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단양 현곡리/고려시대 무덤 36기 발굴

충북 단양 현곡리/고려시대 무덤 36기 발굴

황규호 기자 기자
입력 1997-12-06 00:00
수정 1997-1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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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대박물관장 박희현 교수팀/모두 돌덧널무덤… 지방 세력가문의 가족묘지 추정/인골·고려청자 27점·토기류·청동제품도 다수 출토

충북 단양군 적성면 현곡리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고려시대 무덤떼가 발굴되었다.이들 무덤에서는 청자를 비롯 백자와 토기,청동공예품 등이 인골과 함께 쏟아져 나왔다.그래서 현곡리 무덤떼는 고려시대 문화 및 사회상을 새롭게 밝혀줄 수 있는 중요 유적으로 떠올랐다.

서울시립대박물관장 박희현 고수팀이 지난 10월 발굴에 들어가 5일 공개한 현곡리 고려무덤은 모두 35기.중앙고속도로 12공구 공사구간에 들어있는 무덤들은 거의가 돌덧널무덤으로 이루어졌다.이들 무덤 출토유물 가운데는 고려청자 27점과 토기병을 비롯한 많은 토기류가 포함되었다.이밖에 청동거울을 비롯 청동합과 수저,청동버클,청동세공품,철궤와 철제가위,철편 등이 나왔다.특히 15명 몫의 사람뼈가 거의 원형으로 출토되어 주목을 끌었다.

청자는 11세기에서 12세기에 이르는 시기에 구어낸 것이 대부분.청자퇴화문접시와 청자양각대접,청자운학문접시와 청자유병,청자상감국화문과형주전자 등 기형이 다양했다.해무리굽 청자 말기의 현상을 보여주는 11세기의 청자접시에서부터 청자상감으로 발전한 12세기의 작품까지 들어있다.비색순청자를 구어낸데 이어 맑고 밝은 유약을 통해 청자상감으로 고려도자문화를 한껏 꽃피운 시기가 12세기.그 도자문화를 반영한 그릇이 이번에 발굴한 청자상감국화문과 형주전자다.

이들 청자는 관요형태의 전남 강진가마 같은데서 구어낸 그릇이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발굴현장을 찾은 충북대 강경숙 교수(도자미술사)는 현곡리 무덤에서 나온 청자를 관요제품으로 볼 수는 없으나 지방요 최고품이라는 말로 그릇의 질을 높이 평가했다.그리고 청자와 함께 나온 백자에도 관심을 둔 강교수는 현곡리 무덤에서 멀리 않은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사자빈신사지탑 근처에 가마가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1022년에 세운 이 탑 근처의 가마에서는 청자를 굽다가 백자로 바꾸어 굽던 흔적이 남아있다.

이번에 발굴한 현곡리 무덤떼는 가족묘지라는 것이 발굴팀의 견해.출토유물의 수량이나 값어치로 보아 고려시대 지방 세력가문의 묘지일 가능성이 높다.충주의 호족으로 고려 태조의 세번째 부인 신명순성태후를 배출한 유긍달 가문을 우선 꼽을수 있다.신명순성태후가 낳은 두왕자는 뒷날 정종(923∼949년)과 광종(925∼975년)으로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충주 유씨는 오랫동안 지방호족으로 군림했다.그 일족은 단양과 영월까지 세력을 떨쳤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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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단양은 삼국 초기부터 신라와 고구려를 오가는 문화와 외교,군사적 통로에 자리했다.고려시대도 마찬가지다.개경을 떠나 서울에 와서 남한강뱃길이나 육로로 충주와 황강진,단양을 거쳐야 죽령을 넘었다.남한강 뱃길이 끝나는 단양에는 고려 조운창의 하나인 서창이 있었다.이러한 당시 교통사정을 고려하면 현곡리 무덤의 청자는 경기도 시흥 방산동을 비롯 고양 원당리,장흥 부곡리 등지의 민요에서 구어낸 그릇일 가능성도 있다.<단양=황규호 기자>
1997-12-06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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