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4·19’ 39돌」시위 주역 모임 ‘사랑방회’

「오늘 ‘4·19’ 39돌」시위 주역 모임 ‘사랑방회’

조현석 기자 기자
입력 1999-04-19 00:00
수정 1999-04-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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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와 부정에 항거하다 쓰러진 학생들의 모습이 생생합니다.” 4월 혁명을 주도했던 학생들은 그날의 외침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태평로국회의사당과 경무대 앞은 총탄이 난무하는 가운데 정의와 자유를 부르짖는학생들의 물결이 이어졌다.

‘4·19 사랑방회’는 이들이 혁명 정신을 되새기기 위해 만든 모임이다.회장은 김금석(金金石·60)씨.당시 고려대 3학년이던 김씨는 혁명의 불씨가 됐던 4·18 고려대생 시위를 이끈 주인공이다.

60년 4월13일 대학생 대표들은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를 의논하려고 광화문 ‘수향다방’에 모였다.그러나 정보가 새면서 대표 학생들은 그뒤 학교 안에 갇히는 처지가 됐다.

신입생 환영회가 열린 4월18일 고려대 운동장에는 2,000여명의 학생들이 모였다.하지만 단과대 학생회장이던 한나라당 이기택(李基澤)고문과 이세기(李世基)의원 등 4학년 학생들은 학생처장실에 붙들려 있어 시위를 이끌 수 없었다.

김씨 등은 어쩔 수 없이 선배들을 대신해 시위대를 이끌고 태평로 국회의사당으로 갔다.맨 앞에 서서 구호를 외쳤던 그는 곧 경찰에 붙잡혔으나 유진오(兪鎭午) 당시 총장의 중재로 풀려났다.

19일에는 학생들과 경무대로 몰려갔다.경찰은 시위학생들을 향해 붉은 물감을 탄 물을 소방호스로 뿌려댔다.그래도 해산하지 않자 공포탄과 실탄을 발사했다.눈 앞에서 동국대 법학과 3학년 노희두 학생이 가슴에 총을 맞고 쓰러졌다.첫 희생자였다.

김씨는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총을 난사하는데도 여학생과 중학생·초등학생까지 거리로 몰려나왔다”면서 “부상자를 위해 시민들이 앞다퉈 헌혈을 했다”고 회고했다.

‘4·19 사랑방’은 혁명 10주년인 70년 시위를 주도했던 고려대 서울대 중앙대 동국대 출신 300여명이 만들었다.하지만 2년 뒤 10월유신으로 강제 해산됐다.

그러나 95년 4·19가 ‘혁명’으로 위상이 정립되면서 부활했다.회원들은대학에서 성명서를 낭독하거나 시위를 주도했던 인물들이다.이기택 고문과이세기·김중위(金重緯)의원을 비롯,박찬세(朴贊世)전통일원연수원장,김대운(金大運)동국대 교수,김칠봉(金七峰)전성남중고동창회장,탁연복(卓然復)천아건설 부회장,최인환(崔仁煥)전교통방송본부장,김병일(金炳鎰)전서울신문 광고국장 등이 회원이다.

김회장은 “자유·민주·정의의 4월혁명 정신이 잊혀져 가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면서 “혁명정신을 되살려 경제난을 극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현석기자 hyun68@
1999-04-19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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