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 물난리­자원봉사자 李京和씨

중부 물난리­자원봉사자 李京和씨

조현석 기자 기자
입력 1998-08-13 00:00
수정 1998-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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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민 돕기 “나 아니면 누가…”/예순나이 잊고 한끼 600명 식사 준비/하루 3∼4시간 밖에 못자 눈병 앓기도

“수해를 당한 이재민들의 고통에 비하면 이 정도는 고생도 아닙니다”

서울 노원구 상계1동 노원마을 수락초등학교 이재민 대피소에서 일주일째 밥을 지어주고 있는 李京和씨(60·여·상계1동).

4명의 손자·손녀를 둔 李씨는 새벽 5시면 잠자리에서 일어나 아들의 승용차를 타고 대피소로 향한다.

노원마을은 400여가구가 침수되고 1,000여명의 이재민을 내 서울에서 가장 피해가 큰 곳.900여가구 가운데 李씨의 집은 다행히 물에 잠기지 않았다.

차를 타고 가면서도 무슨 음식을 장만할까 하는 생각뿐이다.

새벽녘의 대피소에는 젊은 주부 봉사대원들도 속속 모여든다. 식사를 마련하는 일에는 10여명이 봉사하고 있다.상계1동 새마을부녀회 회장인 李씨는 이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다.

끼니마다 500∼600명분의 엄청난 식사를 준비해야 하므로 쉴 틈 없이 움직여야 한다. 밥과 국,반찬을 1시간동안 부지런히 준비한다.

상오 6시30분이 되면아침식사를 배식하기 시작한다. 회사로 출근하는 사람들도 있어 시간을 어겨서는 안된다. 집을 잃고 썩 좋지도 않은 식사를 배식받아 먹는 그들을 보면 안쓰러울 뿐이다.

식사가 끝나면 여러 단체에서 나온 자원봉사자들과 설거지를 한다.

낮 12시30분이면 점심을 배식해야하고 하오 6시30분에는 저녁을 준다.

식사시간 사이에는 단체와 개인이 보낸 반찬을 살펴보고 먹기 좋게 장만하느라 앉아 있을 시간이 없다.

지난 일주일을 눈코 뜰 새 없이 보냈지만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생각에 피곤한 줄도 모른다. 잠은 하루 3∼4시간 밖에 자지 못한다. 잠이 부족해 눈병이나 고생하기도 했다.

이재민들은 대부분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더 열심이다. 李씨는 “우리 마을에서 생긴 일인데 내가 아니면 누가 나서겠느냐”고 반문했다.

“처음에는 병이라도 나면 큰 일이라며 함께 사는 아들과 며느리가 극구 만류했지만 지금은 아들 내외도 적극 도와준다”고 말했다. 손자·손녀들의 재롱이 생각나면 틈나는대로 스티로폴을 깔고 교실 바닥에 누워 있는 아기들을 돌본다.

함께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李末子씨(40·주부)는 “평소 동네 일이라면 제일 먼저 앞장서는 억척 할머니”라면서 “젊은 사람들도 힘들어 꺼리는 일이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이재민들을 돌보고 있다”고 말했다.

李씨는 “이 나이에도 이웃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게 기쁠 뿐”이라고 말했다.<趙炫奭 기자 hyun68@seoul.co.kr>
1998-08-1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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