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어선 안될 대목을 잊은 죄로(박갑천칼럼)

잊어선 안될 대목을 잊은 죄로(박갑천칼럼)

박갑천 기자 기자
입력 1994-11-06 00:00
수정 1994-1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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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심리학자 H.에빙하우스는 망각이란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근육도 쓰지 않고 있으면 약해진다.그림의 색채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희미해져 가고 산도 시간이 흘러가면서 침식되는 이치와 같다.하지만 그 망각은 의식 속에서 아주 지워지는게 아니라 무의식 속에 억압되어 있을 뿐이라는 것이 S.프로이트의 생각이다.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망각증은 있다.심하냐 덜하냐의 차이는 있지만.또 나이를 더해가면 대체로 심해진다.I.뉴턴 같은 천재에게도 있었던 것이 망각증이다.학생시절 그가 교실에서 수학문제 푸는데 열중하고 있을 때 한친구가 몰래 그의 도시락을 먹어 버린채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수학문제를 다푼 뉴턴이 도시락을 봤더니 비어 있는게 아닌가.그는 이렇게 중얼거렸다던가.

『아이구 내 정신 좀 봐.수학문제에 열중하다 보니 아까 도시락 먹은 것까지 까먹었군 그래』

천재 뿐 아니라 범인도 깜박깜박 잊는 바람에 낭패를 보는 일이 적지않다.가령 이런 식이다.안방에서 갑자기 생각난 일이 있어 일어났다.건넌방에가야 할 일이다.그런데 건넌방에 건너가서는 왜 거기 갔는지를 모른다.마루를 건너가면서 깜박한 것.자기집 전화번호를 잊고 친구집에 전화 걸어서 알아내는 경우 등등 사람마다 망각에 울고 웃은 일은 한두가지가 아닐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망각이란게 없다면 또 어찌 되겠는가.그림의 색채가 시간의 흐름 따라 희미해져 가는 것과는 반대로 40년 50년 전의 울분의 농도를 지금껏 삭이지 못하는 사람의 꼴은 어떤 것이겠는가.더구나 그런 기억은 한두가지가 아니라 할 때 그 심리적 중압감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그러므로 사람은 희비애락을 잊어가면서 살아가야 하게 되어있다.그런 인생의 기미를 두고 누군가 망각 없이 행복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게 잊어가게 돼 있다고는 해도 잊지 않아야 할 대목은 있는 법이다.잊어야 할 아프고 쓰린 기억이 곁들이고 있는 교훈의 부분이다.아프고 쓰린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다.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못하는 것 그것을 일러서 잘못이라 한다(과이불개시위과의:논어)고 했다.교훈을 잊기 때문에 못고치는 것이 아니겠는가.



다리사고·배사고·비행기사고·철도사고….어디 한두번 겪은 일이던가.한데도 매양 똑 같은 유형으로 되풀이해서 겪는다.잊지 않아야 할 대목을 잊기 때문이다.그 잘못이 크다.그런데 또 잊을 것인가.
1994-11-06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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