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바운더리 주택단지(세계의 명소/걸작 건축 감상:18)

영 바운더리 주택단지(세계의 명소/걸작 건축 감상:18)

장성준 기자 기자
입력 1995-06-10 00:00
수정 1995-06-10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철거대상서 “역사100년” 건물로 재탄생/1900년 불량가옥 헐고 지은 영최초 「사회주택」/막사배치식 설계 탈피… 공원·도로등 조화 이뤄

런던시 당국이 건설한 바운더리주택단지(BoundaryStreetHousingEstate)는 1백년 전통을 지닌 영국 사회주택의 최초 예이며 상징이다.사회주택(SocialHousing)은 지방정부가 건설해 서민에게 임대하는데,주택재고의 35%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크며 선거때마다 각 정당은 유권자를 의식하여 대책을 세우고 있다.

1900년에 건설된 이 공공임대아파트단지는 1960년대에 부분개조를 거쳐 근대식 주거단지로 바뀌었으며 1973년에는 역사적 건물로 지정되었다.런던 중심점에서 동측으로 5㎞ 지점에 있고,3개의 지하철 노선이 인근을 통과한다.

원래 이 지역은 찰스디킨즈의 소설 「올리버트위스트」(1838년)에서 묘사되다시피 범죄자들의 집합소나 극빈자들의 생존처로 알려진 곳이었다.의사와 목사는 대의회 증언에서 거주자의 경제적 열등을 감안할 때 지역의 주거환경은 그래도 양호한 편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시 주택위원회는 현지조사결과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1960년대 조금씩 개조

「건물은 모두 2층으로서,1층은 흙바닥 그대로이며 도로면보다 낮다.상당수의 건물은 원래 직조공장 겸 주택이었다.1만8천평의 부지에서 5천7백19명이 거주하는 인구밀도를 보이며 단칸방 거주자가 2천1백18명,방 2개 거주자는 2천2백65명으로 방 1개당 평균 세사람이 살고있다.이 지역의 사망률은 런던시 전체의 2배 이상이다」

이즈음 국회는 근로계층 투표권 부여법(1884년)근로계층주택법(1890년),공중보건법(1891년)을 제정했고 몇달후 런던시당국은 이 지역의 철거계획을 발표했다.

시당국이 주도하는 철거계획은 지주와 건물주의 반발을 샀는데,한편 진보주의자들은 지주가 이곳의 황폐화에 책임이 있다면서 보상 없이 철거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주택건설도 자유방임원칙에 따라 시당국이 건설하는 것을 반대하며 민간기업이 해야한다는 주장이 강했다.시당국은 토지매각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그대신 근로계층주택법에 따른 임대주택을 직접 건설할 것을 결정함으로써 최초의 사회주택단지가 탄생하게 되었다.

○중산층 주택 외관본떠

시 당국은 주택기준은 높이면서도 시의 보조를 줄이고 임대료는 인근과 비슷하게 한다는 어려운 조건속에서 일을 진행했다.기존 주민 수효와 비슷한 1천69호 4천5백56명을 수용하기로 한 이 단지의 설계기준은 ▲거실에서 현관과 부엌기능을 수용하며 ▲매호당 독립변소를 복도에,2∼3호당 공동개수대 1개씩을 복도에 두어 부엌과 세면장의 씻는 일을 하게하며 공동세탁실과 12개의 공동목욕장을 운영한다 ▲일조를 위하여 인동거리는 건물 높이의 1∼1.5배가 되도록 한다 ▲기존의 공장 학교 건물 등을 존치시키고 주민생업과 관계있는 점포를 몇개 동 아파트 뒤뜰에 설치한다는 것이었다.

새 종합계획은 흔히 사용되던 막사 배치식에서 탈피한 중앙공원과 방사상 도로의 경관적 도회마을이었다.설계는 런던시청의 오웬 훌레밍을 수석으로 한 공공건축가(건축직공무원)들에 의해 행해졌다.이들은 대부분 예술과 공예운동,잉글리시 복고조에 심취하고 윌리엄 모리스,필립 웨브,윌리엄 레타비 등에 영향받은 젊은 사회주의자로서 AA스쿨(영국건축가협회학교)을 갓 졸업한 이들이었는데 빈약한 재정에도 불구하고 단지와 건물은 성공적이라 평가된다.건물설계에 흐르는 원칙은 ▲총 19동의 주거건물은 4∼6층으로 모두 다른 설계에 의하며 ▲당시에 유행하던 기업건설 근로자주택과 비슷한 평면을 취하며 ▲외관이 건물의 질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믿고,양괴감을 줄이기 위한 층간의 분할수법,박공지붕의 복합구성,중산층 주택을 본뜬 외관구성,바레트벽,아르누보의 장식 등을 원용한다는 점에 있다.

신축아파트의 임대료는 방 1개에 평균치가 종전(철거전의 기존주택)과 비슷했으므로 초기의 목표는 성취된 듯이 보였다.그러나 초소형은 드물었고 2∼3개 방을 가진 주택이 대부분이었으므로 전부터 살던 원주민중 절반은 입주할 수 없었다.성냥갑제작·목공일·행상·노동자 등 생계유지선이하의 막벌이꾼은 임대료를 낼 수 없었으며,담배제조·사무원·순경·우편집배원·가구목공일·양복재단사·제화공 등이 새 주민이 되었다.심지어는 목사·간호원·의사·교사 등이 임차자로 받아들여지기까지 하였다.결론적으로 이 주거단지는 높은 질 때문에 저소득계층을 돕는 데는 실패했다고도 할 수 있다.

○설계·시공 솜씨 탁월

195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당국은 틈틈이 개량과 보수사업을 벌였다.단위주택간 개조에 의해 면적을 확장함으로써 주거수준을 향상시키는 것은 장차 있을 개량의 방향을 예시하는 것이기도 했다.거실공간을 키우고 근대적 설비의 부엌과 화장실을 주거내에 갖추었으며,전기배선·위생배관을 다시 하고,최신 열탕기를 설치하고,외벽면을 청소하여 줄눈을 다시 넣었다.이렇게 하여 현대적 자족설비를 갖춘 1실주택 1∼3개 침실의 주택으로 변환되었는데,이러한 개량은 구조체의 큰 변경 없이도 가능했다.

런던시 당국에 의한 개조작업으로 인해 주택수효는 1천44호(5천3백80명)에서 6백1호(1천8백명,그러나 실제거주자는 1천5백명)로 줄었으며,건물 1동이 1971년의 진단에 의해 철거되었다.

개량공사가 진행될수록 새삼스럽게 드러난 것은 원래 건물이 설계·자재·시공·장인솜씨·유지관리에서탁월했다는 사실이었다.1973년에 역사적 건물로 지정된 것은 런던시 당국과 여기에 속했던 공공건축가들에 대한 경의의 표시이기도 하다.

공우석 서울시의원 “지반침하 사고 1년 새 2.5배 급증… 사후 대응 중심 정책 바꿔야”

서울시의회 도시안전건설위원회 공우석 의원(더불어민주당, 관악1)은 지난 3일 열린 2026년 서울시의회 재난안전실 행정사무감사에서 서울시의 지반침하 사고가 급증하고 있는 실태를 지적하며, 사후 대응 중심의 지하안전 관리 정책을 사전 예방 중심으로 전환할 것을 촉구했다. 공 의원은 서울시가 제출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4년 17건이었던 시내 지반침하 사고가 2025년 42건으로 1년 만에 약 2.5배 급증했다고 밝혔다. 특히 작년 3월 강동구 명일동에서는 폭 18미터, 깊이 20미터에 이르는 대형 지반붕괴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는 서울시가 GPR 탐사장비를 늘리고 자치구 특별점검에 많은 예산을 쓰고 있으나 사고는 오히려 늘고 있다고 짚었다. 지하시설물 노후화와 무분별한 도로 굴착 같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사후 복구에만 매달리는 행정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이다. 실제로 최근 10년간 발생한 지반침하의 68.4%가 상하수관 손상 때문이었으며, 30년이 넘은 노후 관로가 5081㎞에 달해 정비가 시급한 상황이다. 아울러 지난 3년간 도로굴착 복구 건수가 2만 1750건에 이르는데 이 중 되메우기 불량이나 장기침하로 인한 사고가 전체의 20
thumbnail - 공우석 서울시의원 “지반침하 사고 1년 새 2.5배 급증… 사후 대응 중심 정책 바꿔야”

바운더리 주택단지의 재탄생 사례는 건축후 20년만 지나면 건물을 허물어버리고 재개발에 몰두하는 국내 서민아파트단지 관리에 좋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1995-06-10 1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