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란의 춤판/李世基 논설위원(外言內言)

광란의 춤판/李世基 논설위원(外言內言)

이세기 기자 기자
입력 1998-11-04 00:00
수정 1998-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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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뉴욕 타임스지는 한국경제의 추락에 따른 사회현상을 다룬 기사를 통해 경제위기 이후 아동보호시설에 버려진 ‘경제 고아’가 300만명 정도라고 밝히고 있다. 또 안양보육원의 고아들이 애처로운 모습으로 줄지어 늘어선 사진을 게재하고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아들의 손가락을 자른 아버지가 있는가 하면 가족동반자살도 증가추세에 있다고 했다. 세계의 시선에 비쳐진 우리의 실상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엔 주부들과 10대들이 윤락가로 몰려들고 이들을 이용한 변태영업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남녀 부킹(짝짓기),부부 바꾸기에서 윤락가가 밀집된 서울 화양동 등에 가면 앳된 10대 접대부들의 호객행위가 쉽사리 포착된지 오래다.‘20세만 되어도 퇴물취급’을 받는다면 퇴폐의 끝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그 이면에는 국제통화기금(IMF)체제가 낳은 시대적 산물이라는 애조가 깃들여 있다.

그러나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호텔 나이트클럽에서 일어난 광란의 춤판은 이와는 대조적인 또다른 타락의 극치다. 경차를 우승상품으로 내건 ‘댄스 결선대회’에서 여자손님들이 브래지어와 팬티만 입고 춤을 추다가 급기야는 알몸으로 포르노 영화를 능가하는 춤을 추어 빈축을 사고 있다. 요즘 강남일대의 잘 나가는 나이트클럽에서는 이런 춤경연대회는 물론 키스대회등 각종 이벤트가 유행이지만 처음무터 상품은 안중에도 없다. 테이블당 40만∼50만원 이상의 술값에도 불구하고 평일에도 자리가 없을 만큼 성업중인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법의 제재도,단속도 받지 않는 향락의 무풍지대가 끝없이 확산되고 심화되는 추세다.

영국의 찰스 램은 빈곤한 벗과 친척의 관계를 그의 수필에서 ‘연회장의 효수(梟首)’에 비유하고 있다. 흥청거리는 파티에서의 가난한 친척은 눈엣가시처럼 귀찮고 역겨운 존재라는 의미다. 과연 우리가 이럴 때인가. 돈을 무더기로 뿌리며 광란의 춤을 추고 있을때 어깨를 늘어뜨린 친척과 고아원 문앞에 늘어선 가엾은 고아들의 모습을 한번이라도 떠올려 봤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만약 나의 일이 아니라고 이를 외면한다면 그들의 말초적 쾌락주의는 시대의 아픔에 찬물을 끼얹는 반역이나 다름없다. 최소한의 도덕률을 지키려는 자들의 각성이 앞서지 않으면 우리는 어려운 시기를 이겨낼 수 없게 된다.

1998-11-04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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