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으로 하는 선거(송정숙 칼럼)

방송으로 하는 선거(송정숙 칼럼)

송정숙 기자 기자
입력 1997-09-11 00:00
수정 1997-09-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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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가 안방을 차지하기 시작했을때 우리는 이 황당하도록 신기한 매체를 “안방에서 함께 살아야 할 새가족”으로 맞아들이면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어느날 깨닫고 보니 그는 그냥 ‘식구’가 아니라 전지전능한 신처럼 영향력을 행사하고있다.

신을 규정하는 특징은 사람의 마음속을 마음대로 드나들수 있고 시간과 거리를 초월하여 무소불능하며 복음을 전하는데 있다.오늘의 전파매체가 하는 일이 바로 그렇지 않은가.우리의 온 생활이 TV를 벗어날수 없게 되었으며 지구촌 어느 오지 원시림속의 산간벽지도 TV매체가 닿지 않는 곳이 없게 되었다.그리고 그는 시시각각으로 뉴스를 전한다.‘복음’의 본체는 뉴스다.가족의 일원으로가 아니라 그의 품에 우리를 품고 사는 거대한 ‘능력’으로 TV는 이미 군림하고 있다.

나라를 이끌어갈 대통령감들이 체신없게시리 에이프런에 프라이팬을 들고 우스개짓을 하고 눈물을 뿌려가며 누선을 자극하는 일들이 연예인 코미디언같다는 비판들이 나오고 있다.그렇지만 그또한 무한대로 큰 전파매체의 ‘능력’이 하는일일 것이다.국가경영 능력을 증거하고 정책개발 능력을 검증하는 기능도 중요하지만 시민들이 친화력으로 접근하는 일도 후보들을 알아보는 중요한 역할이므로 이런 프로그램이 그렇게 부정적인 기능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시정에는 있다.그것도 TV는 할 수 있는 것이다.

○대통령 후보도 좌지우지

이렇게 대통령후보를 입체적이고 다원하게 좌지우지할 능력을 가진 TV가 그 능력을 어떻게 공정하고 공평하게 관리하느냐가 중요한 일이다.그가 편파로 기울면 사회정의가 기울고 그들이 천박해지면 사회의 품위가 추락한다.시민정신의 전진도 후퇴도 이끌수 있고 모든 판단과 결정에 영향을 미칠수 있다.그러므로 광장에 ‘백만인파’를 모으며 세로 겨루던 고전적 선거운동방식이 퇴화하고 TV가 모든 기능을 수렴할 수 밖에 없어졌다.

오는 12월의 대통령선거를 위하여 벌써 여러번의 방송토론이 있었다.법의 범위안에서 앞으로도 거듭될 것이다.오랜 야당생활로 잘못된 이미지가 형성되었다고 생각되던 후보가 노련한 솜씨로 좌중을 사로잡으며 빛나는 화술을 과시하는 실상도 볼수 있었고 그보다는 서툴지만 새로운 주자가 보여주는 신선함도 접할수 있었다.그 자체가 우리시대의 성숙성을 입증하는 것 같아 시청자의 기분은 흐뭇하다.이 자유와 민주도의 체험을 심화시키는 우리 시대가 소중하다.그 소중함을 훼손시키지 않는 책임이 방송에는 있다.

○시청률 경쟁·상업성 경계

대선주자들의 품위를 생각하는 시청자의 소리도 묵살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시청률 경쟁과 상업주의는 경계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최근 서울에서 열린 한 국제 세미나에서 중국측 참가자는 이런 비판을 했다.“영국이라나 어디서 죽은 왕실여자 이야기에 그렇게 많은 전파를 쓰는 한국 방송이 이해되지 않았다.그보다는 어느 고등학생들이 물에 빠진 어린동생들을 구하고 희생된 이야기가 훨씬 더 많이 보도되어야 하지 않겠는가,요즈음 한국에서는 청소년문제도 심각하다던데…”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의 참가자다운 반응이기는 하지만 그의 말에는 방송의 공공기능을 생각해보게 하는 대목이 들어있다.지진이 났을때 일본의 방송이 보이던 보도태도는 우리를 반성하게 했었다.시신을 발굴하는 현장에 휘장을 치고 단 한번도 적나라한 주검을 비친 적이 없었다.하다못해 흰천이 덮인 관을 즐비하게 늘어놓은 모양도 비친 일이 없었다.유족들의 ‘몸부림’도 보여주지 않았다.희생자들의 ‘품위있는 죽음’의 권리를 철저히 지켜주는 태도가 놀라웠다.

○놀라운 위력만큼 책임도

아직 젊은 매체인 방송은 그 위력의 놀라움에 오랫동안 취해 있는 것같다.잘드는 도끼의 위력을 시험해보기 위해 자르지 않아도 좋을 생나무를 자르는 지각없는 호기심도 없지 않다.대선주자들을 ‘삶의 현장’으로 끌어내는 일이 시청자에게는 그렇게 비칠수 있다.미국에 사는 한인이 흑인과 시비가 붙자 태권도 자세를 취했다가 상대방이 쏜 총에 희생된 사건이 있었다.유족이 총쏜 사람을 고소했지만 재판에선 졌다.태권도는 인명을 살상할 수 있는 격투기이므로 그 자세를 보고 총을 쏜 것은 정당방위라는 것이다.황당한 것 같지만 이런 논리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모든 의견이 있을수 있다.

위력이 놀라운만큼 책임도 크게 따른다.이번 선거가 전적으로 방송매체가 주도하는 선거가 될 것이라고들 말한다.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방송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본사고문〉
1997-09-11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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