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후,미래와의 따스한 대화
1.다른 악기들은 베토벤의 친구거나,친척,아니면 연인들이다.그러나 피아노는 베토벤 그 자신이다…
오늘 소개하는 음반의 피아노 연주자 유게네 이스토민은 그렇게 말했다.그리고,과연,1악장 벽두부터 이스토민의 피아노가 절묘하다.첫음과 둘째음 사이가 다른 연주보다 아주 미세하게 느린데,그 차이가 절벽을 이루면서 동시에 포괄한다.피아노 음은 무한히 영롱해서 마치 내비칠 듯하다,절벽을 품고 치열하게 따스한 대화정신이 탄생하는 과정을.곧이어 빠르지만 서두르지 않고,아니 매우 여유롭게 바이올린 선율이 통로를 마련한다.그것은 바이올린 연주사상 가장 부드럽고 온화한 통로다.그리고 연주자 아이작 스턴의 고유한 바이올린 음색이 가장 적확하게 들어맞는 대목이다.
마치 바이올린 선율이 스스로 제 육체를 기꺼워하는 듯.레너드 로즈의 첼로는 시작도 없이 밑도 끝도 없이 어느새 ‘온화의 무게’를 보태고.
그렇게 매우 짧은 순간에 광활하고 원대한 대화의 장이 마련된다.음악이 시간의 장르면서 시간을 극복하는,공간의 순간이다.피아노 삼중주는 무엇보다 대화의 장르다.그리고 베토벤의 피아노 삼중주 ‘대공’(대공 트리오)은이 방면의 최고 걸작.베토벤이 원했던 대화의 내용은 무엇이었던가.세 연주자는 그 ‘무엇’을 어떻게 당대화했는가.그러기 위해서 세 연주자 사이에어떤 대화가 필요했는가.대화는 어떤 고통을 겪고서 일상성(日常性)의 질(質)을 높여가는가?
2.1814년 4월 11일 빈의 로마황제 호텔 군(軍)자선음악회 리허설 공연장.베토벤이 직접 피아노를 잡고 있다.허름하지만 자세가 괴팍하게 느껴질 정도로 도도하다.청중은 문화계 저명인사와 귀족들.<대공 트리오>가 그렇게 연주된다.기대에 가득찬 청중의 얼굴에 점차 연민의 정이 어린다.베토벤의 연주는 형편이 없다.크게 쳐야 할 음절에서 건반을 너무 쾅쾅 두들겨대고 부드러운 대목은 너무도 미약해서 들리지 않는다.
초연(初演)은 그렇게 엉망으로 끝났다.그렇다.그는 귀가 먹은 상태였다.몇 주일 후 다시 직접 연주에 나섰지만 그게 마지막 연주가 되고 만다.아,베토벤.청년 시절 그의 작품은 기존의건반악기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폭발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그래.그때도 그는 건반악기를 ‘때려부수듯’ 연주했었지.그후 그의 음악은 표현력이 강화된 악기를 내내 요구해 왔고,새로 태어난 악기는 그의 음악으로 새로운 표현 영역을 개척해 오지 않았던가.44세 베토벤 청각 장애,아니 치매의 연주는 그래서 더욱 애처롭다.
그러나 우리가 베토벤을 위해 슬퍼할 것은 없다.그때의 청중들도 그렇다.그때 정작 베토벤은 ‘마음의 귀’로 연주했고 마음의 귀로 자신의 음악을 들었다.즉,그는 가장 이상적인 연주를 들었다.그리고 그 귀가 그후 13년 동안, 침묵의 세계에 귀를 기울이면서 이제껏 어느 작곡가도 넘보지 못한 만년(晩年)의 음악세계를 건설한다.
3.스턴,로즈,이스토민 세 연주자는 베토벤이 마음의 귀로 들었던 바로 그 연주를 재현한다.그리고 그,대화의,통로가 위대한 침묵의 저변을 이루는 광경도 보여준다.
1악장은 숭고한,끝없이 숭고한 고통에 단아한,끝없이 단아한 외모를 부여한다.공(空)인가? 아니다.단아함의 육화(肉化)다.공을 더욱공이게 하고 색(色)을 더욱 색이게 하는.무엇보다,그 조화를 심화시키는.2악장은 얼핏 가볍지만,위대한 20세기적 웃음의 경지를 여는 통로다.3악장은 1악장 공간(空間)의 시간화(時間化).고통의 시간이 아름다움의 영원성을 잉태하는 과정이다.다섯개의 변주(變奏)로써 생애를 다섯 번 심화확대시키는.마지막 변주는 길고 가장 온전하다.그런데 그 말미에 자기파괴(自己破壞)가 감행되고 그것이곧바로 4악장 춤곡으로 연결된다.
<대공트리오>의 4악장 구조는 침묵의 제련을 통해 베토벤 교향곡 제9번 ‘합창’(합창교향곡)의 세계로 심화될 것이다.3악장 말미는 만년 현악4중주들의 난해한 경지를 연다.그것은 ‘신(神)=인간’의 경지와 ‘청각치매=죽음’의 경지를 결합하고 그 결합을 음악화하려는,그렇게 스스로 음악이 되어 죽음을 관류(貫流)하려는 모험에 다름 아니다.‘만년의’ <장엄미사>는 <합창교향곡>의 대척점에,그리고 피아노 소나타들은 현악4중주들의 대척점에 존재한다.그렇다.<대공트리오>는 통틀어 베토벤 ‘만년작들’의 예감이고 교차로다.그런데도,매우 편안하고 깨끗하며 자애롭다.예언의 내용으로 스스로를 채우는 대신 대화의 완벽한 통로로 들어서는 까닭이다.그리고 이 점에서 <대공트리오>는 만년작들보다 덜 위대하지만 더 음악적이다.
4.이 작품의 통로성(通路性)을 결정(結晶)짓는 또하나의 계기가 있다.루돌프 ‘대공(大公)’에게 헌정되었지만 이 작품은 프랑스 혁명 이래 급격히 부상한 시민계급,그리고 미래와 대화를 분명하게 겨냥한다.음악은 귀족 후원자를 잃고 시민계급의 극장 취향에 의지해야 했다.
그리고 진보는 얼핏 천박한 대중성을 동반한다.대중 취향에 영합할 것인가,아니면 고급한 예술성을 지키며 고립과 굶주림을 감수할 것인가? 얼핏(!)긴박한 이 질문에 베토벤은 음악적으로 또 예술본질적으로 응답한다.그리고 예술성/대중성의 2분법을 일거에 깨부순다.그는 귀족들이 직접 연주를 즐겼던 아마추어리즘을 탈피한 고난도(高難度)의 작곡연주기법과 심오하고 변증법적인 음악사상을 결합하면서 표피적인 대중성에 야합하지 않고 시민혁명의 시대정신을 일상화(日常化)하는 것이다.
그렇게,역사 속으로,진정한 진보 속으로,진정하게 음악적으로.그렇게 다시 통로가,통로인 채로,미래와 대화한다.일상적이고 대중적이며 진보적이고 예술적인 음악이 그렇게 탄생한다.
그 광경을 이스토민,스턴,로즈 세 연주자는 완벽하게 구현한다.미국으로 귀화한 러시아 연주 예술이 마침내 미국화하면서 세계로 광활하게 열리는 단계가 역사적으로 겹치는 까닭이다.아,그때는 그랬구나.작곡이든 연주든,우리는 이 예술가정신이 거의 불가능해진 시대에살고 있다.정작 우리가 슬픈 것 아닌가.
1970.녹음,1988 CBS CCK7030
피아노:유진 이스토민
바이올린:아이작 스턴
첼로:레너드 로즈
◎巨匠 3인/이스토민 스턴 둘다 美 귀화 러시아 출신/미국화 거쳐 세계로
유진 이스토민(1925∼ )은 러시아계의 미국인 피아니스트.커티스 음악원에서 호르쵸프스키와 제르킨에게 배웠다.데뷔는 1943년.스턴 및 로즈와 3중주단을 구성한 것은 1961년이다.1975년 카잘스의 미망인인 첼리스트 마르타카잘스와 결혼했다.
아이작 스턴(1920∼ )은 러시아 태생으로미국에 귀화한 바이올리니스트.1935년 데뷔한 후 온화한 바이올린 음영역을 넓히면서 하이페츠와 쌍벽을 이루는 연주자로 부상,노년에 이르면서 ‘스턴이 스턴을 능가했다’는 평을 들었다.그의 연주전집 음반이 Sony 레이블로 나와 있다.
레너드 로즈(1918∼1984)는 미국태생의 첼리스트.그 또한 커티스 음악원에서 공부했다.1934∼8년 토스카니니의 NBC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한 후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뉴욕필을 거쳐 솔로로 활동했다.1951∼62년 커티스,1947∼51년 및 1962~84년 쥴리어드 음악원에서 가르쳤고,린 하렐과 요요마가 그의 제자다.이 세사람이 3중주단을 구성한 것은 1961년.<金正煥 시인>
1.다른 악기들은 베토벤의 친구거나,친척,아니면 연인들이다.그러나 피아노는 베토벤 그 자신이다…
오늘 소개하는 음반의 피아노 연주자 유게네 이스토민은 그렇게 말했다.그리고,과연,1악장 벽두부터 이스토민의 피아노가 절묘하다.첫음과 둘째음 사이가 다른 연주보다 아주 미세하게 느린데,그 차이가 절벽을 이루면서 동시에 포괄한다.피아노 음은 무한히 영롱해서 마치 내비칠 듯하다,절벽을 품고 치열하게 따스한 대화정신이 탄생하는 과정을.곧이어 빠르지만 서두르지 않고,아니 매우 여유롭게 바이올린 선율이 통로를 마련한다.그것은 바이올린 연주사상 가장 부드럽고 온화한 통로다.그리고 연주자 아이작 스턴의 고유한 바이올린 음색이 가장 적확하게 들어맞는 대목이다.
마치 바이올린 선율이 스스로 제 육체를 기꺼워하는 듯.레너드 로즈의 첼로는 시작도 없이 밑도 끝도 없이 어느새 ‘온화의 무게’를 보태고.
그렇게 매우 짧은 순간에 광활하고 원대한 대화의 장이 마련된다.음악이 시간의 장르면서 시간을 극복하는,공간의 순간이다.피아노 삼중주는 무엇보다 대화의 장르다.그리고 베토벤의 피아노 삼중주 ‘대공’(대공 트리오)은이 방면의 최고 걸작.베토벤이 원했던 대화의 내용은 무엇이었던가.세 연주자는 그 ‘무엇’을 어떻게 당대화했는가.그러기 위해서 세 연주자 사이에어떤 대화가 필요했는가.대화는 어떤 고통을 겪고서 일상성(日常性)의 질(質)을 높여가는가?
2.1814년 4월 11일 빈의 로마황제 호텔 군(軍)자선음악회 리허설 공연장.베토벤이 직접 피아노를 잡고 있다.허름하지만 자세가 괴팍하게 느껴질 정도로 도도하다.청중은 문화계 저명인사와 귀족들.<대공 트리오>가 그렇게 연주된다.기대에 가득찬 청중의 얼굴에 점차 연민의 정이 어린다.베토벤의 연주는 형편이 없다.크게 쳐야 할 음절에서 건반을 너무 쾅쾅 두들겨대고 부드러운 대목은 너무도 미약해서 들리지 않는다.
초연(初演)은 그렇게 엉망으로 끝났다.그렇다.그는 귀가 먹은 상태였다.몇 주일 후 다시 직접 연주에 나섰지만 그게 마지막 연주가 되고 만다.아,베토벤.청년 시절 그의 작품은 기존의건반악기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폭발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그래.그때도 그는 건반악기를 ‘때려부수듯’ 연주했었지.그후 그의 음악은 표현력이 강화된 악기를 내내 요구해 왔고,새로 태어난 악기는 그의 음악으로 새로운 표현 영역을 개척해 오지 않았던가.44세 베토벤 청각 장애,아니 치매의 연주는 그래서 더욱 애처롭다.
그러나 우리가 베토벤을 위해 슬퍼할 것은 없다.그때의 청중들도 그렇다.그때 정작 베토벤은 ‘마음의 귀’로 연주했고 마음의 귀로 자신의 음악을 들었다.즉,그는 가장 이상적인 연주를 들었다.그리고 그 귀가 그후 13년 동안, 침묵의 세계에 귀를 기울이면서 이제껏 어느 작곡가도 넘보지 못한 만년(晩年)의 음악세계를 건설한다.
3.스턴,로즈,이스토민 세 연주자는 베토벤이 마음의 귀로 들었던 바로 그 연주를 재현한다.그리고 그,대화의,통로가 위대한 침묵의 저변을 이루는 광경도 보여준다.
1악장은 숭고한,끝없이 숭고한 고통에 단아한,끝없이 단아한 외모를 부여한다.공(空)인가? 아니다.단아함의 육화(肉化)다.공을 더욱공이게 하고 색(色)을 더욱 색이게 하는.무엇보다,그 조화를 심화시키는.2악장은 얼핏 가볍지만,위대한 20세기적 웃음의 경지를 여는 통로다.3악장은 1악장 공간(空間)의 시간화(時間化).고통의 시간이 아름다움의 영원성을 잉태하는 과정이다.다섯개의 변주(變奏)로써 생애를 다섯 번 심화확대시키는.마지막 변주는 길고 가장 온전하다.그런데 그 말미에 자기파괴(自己破壞)가 감행되고 그것이곧바로 4악장 춤곡으로 연결된다.
<대공트리오>의 4악장 구조는 침묵의 제련을 통해 베토벤 교향곡 제9번 ‘합창’(합창교향곡)의 세계로 심화될 것이다.3악장 말미는 만년 현악4중주들의 난해한 경지를 연다.그것은 ‘신(神)=인간’의 경지와 ‘청각치매=죽음’의 경지를 결합하고 그 결합을 음악화하려는,그렇게 스스로 음악이 되어 죽음을 관류(貫流)하려는 모험에 다름 아니다.‘만년의’ <장엄미사>는 <합창교향곡>의 대척점에,그리고 피아노 소나타들은 현악4중주들의 대척점에 존재한다.그렇다.<대공트리오>는 통틀어 베토벤 ‘만년작들’의 예감이고 교차로다.그런데도,매우 편안하고 깨끗하며 자애롭다.예언의 내용으로 스스로를 채우는 대신 대화의 완벽한 통로로 들어서는 까닭이다.그리고 이 점에서 <대공트리오>는 만년작들보다 덜 위대하지만 더 음악적이다.
4.이 작품의 통로성(通路性)을 결정(結晶)짓는 또하나의 계기가 있다.루돌프 ‘대공(大公)’에게 헌정되었지만 이 작품은 프랑스 혁명 이래 급격히 부상한 시민계급,그리고 미래와 대화를 분명하게 겨냥한다.음악은 귀족 후원자를 잃고 시민계급의 극장 취향에 의지해야 했다.
그리고 진보는 얼핏 천박한 대중성을 동반한다.대중 취향에 영합할 것인가,아니면 고급한 예술성을 지키며 고립과 굶주림을 감수할 것인가? 얼핏(!)긴박한 이 질문에 베토벤은 음악적으로 또 예술본질적으로 응답한다.그리고 예술성/대중성의 2분법을 일거에 깨부순다.그는 귀족들이 직접 연주를 즐겼던 아마추어리즘을 탈피한 고난도(高難度)의 작곡연주기법과 심오하고 변증법적인 음악사상을 결합하면서 표피적인 대중성에 야합하지 않고 시민혁명의 시대정신을 일상화(日常化)하는 것이다.
그렇게,역사 속으로,진정한 진보 속으로,진정하게 음악적으로.그렇게 다시 통로가,통로인 채로,미래와 대화한다.일상적이고 대중적이며 진보적이고 예술적인 음악이 그렇게 탄생한다.
그 광경을 이스토민,스턴,로즈 세 연주자는 완벽하게 구현한다.미국으로 귀화한 러시아 연주 예술이 마침내 미국화하면서 세계로 광활하게 열리는 단계가 역사적으로 겹치는 까닭이다.아,그때는 그랬구나.작곡이든 연주든,우리는 이 예술가정신이 거의 불가능해진 시대에살고 있다.정작 우리가 슬픈 것 아닌가.
1970.녹음,1988 CBS CCK7030
피아노:유진 이스토민
바이올린:아이작 스턴
첼로:레너드 로즈
◎巨匠 3인/이스토민 스턴 둘다 美 귀화 러시아 출신/미국화 거쳐 세계로
유진 이스토민(1925∼ )은 러시아계의 미국인 피아니스트.커티스 음악원에서 호르쵸프스키와 제르킨에게 배웠다.데뷔는 1943년.스턴 및 로즈와 3중주단을 구성한 것은 1961년이다.1975년 카잘스의 미망인인 첼리스트 마르타카잘스와 결혼했다.
아이작 스턴(1920∼ )은 러시아 태생으로미국에 귀화한 바이올리니스트.1935년 데뷔한 후 온화한 바이올린 음영역을 넓히면서 하이페츠와 쌍벽을 이루는 연주자로 부상,노년에 이르면서 ‘스턴이 스턴을 능가했다’는 평을 들었다.그의 연주전집 음반이 Sony 레이블로 나와 있다.
레너드 로즈(1918∼1984)는 미국태생의 첼리스트.그 또한 커티스 음악원에서 공부했다.1934∼8년 토스카니니의 NBC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한 후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뉴욕필을 거쳐 솔로로 활동했다.1951∼62년 커티스,1947∼51년 및 1962~84년 쥴리어드 음악원에서 가르쳤고,린 하렐과 요요마가 그의 제자다.이 세사람이 3중주단을 구성한 것은 1961년.<金正煥 시인>
1998-05-2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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