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견제 약화… 개방 가속화될 듯/중 보수파 진운사망 파장

「개혁」견제 약화… 개방 가속화될 듯/중 보수파 진운사망 파장

서정아 기자 기자
입력 1995-04-12 00:00
수정 1995-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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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원으로 역사무대 퇴장/강택민체제 큰변화 없을듯

10일 타계한 중국 보수파의 대부 진운은 지난 80년대까지 등소평의 최대 정적이었던 인물.보수·개혁파간의 세력균형이 팽팽하던 당시에는 진운과 등소평 가운데 누가 먼저 사망하느냐에 따라 중국의 정치판도가 바뀔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 정도였다.

90년대들어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이 가속화되고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면서 그의 정치적 입지는 줄어들었으나 보수세력에게는 여전히 정신적 지주로서 군림했다.그의 사망으로 일단 개혁파에 대한 견제가 약화,중국의 개혁정책이 제동없이 뻗어나갈 것으로 보이나 강택민을 필두로 확립된 개혁정치에는 큰 타격이 없을 듯하다.

진이 숨을 거둠에따라 한때 중국 정계를 뒤흔들었던 이른바 「8대 원로」 가운데 생존자는 등소평·양상곤·팽진·박일파등 4명으로 줄어들었다.혁명2세들이 하나둘씩 역사무대로부터 퇴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경제란 너무 자유롭게하면 안되며 새장속의 새마냥 일정한 한계속의 자유만 허용돼야한다는 「새장(조롱)경제론」을 주장해온 것으로 유명하다.이같은 이론을 바탕으로 등소평의 급격한 개혁·개방정책과 맞서 사회주의계획경제를 주장하기도 했으며 근래에는 개혁개방을 반대하기보다는 그속도를 줄이자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1905년,지금은 상해시에 편입된 강소성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진은 한 출판소의 식자공으로 일하다 25년 공산당에 입당,주로 노동운동을 전개했으며 중국 건국후에는 주로 재경분야의 직책을 역임했다.60년 당중앙 부주석이 됐으나 문화혁명기간 등소평·유소기등과 함께 우파로 몰려 모든 직위를 박탈당했다가 등소평이 재등장한뒤 78년 복권됐다.이후 등을 도와 문혁기간중 붕괴직전에 이른 경제를 회복시키고 문혁의 역사적 과오를 비판하는데 앞장섰다.92년말 정계에서 완전 은퇴한뒤에도 보수파의 정신적 지주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서정아 기자>
1995-04-12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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