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신뢰를 쌓자/최재필(기고)

이젠 신뢰를 쌓자/최재필(기고)

최재필 기자 기자
입력 1994-10-24 00:00
수정 1994-10-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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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대교 붕괴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사건이 터진 후 이제 48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이 사건 자체에 대한 정보는 물론이요 그원인에 대한 설명과 분석,사후 대책 등에 대해 수많은 정보가 신문 지면을 온통 차지하고,방송 전파를 쉴새 없이 타고 있다.너도 나도 모이는 곳마다 한 목소리로 이 사건을 비난하기도 하고 나름대로의 원인규명과 대책방안 마련에 열심이다.

그런데 왜 다리 하나 무너진 것이 이토록 큰 충격과 국민적 우려를 낳고 있는 것일까.냉정히 따져보자면 성수대교 붕괴의 직접적인 피해는 그리 크지않다.물론 이 사고로 희생당한 30여명의 사람들과 부상을 당한 이들의 개인적인 피해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크다.건설인의 한사람으로서 필자는 참담한 심정으로 깊이 머리숙여 사죄의 말씀을 올린다.그렇지만 나라전체로 볼 때 일년에 교통사고로 희생되는 사람의 숫자는 얼마나 많으며,이곳 저곳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산업재해는 또 얼마나 많은가.게다가 전반적인 환경오염으로 인한 각종 피해는 성수대교 붕괴사건에 비해 몇 곱절이나 큰 희생을 낳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수대교 사건은 초미의 국민적 관심사가 되고 있다.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의 믿음이 산산조각이 났기 때문이다.우리는 매일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는 교통사고에 대해서는 잘 알고 충분히 불안해 하고 있다.핸들을 요리조리 돌려가며 쌩쌩 달리는 자동차들은 본질적으로 불안의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빠른 속도로 돌아가는 공작기계에 자칫 손이 빨려들어가면 큰 부상을 입게 될 것도 너무 명백하다.그래서 우리는 달리는 자동차에,돌아가는 기계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사고나 산업재해는 어쩔 수 없이 일어나게 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건물이나 교량,댐은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우리의 주위를 끌지 못한다.이것들은 대지 위에 굳건히 서 있기 때문이다.내가 살고 있는 고층 아파트 바닥은 언제나 내식구와 가재도구를 받쳐주어 왔기 때문에(사실은 바닥이 이런 것들을 받쳐준다는 생각조차 해보지않고 있지만),아파트 건물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한번도 의식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그만큼 우리는 건물에 대해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물론 성수대교나 그 밖의 한강다리들에 대해서도 우리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믿음이 성수대교와 함께 무너져 내리면서,우리는 일상의 삶에 대한 전반적인 불안감에 휩싸이게 되었다.내 아파트 바닥도 불안하니 다시 한번 쳐다보게 되고,평소 잘 지나다니던 지하도도 언제 무너져 내릴지 불안하다.이제껏 그저 튼튼하게 주어져 있다고 생각되던 우리의 삶터가 온통 불안해지니 이것만큼 심각한 문제가 따로 없다.결국 이토록 온 나라가 술렁거린다.

사실 알고보면 우리는 많은 믿음 속에서 살고 있다.나는 내 맡은 일을 제대로 하고,너는 네 맡은 일을 제대로 한다는 믿음,나는 집을 튼튼히 지어 네가 안전하게 신경쓰지 않고 편하게 살 수 있도록 하고,너는 내가 내는 세금을 받아 한푼의 낭비도 없이 나와 내 이웃을 위해 효율적으로 쓴다는 믿음,이런 식의 상호신뢰에 의해 우리의 사회는 돌아가는 것이다.그런데 이 믿음이 여기저기서 깨어지고 있다.성수대교 붕괴는 그 중에서도 가장 최근의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지켜주는 건물과 다리와 댐들이 튼튼하다고 믿고 지낼 수 있는 권리가 있다.그런데 문제는 이 다리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사람들도 이것들을 믿고 있었다는 것이다.어제도,그제도,일년 전에도 잘 서있던 다리가 오늘 밑부분에 조그만 생채기가 하나 보인다고 해서 설마 무너지랴하는 믿음 말이다.

우리가 굳게 믿고 있는 건조물들도 순간의 실수로 핸들을 잘못 돌려 자동차 사고를 내고야마는 인간의 손으로 세워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성수대교 붕괴사고의 교훈이다.건조물들의 애초의 시공,사후 보수나 관리가 부실하게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그러나 이보다 앞서 인간과 인간이 만들어내는 만사가 결코 완벽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항시 잊지말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제대로 만들어 놓아야 하는 것이 필요하다.<명지대 건축학과교수>
1994-10-24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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