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에 대한 사랑·교우관계 자세히 밝혀
일본 유학시절 토월회를 조직해 한국 신극운동의 횃불이 되고 현실인식이 강한 프로문학을 국내에 처음 도입했던 팔봉 김기진(1903∼85).프로문학에 대한 신념을 바꿨으나 친일했다는 이유로 남한에서의 여생을 굴절되게 살아가야 했던 팔봉의 삶을 주위에서 회고한 책이 발간됐다.
팔봉의 딸이자 원로 성악가인 소프라노 김복희(67)씨가 펴낸 「아버지 팔봉 김기진과 나의 신앙」(정우사 펴냄)이 그것.김씨는 이 책에서 10년전 타계한 아버지 팔봉을 애타게 그리면서 가까이에서 본 아버지 팔봉의 인간적 면모까지 되살리고 있다.
김복희씨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팔봉에 대한 인상은 엄격하면서도 자상한 아버지이다.그에 따르면 팔봉은 화장실 휴지도 아껴쓰는 근검절약형이고 자녀의 가정교육에 철저한 사람이었다.그러나 김복희씨가 결혼 10년후 이혼을 생각했을때 『나는 네가 시집가서도 잘 살라고 아직까지도 계속하여 마지막 한숟가락을 물마른 밥을 먹는데 이게 웬말이냐』며 자식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 보인 아버지였다.
김복희씨는 또 해방이후 친일파에 분류돼 괴로워하고 6·25때 인민재판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을 당시의 팔봉을 전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팔봉은 해방직후 좌·우익 양측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의에 『나는 앞으로 5년동안은 아무 것도 안하겠오.나 같은 친일을 한 사람은 조용히 자숙하며 근신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일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만년까지 일제를 향한 문필활동이나 전쟁통에 다니던 순회강연을 한탄했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또한 청전 이상범화백,문인 박영희씨,무용가 최승희씨,박정희 전대통령 등 팔봉과 친하게 지냈던 인사들에 대한 회고담도 등장하고 있다.팔봉에게 편지를 너무 자주해 여자로 오해받은 박영희씨,인간적 면모에 서로 반해 이해관계를 배제한 교유를 지속했던 박대통령가족 등.
세계적인 무용가 최승희씨를 기억하는 김씨는 해방직후 최씨 부부의 월북을 사뭇 안타까워 하고 있다. 『살아있으면 아흔 고령이 되었을 최승희씨를 북한의 선전도구로 전락시킨 것은 우리 민족의 커다란 손실이며 통탄할 일』이라고 그는 쓰고 있다.<백종국 기자>
일본 유학시절 토월회를 조직해 한국 신극운동의 횃불이 되고 현실인식이 강한 프로문학을 국내에 처음 도입했던 팔봉 김기진(1903∼85).프로문학에 대한 신념을 바꿨으나 친일했다는 이유로 남한에서의 여생을 굴절되게 살아가야 했던 팔봉의 삶을 주위에서 회고한 책이 발간됐다.
팔봉의 딸이자 원로 성악가인 소프라노 김복희(67)씨가 펴낸 「아버지 팔봉 김기진과 나의 신앙」(정우사 펴냄)이 그것.김씨는 이 책에서 10년전 타계한 아버지 팔봉을 애타게 그리면서 가까이에서 본 아버지 팔봉의 인간적 면모까지 되살리고 있다.
김복희씨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팔봉에 대한 인상은 엄격하면서도 자상한 아버지이다.그에 따르면 팔봉은 화장실 휴지도 아껴쓰는 근검절약형이고 자녀의 가정교육에 철저한 사람이었다.그러나 김복희씨가 결혼 10년후 이혼을 생각했을때 『나는 네가 시집가서도 잘 살라고 아직까지도 계속하여 마지막 한숟가락을 물마른 밥을 먹는데 이게 웬말이냐』며 자식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 보인 아버지였다.
김복희씨는 또 해방이후 친일파에 분류돼 괴로워하고 6·25때 인민재판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을 당시의 팔봉을 전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팔봉은 해방직후 좌·우익 양측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의에 『나는 앞으로 5년동안은 아무 것도 안하겠오.나 같은 친일을 한 사람은 조용히 자숙하며 근신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일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만년까지 일제를 향한 문필활동이나 전쟁통에 다니던 순회강연을 한탄했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또한 청전 이상범화백,문인 박영희씨,무용가 최승희씨,박정희 전대통령 등 팔봉과 친하게 지냈던 인사들에 대한 회고담도 등장하고 있다.팔봉에게 편지를 너무 자주해 여자로 오해받은 박영희씨,인간적 면모에 서로 반해 이해관계를 배제한 교유를 지속했던 박대통령가족 등.
세계적인 무용가 최승희씨를 기억하는 김씨는 해방직후 최씨 부부의 월북을 사뭇 안타까워 하고 있다. 『살아있으면 아흔 고령이 되었을 최승희씨를 북한의 선전도구로 전락시킨 것은 우리 민족의 커다란 손실이며 통탄할 일』이라고 그는 쓰고 있다.<백종국 기자>
1995-02-09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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