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섭 파푸아뉴기니대사 「일본인과 천황」

서현섭 파푸아뉴기니대사 「일본인과 천황」

김종면 기자 기자
입력 1997-03-04 00:00
수정 1997-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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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가 허구를 낳는 천황제의 허울/신화를 역사에 편입시켜 만든 ‘125대의 가계’/거울·칼·구슬 3개의 신기에 담긴 「현인신」 실상

일본의 「고사기」나 「일본서기」에는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오미카미(천조대신)의 자손이 기원전 660년에 나라를 세우고 천황에 즉위했다는 대목이 나온다.일본인들은 이를 근거로 이 인물이 바로 제1대 진무천황이며,따라서 천황가는 지금의 아키히토(명인)천황에 이르기까지 125대에 걸쳐 만세일계로 이어져왔다고 주장한다.신화를 역사에 편입시켜 허구의 역사를 만들어내는 일본인.그들에게 천황은 이미 「논리」가 아니라 하나의 완고한 「신앙」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최근 출간된 「일본인과 천황」(고려원)은 일본인의 정신적 지주인 천황제를 통해 본 또하나의 일본론이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지은이는 「일본은 있다」「일본인과 에로스」 등 일본관련서를 펴내 널리 알려진 서현섭씨(53·파푸아뉴기니대사).

그는 이 책에서 천황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46개의 함축적인 소제목으로 나눠 소개한다.「허구가허구를 낳는」 천황제의 허울을 벗기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일본인들은 천황은 현인신이라는 가공의 개념을 유지하기 위해 거울·칼·구슬 등 3종의 신기와 천황가의 만세일계 신화를 고안해냈다.일본인들이 받들어 모시는 신기는 과연 천년의 풍상과 천황가 내분의 소용돌이를 견뎌온 진품일까.이에 대해서는 일본학자들조차 실체를 알 수 없다는 애매한 답변을 한다.만세일계 신화도 허구로 가득차 있다.만세일계 신화는 일본의 천황가가 혈통의 카리스마를 매우 중요시하고 있음을 반증한다.황실전범이 황위계승자를 장남,장손 등 남자로 국한하고 있으며 양자입양을 금지하고 있는 것도 바로 천황가의 혈통숭배 때문이다.지은이는 일본인들이 입버릇처럼 되뇌는 만세일계의 허상을 구체적인 사실을 들어 폭로한다.일본은 14세기 초부터 약 60년간 천황가가 남북조로 양분돼 서로 정통성을 주장하며 항쟁을 벌였다.일본 정치에서 말하는 이른바 남북조시대다.결국 남조가 북조에 의해 흡수되었지만 후세의 사가들에 의해 남조가 정통성을 회복함으로써 당시의 북조 천황 5명은 천황 대수에서 빠져버리는 「실수」가 생겼다.현재의 아키히토 천황이 북조계에 속하고 있는 점도 흥미롭다.남조의 혈통만을 더듬어 올라가면 더 많은 천황을 계보에서 누락시켜야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만세일계의 신화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도록 치장하는데 몰두하고 있다는 게 지은이의 지적이다.

이 책은 또 일본인들이 제1대 진무천황부터 제33대 스이코(추고)천황까지의 간격이 천년이상 벌어진 사실을 눈가림하기 위해 고대 천황들의 나이를 억지로 짜맞추었음을 밝힌다.일본 천황제 이데올로기의 경전으로 꼽히는 「고사기」에 의하면 초대 진무천황은 137세,10대 스진(숭신)천황은 168세까지 장수했다는 것.구약성서에 나오는 아담은 930세,노아는 950세까지 살았던데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 그들의 「논거」다.

「현인신의 굴욕」에 대한 기술도 눈길을 끄는 대목.특히 연합국 최고사령관 맥아더가 일본에서 5년7개월간에 걸쳐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는 동안 히로히토(유인)천황은 열한번이나 그를 찾아갔지만 맥아더는 단 한번도 답방을 하지 않았던 일,히로히토 천황이 인간선언문을 통해 「절대천황」의 허물을 벗고 「상징천황」으로 탈바꿈하는 역사적 순간 등을 실감나게 묘사한다.



일본역사를 훑어보면 천황제가 영원히 사라질 뻔한 때도 있었다.에도(강호)시대에는 천황제를 공식적으로 폐지할 수도 있는 실력을 갖춘 막강한 바쿠후(막부)가 존재했다.그러나 바쿠후의 쇼군(장군)은 천황제가 권력통일에 이용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천황제를 존속시켰다.천황제가 숱한 우여곡절속에서도 여전히 일본국민의 지지를 얻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지은이는 그 비결을 『천황가가 권위와 권력을 분리시킨 지혜』에서 찾는다.일본인들에게는 영원한 정신의 고향이지만 국외자의 눈에는 「바벨탑의 우상」으로 비칠 수밖에 없는 천황제.이 책은 바로 그 천황제의 허와 실을 직시해 일본을 이길 것을 권한다.<김종면 기자>
1997-03-04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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