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굄돌] 단지 즐기기 위해 영화를 볼 수는 없을까

[굄돌] 단지 즐기기 위해 영화를 볼 수는 없을까

주형일 기자 기자
입력 1999-07-05 00:00
수정 1999-07-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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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아마도 전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영화들을 접할 수 있는 도시일 것이다.그 곳에서는 새로 개봉되는 영화들은 물론이거니와 영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영화 전문 서적에서 봤거나 귀동냥을 통해서 한번쯤은 들어본적이 있을 전설적인 영화들도 시내 극장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영화 발명초기의 작품들에서부터 현재의 개봉 작품들까지 세계 각국의 영화들을 극장에서 볼 수 있는 파리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영화 전공자들에게는거의 꿈의 도시라 할만 하다.게다가 영화 전문 채널도 아닌 일반 텔레비전채널에서까지 거의 매일 저녁 두 편 정도의 영화를 삭제 없이 방영하고 있으니….

그래서 파리에서 영화를 전공하는 학생들이 매일 극장에서 두,세 편씩의 영화를 보면서 몇 년을 지내고 텔레비전에서 방영된 영화들을 녹화한 비디오테이프들을 수백 개씩 보유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그렇지만 고작 한 달에 두어 번 극장을 찾는 나와 같은 게으른 ‘영화 애호가’의 눈에는 이런 일이 놀랍게 비친다.

사실 내 눈에는 상영되는 영화들이 수록된 정보지를 매일 뒤적이며 그날의영화 관람 스케줄을 짜고 결국은 다 보지도 못할 영화들을 열심히 녹화해 보관하는 영화학도들의 모습이 조금 애처롭게 보인다.그들의 속사정은 알 수없지만 그들이 일반 관객들이 갖는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누리지는 못할 것같은 생각이 들어서이다.그들은 자신의 기호와는 관계없이 상영되는 영화들은 꼭 봐야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보고 싶지 않은 영화를 봐야하는 것은 바로 영화학도로서 피할 수 없는 고단한 작업일 수 있다.그들에게 영화는 즐거움을 제공하는 원천이 아니라 공부해야 할 텍스트일 것이기 때문이다.반면에 나와 같은 무지한 관객은 그저 보고 싶은 영화를 볼 뿐이며 주머니 사정이좋지 않다면 몇 달 동안 극장 왕래를 끊으면 그만이고 생소한 감독이나 배우 이름을 굳이 외우지 않아도 좋다.누가 “이 영화는 정말 좋은 영화이니 꼭보라”해도 내 기분이 내키지 않으면 그만이다.

따분하고 내용이 한심한 글들을 내 전공과 관련된다는 이유로 억지로 읽고있는 내 자신을 바라보며,보고 싶지 않은 영화를 보기 위해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는 영화학도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나도 언론의 지원 사격을받으며 한국을 휩쓸고 있는 영화 마니아 되기 열풍에 점차 익숙해지고 있기때문인가? [주형일 서울대 강사]

1999-07-05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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