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의류센터 운영… 91년 소득세 1위
안병균 나산그룹회장(50)은 젊었을 때 공사판 인부,연극단역 배우 등 안해 본 것이 없을 정도로 고생 끝에 그룹을 세운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고향인 전남 함평군 나산면 나산리에서 초등학교를 나와 광주서중 1학년을 중퇴했다.그룹 이름도 그래서 나산으로 지었다.가정형편이 어려워 18세때인 67년 단돈 2천700원을 들고 무작정 상경했다.70년대 초 세운상가 미장공사를 맡아 번 돈이 그의 첫 사업 밑천이었다. 이 돈으로 극장식당 ‘초원의 집’‘무랑루즈’를 경영했고 80년대에는 종로5가에 종오의류도매센터를 운영하는 등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이 의류도매센터가 훗날 그룹의 모태가 된 나산실업이다.여기서 생산한 여성의류 ‘꼼빠니아’‘조이너스’ 등은 지금도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안회장은 91년 종합소득세 개인 납세실적 1위에 올라 주위를 놀라게 했다.당시만해도 ‘자수성가한 중소의류업체 사장’ 정도로 알려졌던 그는 이때부터 ‘훌륭한 기업가’로 매스컴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그룹이 부도위기에 몰린 14일 채권은행단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선처’를 호소했으나 IMF한파로 도움받기가 쉽지 않았다.은행영업 마감시간인 하오 4시를 넘기면서 맨손으로 일으킨 나산그룹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육철수 기자>
안병균 나산그룹회장(50)은 젊었을 때 공사판 인부,연극단역 배우 등 안해 본 것이 없을 정도로 고생 끝에 그룹을 세운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고향인 전남 함평군 나산면 나산리에서 초등학교를 나와 광주서중 1학년을 중퇴했다.그룹 이름도 그래서 나산으로 지었다.가정형편이 어려워 18세때인 67년 단돈 2천700원을 들고 무작정 상경했다.70년대 초 세운상가 미장공사를 맡아 번 돈이 그의 첫 사업 밑천이었다. 이 돈으로 극장식당 ‘초원의 집’‘무랑루즈’를 경영했고 80년대에는 종로5가에 종오의류도매센터를 운영하는 등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이 의류도매센터가 훗날 그룹의 모태가 된 나산실업이다.여기서 생산한 여성의류 ‘꼼빠니아’‘조이너스’ 등은 지금도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안회장은 91년 종합소득세 개인 납세실적 1위에 올라 주위를 놀라게 했다.당시만해도 ‘자수성가한 중소의류업체 사장’ 정도로 알려졌던 그는 이때부터 ‘훌륭한 기업가’로 매스컴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그룹이 부도위기에 몰린 14일 채권은행단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선처’를 호소했으나 IMF한파로 도움받기가 쉽지 않았다.은행영업 마감시간인 하오 4시를 넘기면서 맨손으로 일으킨 나산그룹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육철수 기자>
1998-01-15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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