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록 꼬까의 5월을 기리노니(박갑천 칼럼)

연초록 꼬까의 5월을 기리노니(박갑천 칼럼)

박갑천 기자 기자
입력 1997-04-30 00:00
수정 1997-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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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연초록 웃음으로 문을 연다.진초록으로 가는 여린 푸르름.어머니 입김같은 명지바람인데도 행여 다칠까 마음죄게 하는 생명들이 점지받은 이승을 노래한다.계절의 어린이다.

그렇다.이윽고 헤살부려올 모진 비바람 모르는 양 웃는 어린이의 모습이 5월이다.「맹자」(리루하)는 『대인이란 어린아이처럼 순진한 마음을 지니는 사람』이라고 했다.연초록 꼬까에 티없이 방실거리는 5월은 그래서 대인이다.대인의 보법을 보인다.저 물쩡해뵈는 잎이 추위에 어찌 앙버티면서 딴딴하고도 억센 장벽을 뚫고나온 것인고.「노자」가 말한 유능제강(부드러움이 단단함을 이김)의 철리를 새삼 곱씹어보게 하는 눈엽의 5월이다.

왜 그러는걸까.진달래 개나리하며 목련 등은 꽃부터 핀다.그게 섭리의 웃음인 봄꽃의 눈비음.그것도 유능제강을 보이기 위함이던가.그 웃음을 거둬들이면서 잎을 틔운다.웃음에 갈음하여 솟구치는 잎은 그러므로 생명의 엄숙함과 장엄함을 가르친다.파란 부활.생명의 영원을 약속하는 섭리의 결연한 의지이다.그걸 펼쳐뵈는 5월은 위대하다.두견을 울게하고 꾀꼬리를 미치게하는 달이 5월이라고 했던 사람은 김영랑이었지,아마.어디 꾀꼬리만 미치게 하는 것이던가.그에 앞서 5월의 여린 잎들은 장끼와 까투리의 미침도 잊은 정사부터 엿보던 것을.그러고서 5월은 피토하는 두견의 울음소리를 보내어 다가올 세파를 미리 알린다.그 옛날 슬프디 슬프게 영월땅으로 쫓겨간 단종임금도 들었던 두견(자규)의 울음소리.자신의 신세를 거기 엇섞은 시가 세월의 흐름속에서도 애끊는 눈물을 자아내게 하는 달 5월이다.

지금은 남의 얘기다.하나 50년대까지만 해도 넘기가 아프고 서러운 보릿고개를 안았던 5월.풀뿌리 캐먹고 나무속껍질 핥던 그 시절의 5월 하루해는 왜그리 길던 것인고.『사람이 살면은 몇백년이나 산단 말이냐…』고 구성지게 울먹이던 육찬이의 육자배기가락은 아지랭이속으로 가물가물 스러져갔거니.가난한 죄로 「장가한번」 못간 그 상머슴이 살아있다면 지금쯤 여든도 넘어있는 것이리라.

해마다 5월은 왜오는가.꽃피고서 시들고 사랑하고서 미우며 가멸진 다음 가난해지고 젊은 다음 늙어가는… 돌고도는 이치 알려주고자 온다고 해두자.그걸 느끼는 가운데 가정의 달 5월을 푸르고 싱싱하게 보내야겠다.〈칼럼니스트〉

1997-04-3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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