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지금 나타난 결과는 내가 그 원인을 만들었던 것.좋은 원인을 지었으면 좋게,나쁜 원인을 지었으면 나쁘게 나타난다.
이를 두고 불교에서는 삶의 어제·오늘·내일을 말한다.전생·금생·내생이다.금생에 병으로 골골거리는 사람은 전생에 남을 괴롭혔기 때문이다.금생이 건강한 사람은 전생을 자비심으로 살았다.전생에 사람을 죽였으면 금생의 명은 짧고 전생에 남을 위한 사람은 금생에 오래 산다.얼굴이 미운 사람은 전생에 성을 많이 냈고 고운 사람은 노상 웃었다….그러니까 금생에 선근을 심어야 내생의 삶이 가멸지다.불교는 과거에 대해서는 숙명론이지만 미래에 대해서는 노력론 쪽으로 기운다.
이같은 불가의 생각이 유가라 해서 없는 것은 아니다.이를테면 「죽창한화」에 씌어 있는 헌평공 이봉에 대한 얘기도 그걸 느끼게 한다.이봉은 목은의 증손인데 성격이 살천스러웠다.그가 형조판서로 옥사를 다스릴 때 엄격했고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많았다.같은 집안인 후세의 토정 이지함이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헌평공이 돌아간 지 백년이 넘는데 그 자손이 겨우 비렁뱅이나 면하고 있음은 형옥을 야나치게 다스린 옰이 아니겠느냐』 여낙낙함이 없는 서릿발성품이 자손의 불행으로 이어졌다는 뜻이다.
그래서 「맹자」(공손축상)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화나 복은 스스로 구하지 않는 것이 없다』 뿌린 씨앗대로 거둔다는 뜻이다.다른 곳(리루상)에서는 이렇게도 가르친다.『내가 스스로를 업신여기면 남도 또한 나를 업신여기고 내가 스스로 내집을 훼손하면 남 또한 내집을 훼손하며 내가 스스로 내 나라를 파괴하면 남 또한 내 나라를 파괴하게 되느니라』 그러면서 「서경」(태갑편)의 글귀를 끌어들여 이렇게 매듭짓는다.『하늘이 지은 재화는 혹 피할 수도 있으나 나 스스로 지은 재화로부터는 결코 벗어나 살 길이 없느니라』
이번 큰 비가 내리기 전까지 아침일찍 일산에서 서울로 들어오면서 보게 되는 것은 뿌연 연무다.거의 날마다라 할 만큼 낀다.유독가스 속으로 들어가는구나 하는 두려움.비내린 다음날 아침이라 해서 달라지지도 않으니 더 수꿀해진다.오존주의보 내린 까닭도 그런데 있었겠지.하지만 주의보 내린다고 오존이 없어질 리 없다.원인은 우리 모두가 만들지 않았는가.그 결과 앞에서 목죔당하는 괴로움에 떨고들 있다.살아날 길은 스스로 나서서 재화의 원인을 없애나가는 데 있을 뿐이다.〈칼럼니스트〉
이를 두고 불교에서는 삶의 어제·오늘·내일을 말한다.전생·금생·내생이다.금생에 병으로 골골거리는 사람은 전생에 남을 괴롭혔기 때문이다.금생이 건강한 사람은 전생을 자비심으로 살았다.전생에 사람을 죽였으면 금생의 명은 짧고 전생에 남을 위한 사람은 금생에 오래 산다.얼굴이 미운 사람은 전생에 성을 많이 냈고 고운 사람은 노상 웃었다….그러니까 금생에 선근을 심어야 내생의 삶이 가멸지다.불교는 과거에 대해서는 숙명론이지만 미래에 대해서는 노력론 쪽으로 기운다.
이같은 불가의 생각이 유가라 해서 없는 것은 아니다.이를테면 「죽창한화」에 씌어 있는 헌평공 이봉에 대한 얘기도 그걸 느끼게 한다.이봉은 목은의 증손인데 성격이 살천스러웠다.그가 형조판서로 옥사를 다스릴 때 엄격했고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많았다.같은 집안인 후세의 토정 이지함이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헌평공이 돌아간 지 백년이 넘는데 그 자손이 겨우 비렁뱅이나 면하고 있음은 형옥을 야나치게 다스린 옰이 아니겠느냐』 여낙낙함이 없는 서릿발성품이 자손의 불행으로 이어졌다는 뜻이다.
그래서 「맹자」(공손축상)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화나 복은 스스로 구하지 않는 것이 없다』 뿌린 씨앗대로 거둔다는 뜻이다.다른 곳(리루상)에서는 이렇게도 가르친다.『내가 스스로를 업신여기면 남도 또한 나를 업신여기고 내가 스스로 내집을 훼손하면 남 또한 내집을 훼손하며 내가 스스로 내 나라를 파괴하면 남 또한 내 나라를 파괴하게 되느니라』 그러면서 「서경」(태갑편)의 글귀를 끌어들여 이렇게 매듭짓는다.『하늘이 지은 재화는 혹 피할 수도 있으나 나 스스로 지은 재화로부터는 결코 벗어나 살 길이 없느니라』
이번 큰 비가 내리기 전까지 아침일찍 일산에서 서울로 들어오면서 보게 되는 것은 뿌연 연무다.거의 날마다라 할 만큼 낀다.유독가스 속으로 들어가는구나 하는 두려움.비내린 다음날 아침이라 해서 달라지지도 않으니 더 수꿀해진다.오존주의보 내린 까닭도 그런데 있었겠지.하지만 주의보 내린다고 오존이 없어질 리 없다.원인은 우리 모두가 만들지 않았는가.그 결과 앞에서 목죔당하는 괴로움에 떨고들 있다.살아날 길은 스스로 나서서 재화의 원인을 없애나가는 데 있을 뿐이다.〈칼럼니스트〉
1996-06-19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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