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운규 아리랑/李世基 논설위원(外言內言)

나운규 아리랑/李世基 논설위원(外言內言)

이세기 기자 기자
입력 1998-05-30 00:00
수정 1998-05-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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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신화로 남아있는 ‘아리랑’은 1926년 4월말 지금의 고려대 근방인 안암골에서 처음 크랭크인했다. 당시 안암골은 기와집 한채와 초가집 10여채만이 있는 첩첩산중이었다고 기록된다. 촬영기간은 4개월, 제작비는 1천200원, 필름 길이는 9천 피트로 조선총독부 완공과 함께 같은해 10월에 단성사에서 개봉되었다. 영화 광고용으로 사진엽서가 제작되었고 김치담그기다듬이질 널뛰기등 한국적 정서가 담긴 사진을 배경으로 ‘아리랑 타령’ 한글가사에 일본어로 토를 단것이 눈에 띤다. 일제하의 억압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첨단적인 몽타주기법을 사용한 것등은 영화미학상으로 높이 평가된다고 평자들은 말한다.

羅雲奎가 직접 대본을 쓰고 감독·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3·1만세사건과 연루된 한 대학생이 고향에 내려와있다가 여동생을 겁탈하려던 일본순사의 앞잡이를 낫으로 찔러죽이고 두손이 묶인채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는 스토리로 진행된다. 그러나 영화에 담긴 뜻은 동생과 동생을 구하려던 대학생은 ‘조국’의 상징이며 일제 앞잡이는‘일제 강점(强占)’으로 표현되어 억압됐던 민족감정을 일시에 유발시킨 저항영화로 유명하다.

그 ‘아리랑’필름이 일본에 있다. 그리고 일본으로부터 돌아올지도 모른다. 항일(抗日)로 일관된 영화내용때문에 필름이 강제수거, 폐기되는 바람에 우리에겐 없는 것을 일본인 컬렉터가 소장하고 있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93년에도 소장자인 아베 요시시게(安部善重)씨는 나운규의 아들인 나봉한감독을 통해 필름을 반환하겠다고 해서 영화계를 들뜨게 한적이 있다.

이번에도 金大中 대통령 방일(訪日)때 ‘필름의 정식반환을 요청하면 돌려줄 의사가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반환의 논의가 어떻게해서 중단됐는지는 알수 없으나 일제하의 민족증언을 스크린에 담아냈다는 점에서도‘아리랑’은 우리에게 소중한 영상자료임에 틀림없다. 예술은 놓일자리에 놓여야 빛나고 쓰일자리에 쓰여야만 가치가 살아나는 법이다. 어두운 창고안에서는 한낱 낡은 필름에 지나지 않을수도 있다. 예술자료가 예술적 사료(史料)로서 빛날수 있도록 순수한 협조를 기대하는 바이다.

1998-05-3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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