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품어린 눈매에 인본주의 향한 열정이
고려시대 책에는 그림에 대한 기록이나 그림에 붙여놓은 글월인 제화시가 꽤 전해오고 있다.그럼에도 실물의 그림이 흔치 않아 그 흐름이나 화풍을 속속들이 들여다 보기는 어렵다.부처나 보살을 그린 종교화 성격의 불화를 빼고나면 고려회화는 몇 점에 지나지 않는다.공민왕이 그렸다는 두 점의 수렵도 이외에 신선과 학을 그린 그림,초상화 등이 고작이다.
초상화로는 안향(1243∼1306년)의 영정이 있다.경북 영주시 순흥 내죽리 소수서원이 소장한 이 초상화는 고려시대에 그린 그림을 조선 명종때 그대로 베껴 그린 모본이다.그러나 고려 초상의 전통을 보여주는 그림이어서 국보111호로 지정되었다.세로 37㎝,가로 29㎝ 크기의 비단 바탕에 물감을 써서 그린 본격 초상화다.누가 그렸다는 기록은 전혀 남기지 않았다.
요새 사람들이 마치 독사진을 찍는 것처럼 포즈를 잡았다.관복이 아닌 평상복 차림이지만 모자까지 갖추었다.모자는 천으로 만든 문라건인듯 한데,요즘 역사드라마에 나오는 문라건 보다는 춤이 좀낮았다.그리고 고려인들의 일상적인 겉옷 수포를 입었다.눈 높이를 약간 비켜서 위쪽에다 눈길을 준 초상의 주인공은 전체적으로 단정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고려의 선비다.어떤 볼룸이 들어가지 않은 평면의 초상화일지라도 사실적으로 보인다.눈썹과 눈,수염 등을 가느다란 선으로 꼼꼼이 처리했기 때문인 것이다.눈썹과 수염은 터럭 하나하나를 정성들여 그렸다.은행알을 닮은 눈매에는 쌍꺼풀이 지지 않아 눈이 더 없이 깔끔했다.그리고 동자가 맑아 기품이 어렸다.길어 보이는 코는 옅은 묵선을 그어 표현하고 입술은 얼굴색보다 더 붉은 색깔을 입혔다.맞물린 입술사이에 진한 묵선을 가로 그었다.그래서 과묵한 표정이 되었다.
이 초상화에서 만난 고려인 안향.고려불화에서 보아 온 불·보살들과는 달리 인간적인 얼굴로 다가왔다.그가 살았던 고려 후기는 위기의 시대였다.무신집권에서 비롯한 정치의 불안정,불교의 타락과 무속의 성행,몽고의 침탈 등이 위기의 실마리가 되었다.그러한 시대상황속에서 안향은 불교보다 주자학을 받아들여 이상을 실현코자 했다.특히 인재양성을 통해 인간이 지배하는 인본주의 사회를 꿈 꾸었던 것이다.그러고 보면 이 초상에는 자기수양의 그늘이 배어있다.<황규호 기자>
고려시대 책에는 그림에 대한 기록이나 그림에 붙여놓은 글월인 제화시가 꽤 전해오고 있다.그럼에도 실물의 그림이 흔치 않아 그 흐름이나 화풍을 속속들이 들여다 보기는 어렵다.부처나 보살을 그린 종교화 성격의 불화를 빼고나면 고려회화는 몇 점에 지나지 않는다.공민왕이 그렸다는 두 점의 수렵도 이외에 신선과 학을 그린 그림,초상화 등이 고작이다.
초상화로는 안향(1243∼1306년)의 영정이 있다.경북 영주시 순흥 내죽리 소수서원이 소장한 이 초상화는 고려시대에 그린 그림을 조선 명종때 그대로 베껴 그린 모본이다.그러나 고려 초상의 전통을 보여주는 그림이어서 국보111호로 지정되었다.세로 37㎝,가로 29㎝ 크기의 비단 바탕에 물감을 써서 그린 본격 초상화다.누가 그렸다는 기록은 전혀 남기지 않았다.
요새 사람들이 마치 독사진을 찍는 것처럼 포즈를 잡았다.관복이 아닌 평상복 차림이지만 모자까지 갖추었다.모자는 천으로 만든 문라건인듯 한데,요즘 역사드라마에 나오는 문라건 보다는 춤이 좀낮았다.그리고 고려인들의 일상적인 겉옷 수포를 입었다.눈 높이를 약간 비켜서 위쪽에다 눈길을 준 초상의 주인공은 전체적으로 단정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고려의 선비다.어떤 볼룸이 들어가지 않은 평면의 초상화일지라도 사실적으로 보인다.눈썹과 눈,수염 등을 가느다란 선으로 꼼꼼이 처리했기 때문인 것이다.눈썹과 수염은 터럭 하나하나를 정성들여 그렸다.은행알을 닮은 눈매에는 쌍꺼풀이 지지 않아 눈이 더 없이 깔끔했다.그리고 동자가 맑아 기품이 어렸다.길어 보이는 코는 옅은 묵선을 그어 표현하고 입술은 얼굴색보다 더 붉은 색깔을 입혔다.맞물린 입술사이에 진한 묵선을 가로 그었다.그래서 과묵한 표정이 되었다.
이 초상화에서 만난 고려인 안향.고려불화에서 보아 온 불·보살들과는 달리 인간적인 얼굴로 다가왔다.그가 살았던 고려 후기는 위기의 시대였다.무신집권에서 비롯한 정치의 불안정,불교의 타락과 무속의 성행,몽고의 침탈 등이 위기의 실마리가 되었다.그러한 시대상황속에서 안향은 불교보다 주자학을 받아들여 이상을 실현코자 했다.특히 인재양성을 통해 인간이 지배하는 인본주의 사회를 꿈 꾸었던 것이다.그러고 보면 이 초상에는 자기수양의 그늘이 배어있다.<황규호 기자>
1997-03-29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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