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해부” 새 조류 모색/장석남/존재의 상처까지 끌어안는 포용력/이윤학/죽음에 못박힌 삶을 예리하게 분석/박청호/무기력해진 세상을 신랄하게 풍자
서른,잔치는 정말 끝났을까.올봄 문단에 이른바 「신세대문학」논의가 심심치않게 일고 있는 가운데 서른줄에 접어든 시인 세사람이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란히 새 시집을 냈다.
65년생 장석남의 두번째 시집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과 이윤학의 「붉은 열매를 가진 적이 있다」,66년생 박청호의 처녀시집「치명적인 것들」이 그것.
이 책들은 맞서 싸워야할 뚜렷한 대상이 사라진 90년대의 지루한 침체속에서 「잔치의 종언」까지 말했던 젊은 시인들이 다시금 전망 모색에 나선 작품이란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그 모색은 아직 버겁고 앞이 잘 드러나 보이지 않긴 하지만 다양하게 펼쳐지면서 현실의 불모성까지 정직하게 드러낸다.척박해진 현실을 넘어서기 위해 그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것이 일단 젊은 시인들의 공통된 전략이다.
장석남에게 쓸쓸함은 삶의 기본정서다.쓸쓸함의 흉터때문에 삶이란 본질적으로 아픔일수 밖에 없다.아무도 이 상처에서 자유로울수 없고 나 자신도 마찬가지라는 인식이 그의 시에는 담겨있다.<봉원사 입구/그 새끼친 한 길 끝에/내 목숨이 하나/농담처럼 겨울비에 젖으며/농담처럼 초인종을 눌러놓고>
그러나 이런 존재의 상처가 덧나지 않는다는데서 장석남은 대부분의 서정시인들과 갈라진다.『병들고 구차한 삶 자체를 바로 인간이 날아오를수 있는 조건으로』(진형준) 끌어안는데 장석남 시세계의 힘이 있는 것이다.
<사는 것이 쓸쓸함의 만조를 이룰때/무엇인가 빠져나갈것 많을듯/가파름만으로도 한 생애가 된다는 것을/돌멩이처럼> 받아들이는 그의 자세는 사뭇 존재론적이다.
이에 견줘 이윤학의 상상력은 한결 사물중심이다.그는 사물의 한 단면,일상생활의 사소한 부분에서 섬광같은 이미지를 포착하는 예리한 눈을 갖고 있다.그 눈은 어항속의 자라를 보고 <죽어서 썩지 않고는 고통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독방을 떠올리고 <낭떠러지에 매달려/평생을 살아가야 하는>바위산의 나무들을 <끝없는 집착의 길이 지하로/지하로 나있다>고 노래한다.
썩어야만 집착을 멸할수 있는 이윤학의 상상력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그것은 『죽음에 화석의 형태로 머물고 있는』(정과리) 상상력이다.그러나 이 앞에서 함부로 포기하지 않고 현미경을 들이대 해부를 계속하는 이윤학은 죽음과 팽팽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대결할수 있다.
박청호의 시는 신랄한 풍자와 부정으로 가득차 있다.<어머니 컴퓨터는 그만 까놓으셔요 지구는 못 고치는 고철 덩이에요/대책없는 아버지는 이미 처형되었고/나는 내 살던 고향에서 쫓겨났다>에서처럼 추방당해 무력해진 희망앞에서 박청호는 모든것을 지운다.
하지만 이 도저한 부정이 설득력을 갖는것은 그 부정의 대상에 자신역시 포함되기 때문이다.<아,그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꿈속으로 큰 가위가 들어와/나를 심판하는 걸 지켜>보는 나는 스스로를 반성하는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할수 있는 것이다.<손정숙 기자>
서른,잔치는 정말 끝났을까.올봄 문단에 이른바 「신세대문학」논의가 심심치않게 일고 있는 가운데 서른줄에 접어든 시인 세사람이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란히 새 시집을 냈다.
65년생 장석남의 두번째 시집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과 이윤학의 「붉은 열매를 가진 적이 있다」,66년생 박청호의 처녀시집「치명적인 것들」이 그것.
이 책들은 맞서 싸워야할 뚜렷한 대상이 사라진 90년대의 지루한 침체속에서 「잔치의 종언」까지 말했던 젊은 시인들이 다시금 전망 모색에 나선 작품이란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그 모색은 아직 버겁고 앞이 잘 드러나 보이지 않긴 하지만 다양하게 펼쳐지면서 현실의 불모성까지 정직하게 드러낸다.척박해진 현실을 넘어서기 위해 그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것이 일단 젊은 시인들의 공통된 전략이다.
장석남에게 쓸쓸함은 삶의 기본정서다.쓸쓸함의 흉터때문에 삶이란 본질적으로 아픔일수 밖에 없다.아무도 이 상처에서 자유로울수 없고 나 자신도 마찬가지라는 인식이 그의 시에는 담겨있다.<봉원사 입구/그 새끼친 한 길 끝에/내 목숨이 하나/농담처럼 겨울비에 젖으며/농담처럼 초인종을 눌러놓고>
그러나 이런 존재의 상처가 덧나지 않는다는데서 장석남은 대부분의 서정시인들과 갈라진다.『병들고 구차한 삶 자체를 바로 인간이 날아오를수 있는 조건으로』(진형준) 끌어안는데 장석남 시세계의 힘이 있는 것이다.
<사는 것이 쓸쓸함의 만조를 이룰때/무엇인가 빠져나갈것 많을듯/가파름만으로도 한 생애가 된다는 것을/돌멩이처럼> 받아들이는 그의 자세는 사뭇 존재론적이다.
이에 견줘 이윤학의 상상력은 한결 사물중심이다.그는 사물의 한 단면,일상생활의 사소한 부분에서 섬광같은 이미지를 포착하는 예리한 눈을 갖고 있다.그 눈은 어항속의 자라를 보고 <죽어서 썩지 않고는 고통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독방을 떠올리고 <낭떠러지에 매달려/평생을 살아가야 하는>바위산의 나무들을 <끝없는 집착의 길이 지하로/지하로 나있다>고 노래한다.
썩어야만 집착을 멸할수 있는 이윤학의 상상력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그것은 『죽음에 화석의 형태로 머물고 있는』(정과리) 상상력이다.그러나 이 앞에서 함부로 포기하지 않고 현미경을 들이대 해부를 계속하는 이윤학은 죽음과 팽팽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대결할수 있다.
박청호의 시는 신랄한 풍자와 부정으로 가득차 있다.<어머니 컴퓨터는 그만 까놓으셔요 지구는 못 고치는 고철 덩이에요/대책없는 아버지는 이미 처형되었고/나는 내 살던 고향에서 쫓겨났다>에서처럼 추방당해 무력해진 희망앞에서 박청호는 모든것을 지운다.
하지만 이 도저한 부정이 설득력을 갖는것은 그 부정의 대상에 자신역시 포함되기 때문이다.<아,그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꿈속으로 큰 가위가 들어와/나를 심판하는 걸 지켜>보는 나는 스스로를 반성하는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할수 있는 것이다.<손정숙 기자>
1995-05-11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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