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백살을 산다 해도 병든 날 잠든 날 걱정근심 다 제하면 단 사십을 못사는 인생,한번 아차 죽어지면 싹이 나느냐 움이 나느냐… 명사십리 해당화는 동삼 석달 죽었다가 봄이 오면 다시 피련만 우리 인생 한번 가면 어느 시절 다시 오나,생각하면 묘창해지일속이라…』
남루지만 정갈하기 그지없는 장삼에 삭발자국이 파르스름한 채 대문간에 서서 이런 「회심곡」을 들려주는 탁발스님이 옛날에는 있었다.구성지고 절절한 그 노래를 다 듣기 위해 어머니들은 시주거리를 들고서도 선뜻 나서지 않고 부엌문 뒤에 숨어서 끝나기를 기다리곤 하셨다.인생무상과 부모은중의 뜻,그리고 덕행의 독려가 구구절절한 회심곡 한곡을 적선과 바꾸고 표표히 떠나는 탁발승의 걸음에는 마알갛게 승화된 무욕의 아름다움이 배어 있었다.
탁발은 그것으로 거두는 실제의 구제보다는 목탁을 두드리며 외는 염불이나 구성진 회심곡 한가락이 중생의 마음을 울리는 구제를 더 크게 여겼을 것이다.그 탁발이 「구걸」로 절하된 것을 꺼려 금지한 것을 조계종 종단차원에서 재현하는 행사가 있었다.불우이웃과 북한동포 돕기가 취지다.
그러나 복잡하고 현란한 현대도시의 도심에서 벌인 오늘의 탁발은 옛날과는 영 다르다.기회있을 때마다 정치적 비중이 육중하게 돋보이던 스님이 윤기 있는 장삼과 가사차림으로 즐비하게 참여하고 그 곁에는 부유해 보이는 여신도의 패셔너블한 매무새가 날아갈 듯 화사하게 따르고 있다.
세월이 달라졌음을 실감케 하는 이런 탁발에는 시주도 단위가 높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살림에 고달픈 시정의 아낙에게 위로를 주던 「회심곡」의 선사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기우」겠지만 이런 것을 흉내낸 사이비 시주의 강요가 정당화되는 부작용도 염려된다.굳게 닫친채 열릴줄 모르는 여염이라 탁발에 나서는 스님도 한계를 느낄 것 같다.모처럼 재현된 도심의 탁발이 안쓰럽게 느껴진다.<송정숙 본사고문>
남루지만 정갈하기 그지없는 장삼에 삭발자국이 파르스름한 채 대문간에 서서 이런 「회심곡」을 들려주는 탁발스님이 옛날에는 있었다.구성지고 절절한 그 노래를 다 듣기 위해 어머니들은 시주거리를 들고서도 선뜻 나서지 않고 부엌문 뒤에 숨어서 끝나기를 기다리곤 하셨다.인생무상과 부모은중의 뜻,그리고 덕행의 독려가 구구절절한 회심곡 한곡을 적선과 바꾸고 표표히 떠나는 탁발승의 걸음에는 마알갛게 승화된 무욕의 아름다움이 배어 있었다.
탁발은 그것으로 거두는 실제의 구제보다는 목탁을 두드리며 외는 염불이나 구성진 회심곡 한가락이 중생의 마음을 울리는 구제를 더 크게 여겼을 것이다.그 탁발이 「구걸」로 절하된 것을 꺼려 금지한 것을 조계종 종단차원에서 재현하는 행사가 있었다.불우이웃과 북한동포 돕기가 취지다.
그러나 복잡하고 현란한 현대도시의 도심에서 벌인 오늘의 탁발은 옛날과는 영 다르다.기회있을 때마다 정치적 비중이 육중하게 돋보이던 스님이 윤기 있는 장삼과 가사차림으로 즐비하게 참여하고 그 곁에는 부유해 보이는 여신도의 패셔너블한 매무새가 날아갈 듯 화사하게 따르고 있다.
세월이 달라졌음을 실감케 하는 이런 탁발에는 시주도 단위가 높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살림에 고달픈 시정의 아낙에게 위로를 주던 「회심곡」의 선사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기우」겠지만 이런 것을 흉내낸 사이비 시주의 강요가 정당화되는 부작용도 염려된다.굳게 닫친채 열릴줄 모르는 여염이라 탁발에 나서는 스님도 한계를 느낄 것 같다.모처럼 재현된 도심의 탁발이 안쓰럽게 느껴진다.<송정숙 본사고문>
1997-02-28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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