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사건과 노점상 할머니/이원종 서원대 총장(굄돌)

한보사건과 노점상 할머니/이원종 서원대 총장(굄돌)

이원종 기자 기자
입력 1997-04-02 00:00
수정 1997-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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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사태가 산불 번지듯 이곳저곳으로 옮겨붙어 온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그 불은 금융계·관계·정계 등을 가리지 않고 마구 태우더니 결국 가장 존경받아야 할 국가원수까지 어깨 처진 모습으로 TV 앞에 서게 함으로써 국민 모두의 마음에 3도화상을 입히고 말았다.더욱이 책임있는 자리를 차지하고 지도자 반열에 속한 수많은 인사들이 줄줄이 먹이사슬에 얽힌 추한 모습을 보고 국민은 분하다 못해 허탈에 빠져 있다.『과연 우리에게도 희망이 남아있을까』라고….

지난 겨울 눈이 내린 다음날 집 근처 대모산으로 등산가는 길이었다.여든도 넘어 보이는 늙으신 할머니 한분이 얼어붙은 보도위에 채소 서너묶음을 놓고 앉아 팔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나는 지나쳐 산을 오르면서도 『얼마나 추우실까』 『부양해 줄 가족이나 있을까』『몽땅 다 판다 해도 몇푼 안될텐데』 등 줄곧 할머니 생각에 사로잡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예정을 바꾸어 갔던 길로 되돌아오니 할머니 앞에는 채소 한묶음만이 남아 있었다.500원을 주고 그 채소를 산 다음 활짝 웃는할머니의 언 손에 2만원을 쥐어드렸다.그러나 기뻐할 줄 알았던 할머니가 돈임을 확인하고는 『이게 무슨 경우냐』며 한사코 거절하는 바람에 무안하기까지 하였다.

가난하지만 명분없이 도움받기를 꺼려한 그 할머니의 채소 한묶음과,국민 위에 선 힘있는 자들의 2천억원은 어느쪽이 더 무거울까.세상이 아무리 시끄럽고 다 썩은 것 같아도 노점상 할머니같이 정직하게 사는 시민이 많은 한 희망은 있다.한보사태가 아무리 깊은 상처를 남길지라도 가난한 할머니의 깨끗한 삶의 자세는 「판도라 상자 속에 남은 희망」처럼 우리 마음을 치유해 주고 새살이 돋아나게 해주리라.세상살이가 우울한 이때 위로가 되어주신 이름모를 할머니에게 건강과 기쁨이 함께하기를 빈다.

▷굄돌 필진이 바뀝니다◁

4∼5월에는 박정란·유시왕·이원종·정준극씨가 맡습니다.

▲박정란(56)=방송작가.이화여대 국문과 졸.68∼9년 KBS·MBC 라디오 단막극 공모에 잇따라 당선.91년 KBS­TV 「울밑에 선 봉선화」로 한국방송대상·한국방송작가상·백상예술대상 등 수상.

▲유시왕(45)=동서경제연구소장·금융개혁위원회 자문위원.서울대 졸,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 박사(인사관리).동대학 교수 역임.

▲이원종(55)=서원대 총장.성균관대 행정학과 졸.행정고시 4회.충북도지사·서울시장·성균관대 행정대학원 교수 역임.

▲정준극(56)=한국원자력연구소 부장(책임기술원).외대 독문과 졸.대한일보사 기자,원자력안전센터 원우실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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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월에 수고하신 박상우·송상용·송우혜·조유전씨께 감사드립니다.
1997-04-02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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