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의 성공요인 「문화」서 찾는건 위험”/“공통문화 부재… 「아시아 특성」도 서구서 비롯 「중국파워」에 소극 대응땐 안보위험 올수도”
동아시아의 경제적,사회적 성공을 이 지역만의 독특한 문화의 공으로 돌리는 견해가 일반화되고 있다.그러나 제럴드 세걸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선임연구원은 이를 정면으로 반박,이런 아시아의 「문화주의」는 진실을 잘못 파악한 것으며 특히 안보문제와 결부됐을 땐 심각한 위험을 자초할 가능성이 있음을 경고한다.미 보수계 계간지 「내셔널 인터레스트」에 소개된 그의 글을 요약한다.
지난 95년 1월 중국이 남중국해상의 필리핀령을 점령했을 때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나라들은 서구인에겐 「소심하고 미온적」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 대응으로 일관했다.이에 관해 세계의 여타 지역,특히 거칠고 둔감한 서구와 문화적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안보등 여러 문제에 대해서 서구 전문가들마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접근태도를 보인다고 아시아인 스스로는 주장한다.
현재 동아시아에서 통용되는정치적 및 경제적 관행이 아주 독특한 것만은 사실이다.그러나 이 남다름을 문화적 알맹이가 다르기 때문에 그렇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것은 내 생각엔 피상적이고,설득력이 없으며,또 위험하기 조차하다.문화 때문에 남과 다르다고 주장되고 있는 많은 것들이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더구나 설사 뭔가 다르다고 하더라도,남다르다는 단지 그 이유 하나로 남보다 낫다든가 성공할 운명이다는 식으로 아시아인이나 다른 사람들이 생각한다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다.
아주 근본적인 하나의 이유에서 아시아의 문화나 문명은 아시아의 안보문제에 관해 별 할말이 없다.단순한 지리적 의미외에 「아시아적」이라고 설득력있게 정의내릴 것이 별로 없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이 지역의 전부 혹은 대다수 국가및 사회에 공통적이면서 동시에 역외,특히 서구에서 일반적인 것과는 다른 것을 찾기 어렵다는 말이다.
유교 회교 불교 일본신도 도교 등 각자 독특한 윤리적·형이상학적 자세를 견지하는 세계적 종교들이 이곳에 공존한다.아시아 각국의 역사적 경험과 사회형태는 엄청나게 서로 달라,기독교의 일관된 지배,로마제국과 같은 통합체,문예부흥,종교개혁,계몽시대 등 서구의 역사를 특징짓는 장대한 공통경험이 거의 없는 것이다.이 거대한 지역의 문화적·문명적 단일성과 연속성에 관한 가정과 주장은 뒷받침거리가 빈약할 따름이며 조금만 살펴봐도 서로 서로 달라 아주 다양하며 또한 급속히 변하는 것을 알게 된다.
수많은 국가·사회의 거대한 집합체이면서 동시에 공통의 가치관 전망 행동양태를 공유하고 있다는 「아시아」의 문화적 통합·단일론은 하나의 「신화」에 불과할 가능성이 짙다.신화는 새로운 현실 체계마저도 창조할 수 있는데 아시아 여러나라의 지도자들은 서구와의 관계,근대화 등 두가지 어려운 일을 다루는 데에 「아시아」란 신화를 긴요하게 쓸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아시아 국가들의 가장 큰 역사적·문화적 공통경험은 서구에 의한 심대한 충격이었다.「아시아」란 용어 바로 그자체가 서구에서 수입된 것이며 이 지역은 본토박이에 의해서가 아니라 서구인의 눈과 마음에서 처음으로 단일통일체로 존재하기 시작했다.서구지식층에 의한 영향과 서구열강들에 대한 반동의 결과로서 아시아인들의 입에서 「아시아의 통일성」「아시아의 견해」「아시아의 부상」이란 말이 흘러나오게 된 것이다.
이처럼 아시아나 동아시아에 통합되고 영속적인 문화가 존재한다는 생각은 어설픈 허구이다.그렇기는 하나 「안보」와 연관지을 때 아시아,특히 동아시아에 딴곳과는 구별되는 특징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나라와 지역마다 안보문제에 접근하는 데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게 마련인데 이 서로다름을 문화보다 지역의 특수한 조건으로 설명하는 편이 더 낫다.그러므로 같은 울타리내 한지역으로서 동아시아의 「안보」이지 추상적·정신적으로 뭔가 통일되어 단일체를 이룬 듯한 「동아시아」의 안보가 아닌 것이다.
이 동아시아의 경우 이 지역의 가장 분명한 특징은 무시무시하게 도사리고 있는 중국의 존재이며 바로 이점이 문화「나부랭이」보다도 솔직하게 현 동아시아 안보문제의 남다른 측면들을 잘 설명해 준다.많은 동아시아 국가들은 이 점을 잘 알면서도 중국과 직접적으로 문제를 논하고 협상하는 것을 꺼린다.그리고선 정면대응하지 못하는 이같은 자신들의 소심함을 아시아적 문화의 진수인 양 허울을 씌우고 있다.경제적 성공 경험에 의거해,이런 미온적 태도로서도 안보문제를 성공시킬 자신을 가진 탓일 수도 있겠다.그러나 문화를 운위하는 것은 어쩌면 취약하게 느껴지며 정치적 다원주의를 겁내는 현 역학구조를 감추는 방편일 수 있는 것이다.
무조건 동아시아는 중국에 정면대응해야 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동아시아는 지금 안보와 안정의 틀을 짜는 데 결정적인 순간을 맞고 있다.그런데 많은 동아시아인들은 「문화」를 구실로 이 지역 안보의 가장 분명한 남다른 특징인 중국의 힘을 솔직하게 논의하는 걸 기피하고 있다.이는 위험과 해를 자초한다.이런 근시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어느날 깨어보니 과거와 똑같이 중국에게 운명이 좌우되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이런 상황을 특별히 「문화」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영 국제전략연 연구원> <정리=김재영워싱턴특파원>
동아시아의 경제적,사회적 성공을 이 지역만의 독특한 문화의 공으로 돌리는 견해가 일반화되고 있다.그러나 제럴드 세걸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선임연구원은 이를 정면으로 반박,이런 아시아의 「문화주의」는 진실을 잘못 파악한 것으며 특히 안보문제와 결부됐을 땐 심각한 위험을 자초할 가능성이 있음을 경고한다.미 보수계 계간지 「내셔널 인터레스트」에 소개된 그의 글을 요약한다.
지난 95년 1월 중국이 남중국해상의 필리핀령을 점령했을 때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나라들은 서구인에겐 「소심하고 미온적」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 대응으로 일관했다.이에 관해 세계의 여타 지역,특히 거칠고 둔감한 서구와 문화적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안보등 여러 문제에 대해서 서구 전문가들마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접근태도를 보인다고 아시아인 스스로는 주장한다.
현재 동아시아에서 통용되는정치적 및 경제적 관행이 아주 독특한 것만은 사실이다.그러나 이 남다름을 문화적 알맹이가 다르기 때문에 그렇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것은 내 생각엔 피상적이고,설득력이 없으며,또 위험하기 조차하다.문화 때문에 남과 다르다고 주장되고 있는 많은 것들이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더구나 설사 뭔가 다르다고 하더라도,남다르다는 단지 그 이유 하나로 남보다 낫다든가 성공할 운명이다는 식으로 아시아인이나 다른 사람들이 생각한다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다.
아주 근본적인 하나의 이유에서 아시아의 문화나 문명은 아시아의 안보문제에 관해 별 할말이 없다.단순한 지리적 의미외에 「아시아적」이라고 설득력있게 정의내릴 것이 별로 없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이 지역의 전부 혹은 대다수 국가및 사회에 공통적이면서 동시에 역외,특히 서구에서 일반적인 것과는 다른 것을 찾기 어렵다는 말이다.
유교 회교 불교 일본신도 도교 등 각자 독특한 윤리적·형이상학적 자세를 견지하는 세계적 종교들이 이곳에 공존한다.아시아 각국의 역사적 경험과 사회형태는 엄청나게 서로 달라,기독교의 일관된 지배,로마제국과 같은 통합체,문예부흥,종교개혁,계몽시대 등 서구의 역사를 특징짓는 장대한 공통경험이 거의 없는 것이다.이 거대한 지역의 문화적·문명적 단일성과 연속성에 관한 가정과 주장은 뒷받침거리가 빈약할 따름이며 조금만 살펴봐도 서로 서로 달라 아주 다양하며 또한 급속히 변하는 것을 알게 된다.
수많은 국가·사회의 거대한 집합체이면서 동시에 공통의 가치관 전망 행동양태를 공유하고 있다는 「아시아」의 문화적 통합·단일론은 하나의 「신화」에 불과할 가능성이 짙다.신화는 새로운 현실 체계마저도 창조할 수 있는데 아시아 여러나라의 지도자들은 서구와의 관계,근대화 등 두가지 어려운 일을 다루는 데에 「아시아」란 신화를 긴요하게 쓸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아시아 국가들의 가장 큰 역사적·문화적 공통경험은 서구에 의한 심대한 충격이었다.「아시아」란 용어 바로 그자체가 서구에서 수입된 것이며 이 지역은 본토박이에 의해서가 아니라 서구인의 눈과 마음에서 처음으로 단일통일체로 존재하기 시작했다.서구지식층에 의한 영향과 서구열강들에 대한 반동의 결과로서 아시아인들의 입에서 「아시아의 통일성」「아시아의 견해」「아시아의 부상」이란 말이 흘러나오게 된 것이다.
이처럼 아시아나 동아시아에 통합되고 영속적인 문화가 존재한다는 생각은 어설픈 허구이다.그렇기는 하나 「안보」와 연관지을 때 아시아,특히 동아시아에 딴곳과는 구별되는 특징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나라와 지역마다 안보문제에 접근하는 데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게 마련인데 이 서로다름을 문화보다 지역의 특수한 조건으로 설명하는 편이 더 낫다.그러므로 같은 울타리내 한지역으로서 동아시아의 「안보」이지 추상적·정신적으로 뭔가 통일되어 단일체를 이룬 듯한 「동아시아」의 안보가 아닌 것이다.
이 동아시아의 경우 이 지역의 가장 분명한 특징은 무시무시하게 도사리고 있는 중국의 존재이며 바로 이점이 문화「나부랭이」보다도 솔직하게 현 동아시아 안보문제의 남다른 측면들을 잘 설명해 준다.많은 동아시아 국가들은 이 점을 잘 알면서도 중국과 직접적으로 문제를 논하고 협상하는 것을 꺼린다.그리고선 정면대응하지 못하는 이같은 자신들의 소심함을 아시아적 문화의 진수인 양 허울을 씌우고 있다.경제적 성공 경험에 의거해,이런 미온적 태도로서도 안보문제를 성공시킬 자신을 가진 탓일 수도 있겠다.그러나 문화를 운위하는 것은 어쩌면 취약하게 느껴지며 정치적 다원주의를 겁내는 현 역학구조를 감추는 방편일 수 있는 것이다.
무조건 동아시아는 중국에 정면대응해야 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동아시아는 지금 안보와 안정의 틀을 짜는 데 결정적인 순간을 맞고 있다.그런데 많은 동아시아인들은 「문화」를 구실로 이 지역 안보의 가장 분명한 남다른 특징인 중국의 힘을 솔직하게 논의하는 걸 기피하고 있다.이는 위험과 해를 자초한다.이런 근시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어느날 깨어보니 과거와 똑같이 중국에게 운명이 좌우되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이런 상황을 특별히 「문화」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영 국제전략연 연구원> <정리=김재영워싱턴특파원>
1996-02-01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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