 ‘시국사건 변호에 대한 보복’)는 대목에서 읽을 수 있듯이 ‘어떤 조사’ 필화사건도 결국은 필화가 겪어야할 운명은 다 치를 수밖에 없었다.

법조계와 문학예술.언론계가 망라되다시피했던 석방운동과 당시까지는 단일사건으로는 가장 많았던 104명의 변호인단 구성 등 숱한 삽화를 남기면서 제2심에서야 간신히 집행유예로 석방된 한 변호사는 1980년 5월 광주항쟁사건에 연루되어 두 번째 옥고를 치르느라 변호사로 복권된 것은 1983년에 이르러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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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헌영 문학평론가]
1999-07-07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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