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統一 소”/任英淑 논설위원(外言內言)

“統一 소”/任英淑 논설위원(外言內言)

임영숙 기자 기자
입력 1998-06-18 00:00
수정 1998-06-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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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눈물’을 참담한 마음으로 바라본 경험이 있다. 60대의 실향민 작가가 쏟은 눈물이었다. 비공식 통로를 통해 어찌어찌 북쪽 가족 소식을 알아낸 그는 평소의 꼿꼿한 자세를 허물어뜨리고 어린 기자들 앞에서 울었다. 연세 많으신 부모님의 생존은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지만 누이마저 굶어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것이다. 울면서 그는 말했다. “도대체 신문과 방송은 무얼 하느냐?”고.

북한 주민의 기아(飢餓)사태가 매스컴에 등장하기 몇년 전 일이다. 한동안 그는 거의 곡기(穀氣)를 끊다시피 하고 술만 마셨다.

500마리 소를 몰고 판문점을 넘어 고향을 찾는 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에게서도 그와 같은 절절함이 느껴진다. 16일 북한 땅에 발을 내딛기 직전 그는 이렇게 말했다. “강원도 통천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청운의 뜻을 품고 세번째 가출할 때 아버님의 소 판 돈 70원을 가지고 집을 나섰다. 이제 그 한마리 소가 천마리의 소가 돼 그 빚을 갚으러 고향산천을 찾아 가는 것이다”

그 무렵 북한으로 간 소들이 자란 목장이 있는 충남 서산 일대에서는 비가 내렸다고 한다. 이 시각 전국에서 비가 내린 곳은 서산 뿐이어서 기상청 관계자들도 의아스러워했다는 것이다.

鄭회장 일행을 보며 ‘차라리 소가 되어 고향을 찾고 싶다’고 생각한 실향민들의 한(恨)이 뿌린 비일까? 대한민국에서 가장 말 잘하는 사람에 꼽힐 金東吉씨는 실향민으로서의 마음을 자신의 칼럼에 이렇게 쓰고 있다. “소가 되면 나도 북에 갈 수 있다. 소처럼 쓰다 달다 말도 않고 묵묵히 노동만 하면 나도 휴전선을 넘을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이 늙은 몸이 입은 다물고 살 수 있을지 모르나 노동은 하기 어렵다. 오래전에 나는 고향에 가서 죽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 소들이 북으로 가는 것을 보면서 그 꿈도 허망한 것임을 깨달았다”

판문점을 넘어 간 소떼는 이런 한을 풀어줄 것이다. 비록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에서 그 소들이 식용으로 이용된다 하더라도 그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라 믿고 싶다. 고대에서 소 사육의 가장 큰 목적은 식용도 농사용도 아니었고 하늘에 제사 지낼때의 희생을 위한 것이었다. 북한 언론이 소의 방북(訪北)을 언급하지 않는다 해서 통일을 위한 소들의 희생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500마리 가운데 150마리의 소는 새끼를 배고 있다니 평화의 씨앗은 계속 자랄 수도 있을 듯 싶다.
1998-06-18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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