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하(서울 6백년 만상:58)

정자:하(서울 6백년 만상:58)

김학준 기자 기자
입력 1994-09-18 00:00
수정 1994-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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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후원엔 아직도 15개 정자 그대로/부용정·관람정 등 다양한 형태로 보존/부암동 석파정,대원군 별장으로 유명

정자의 보고인 창덕궁 후원에는 지금도 관람정·애련정·승재정·능허정·청심정등 무려 15개의 정자가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한채 자리잡고 있다.방형·육각형·다각형·부채 모양의 다양한 정자는 연못,그리고 누각등을 배경으로 한폭의 동양화를 연상케한다.

전체면적이 약 9만여평에 이르는 창덕궁 후원은 북악에서 내려뻗은 완만한 언덕과 여기저기에 맑은물이 흐르는 개천이 있어 연못과 정자를 꾸미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태종때 창건됐다가 임진왜란때 불타 없어진 창덕궁에 이처럼 많은 정자가 지어진 것은 후원의 대규모 조성공사가 벌어진 광해군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후원 중심에 있는 연못인 부용지 남쪽에는 사방에 창살문까지 꾸며진 부용정이 마치 물위에 뜬 형상으로 있고 북쪽에는 연회장으로 유명한 주합루가 자리잡고 있다.또 한반도 모양의 연못 반도지 동쪽에는 우리나라 유일의 부채꼴형 정자인 관람정이,남쪽에는 육모지붕의 존덕정이,연못 반대편 언덕위엔 마치 절간같은 승재정이 각각 위치하고 있다.

임금들이 산책을 하는 도중 들러 정사로 복잡해진 심신을 식히거나 대소신료와 외부 손님을 불러들여 연회를 베풀기에 정자는 더할 나위없이 좋은 장소였다.또한 조정 중신들이 한가한 시간을 틈내 독서를 하거나 강론을 펴는 곳으로도 활용되었다.

그러나 조선말기에 이르러서는 이등박문등 일본의 대신들을 접견하고 향응을 제공하는 장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자하문터널을 지나 세검정으로 가는 길목인 부암동동사무소에 인접한 종로구 부암동 316의1에는 흥선대원군의 별장으로 유명한 석파정이 있었다.석파정은 본래 철종때의 권신인 김흥근의 별장이었는데 대원군이 이 별장을 빼앗게 된 데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철종이 승하한 뒤 자신의 아들인 고종의 등극으로 정권을 장악하게 된 대원군은 그동안 수모를 주었던 안동 김씨 세력을 제거하는데 골몰했으며 특히 그 권문의 한 사람인 김흥근을 미워했다.대원군은 주변 숲이 울창하고 계곡의 물이 맑아 그야말로 별천지인 석파정을 김흥근으로부터 빼앗기로 하고 꾀를 냈다.

일단 자신의 부인 병요양을 핑계로 임시로 석파정을 빌려쓰던 대원군은 어느날 『대궐에만 갇혀 계시니 좀 갑갑하시겠냐』며 고종을 석파정으로 초청했다.고종이 도착한뒤 저녁 무렵이 되자 대원군은 대전 내시를 통해 상감께서 오늘밤 이곳에서 유숙하기로 했다는 담화문을 전격적으로 발표했다.국왕이 한번 유숙한 곳은 민간인의 소유를 금하는 국법을 이용해 김흥근으로 하여금 석파정을 포기케 하려는 의도였다.

이런 사연을 지닌 석파정은 대원군 사후에도 계속 왕실에 세습돼 오다 일제때는 총독부 소유로 변했으며 6·25 직후에는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이 터를 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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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09-18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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