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금동미륵보살상(한국인의 얼굴:35)

신라 금동미륵보살상(한국인의 얼굴:35)

황규호 기자 기자
입력 1995-06-30 00:00
수정 1995-06-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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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뜬 눈·작은 입가에 조용한 미소/윗입술까지 뻗은 선명한 인중선이 매력/네모꼴 얼굴에 화려한 장식의 보관 독특

신라 불교미술에서 걸작은 국보 78호 금동보살반가사유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국립박물관이 소장한 이 반가사유상은 백제의 반가사유상(서울신문 5월26일자 13면)보다 날렵한 인상을 안겨준다.그 이유는 얼굴 윤곽에도 있지만 장식이 화려한 높은 보관을 머리에 썼기 때문일 것이다.

이 보살의 얼굴은 둥글다기 보다는 네모꼴에 가깝다.얼핏 근엄해 보인다.그러나 가만히 옆 얼굴을 지켜보면 치깔은 눈매와 작은 입가에 약간의 웃음을 머금었다.근엄해 보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어디까지나 앳된 보살이어서 웃음을 참는데 한계가 있는 모양이다.미간에서 부터 높게 시작한 코는 오뚝하다 못해 예리하다.인중한 가운데를 세로로 지나가는 홈이 너무 선명하게 윗 입술에 맞물려 매력으로 작용했다.그 매력 포인트는 턱에도 나 있다.

보살이 어깨에 걸친 천의자락이 흘러내려와 무릎에서 교차되었다.윗옷에다는 끈을 달아 허리에 매었다.그 매듭은 요새 서양식의 리본 보다 더 아름답다.네모꼴 대좌에 천을 덮어 늘어뜨린 표현이 너무 사실적이어서 부드러운 느낌 마저 우라난다.보살은 그 대좌에 걸터앉았다.그냥 걸터 앉은 것이 아니고 왼발을 세워놓은 오른쪽 무릎 위에 올리고 왼손을 발에 얹었다.오른손 검지와 무명지를 슬며시 펴 뺨에 댔으니,생각하는 보살이다.

이 보살은 미륵이다.생각에 잠긴 앳된 미륵을 보노라면 문득 화랑의 모습으로 다가온다.꽃처럼 아름다웠다는 신라의 사내들 화랑으로 환생하여….사실 불교의 미륵신앙과 화랑은 무관한 처지가 아니다.신라 사람들은 여섯 하늘(육천)의 하나인 도솔천(두률천)에서 내려온(하생)미륵이 화랑의 우두머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미륵을 따르는 집단이 화랑이었다는 사실은 김유신의 화랑집단을 일러 미륵이 건설한 이상세계의 향내나는 무리라하여 용화향도로 불렀다는 기록에서 입증할 수 있다.

신라에서 화랑을 공식화 한 것은 진흥왕(서기 540∼576년)때다.그 목적은 군조직의 보충 수단이었지만 장기적으로는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재양성에 있었다.그래서 교육 및 군사 기능 이외에 사교단체 구실도 했다.노래와 춤도 화랑도 수련의 필수과정이었다.화랑을 풍월주라고 했던 까닭도 바로 여기 있지않나 한다.이들은 6세기 중엽 부터 삼국통일을 이룩하는 7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존속한 청소년 공동체였던 것이다.

어떻든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화랑들이 가장 활기를 띠었던 서기 600년을 전후한 시기에 주로 제작되었다.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한 유물도 10여점에 이르고 있다.물론 삼국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즐겨 만들었으나 신라의 작품 만큼 많이 전해내려오지 않고 있다.그래서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야 말로 화랑들이 찾고 있던 미륵의 모습이었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도 6∼7세기에 이르는 시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황규호 기자>
1995-06-3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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