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이’ 소동… 벼룩도 날뛸라(박갑천 칼럼)

미국에 ‘이’ 소동… 벼룩도 날뛸라(박갑천 칼럼)

박갑천 기자 기자
입력 1997-12-03 00:00
수정 1997-1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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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초등학교 학생사이에 이가 번져나고 있다 한다.워싱턴 포스트지까지 1면기사로 다루고 있을 정도니 가볍게 넘길일은 아닌듯 하다.몇해전에는 우리나라에서도 머릿니가 (여)학생들을 괴롭힌다는 보도가 있었다.그러고보면 그건 씨가 마른게 아니라 ‘조건’만 갖추이면 언제 어디서고 나타나게 돼 있는 모양.부리센 생존력이다.

“홀아비는 이가 서말 과부는 은이 서말”이라는 우리속담이 있다.홀어미노후는 추하지 않지만 홀아비 노후는 꾀죄죄해진다는 뜻을 담는다.물론 이 속담은 ‘이’가 의생활에 반드시 끼게 돼있는 시대상을 반영한다.스멀스멀 옷안을 기어다니면서 물어뜯으면 좀 가렵던가.그래서 백운거사 이규보도 “교활하기 너같은 것이 없다.옷속 꿰맨틈 깊숙히 숨어버리니 찾아낼수가 없구나”면서 탄식한다.하지만 이젠 옷감의 혁명따라 시골 홀아비 속옷에서도 볼 수 없게 된터.한데 미국에서 ‘이’소동이라니.피그미족이 뉴욕 번화가에서 발가벗고 하청치는 것과도 같구나.

‘이’는 음이기에 감(북쪽)에 속하므로 기어갈때는 반드시 북쪽을향한다는 것([지봉유설] 금충부).이렇게쓴 이수광은 실험해보니 그렇더라고 덧붙인다.그렇다면 나침반 아닌가.사실 ‘이’한테는 그런 영감이 있는 듯하다.사람이 죽어가면 몸밖으로 빠져나오고 병이 나으려면 몸속으로 기어들어간다지 않던가.옛 어른들이 하던 말인데 [유양잡조속집]에도 쓰여있다.그건 생존을 위한 직감이라 해야겠다.

[한비자](열임하)에는 ‘이’를 빗댄 우화가 보인다.돼지몸에 기생하는 세마리 ‘이’가 서로 살찐곳을 차지하겠다고 다툰다.그앞을 다른 ‘이’가 지나다가 말한다.“오는 섣달그믐날 이 돼지가 불에 그슬려 제사상에 오를텐데 너희도 그때 함께 불에 탈일이 걱정되지 않는가”고.이말을 들은 세마리 ‘이’는 싸움을 그만두고 열심히 피를 빪으로써 돼지를 제사상에 올리기 어려운 몸뚱이로 만들었다.사람들은 그 돼지를 죽이지 않았다.신하들이 서로 그세력을 다투다가 나라를 망그지른다면서 했던 말이다.

새로 나타난 ‘이’는 제충제 등에 면역되어 없애기가 어렵다 한다.‘이’같이 나라를 손톱 저기는 벼슬아치―슬관같구나 싶다.면역된 죄책감속에 꼭꼭 숨어들지 않던가.벼룩·빈대… 따위 ‘이’의 4촌도 그렇게 희룽거리게 되지 않는다 할 수는 없겠는데.<칼럼니스트>

1997-12-03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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