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와 싸우는 미국여성들(뉴욕에서/임춘웅칼럼)

생계와 싸우는 미국여성들(뉴욕에서/임춘웅칼럼)

임춘웅 기자 기자
입력 1994-03-25 00:00
수정 1994-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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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년반여년전인 92년8월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벌어진 공화당 전당대회 때의 일이다.

크고 거대한 것을 미국에서는 흔히 「텍사스 사이즈」라고 하는데 「텍사스 사이즈」답게 거대한 실내야구장을 빌려 벌인 돈많은 공화당전당대회는 실로 화려하고 웅장했다.대회장 밖에는 주문생산된 리무진차량이 즐비했고 갖가지 색깔의 천으로 뒤덮인 대회장은 호화롭기 그지없었다.그때 공화당전당대회가 「회심의 작품」으로 들고나온게 「가정의 가치」라는 것이었다.공화당은 대통령후보 조지 부시 대통령가정의 단란하고 전통적인 모습을 부각시켜 그렇지못한 민주당의 빌 클린턴후보를 궁지로 몰아넣자는 전략이었다.

미국의 전통적 가정관이란 우리나라와 크게 다를게 없어서 남편은 밖에서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부인은 가정에서 자식들을 기르며 교육하고 남편을 내조하는 것이다.부시가정은 바로 그런 가정관의 모범이었던 것이다.반면에 클린턴 가정은 부인이 맹렬변호사인데다 선거전 한때에는 클린턴의 섹스 스캔들까지 겹쳐 클린턴가정은 비전통적 가정의 표적같은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공화당이 노린 것이 바로 이 대목이었던 것이다.그래서 공화당 전당대회의 스타는 부시후보라기 보다 부인 바버라 부시여사였던 것이다.정숙하고 온화한 인상의 바버라를 내세워 클린턴후보의 부인 힐러리와 대비시키려는 것이었다.

대회연단에 선 한 연사는 『여자는 집에 있는게 보다 더 행복하다.반대로 그렇지 못한 사람(일하는 여성)은 (여성의)행복을 해칠지도 모른다』고 당당히 외쳐댔으며 부시후보의 장성한 아들 딸,손자 손녀 22명이 연단에 함께 올라서서 손을 흔들며 가정의 화목을 과시했던 것이다.선거결과는 다 알고있듯이 공화당의 패배였다.부시가 도중하차한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다.그런데 며칠전 뉴욕 타임스지가 흥미있는 기사를 보도했다.미국전체 노동인구 1억2천만명의 반에 가까운 여성노동력 5천4백만명의 대부분이 가계를 꾸려가지 않으면 안될 사정으로 일을 하고 있다는 보도였다.

여성노동인구의 정확히 몇%가 생계를 위해 일하고 있는지는 밝히지 않고 있으나 대부분은 취미나 자기성취,가계에 도움이 되도록 일을 하고 있는게 아니라 벌지 않으면 안될 사정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최근들어 이런사정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게 문제의 심각성이라고 이 기사는 지적하고 있다.기업경영이 어려워지면서 기업들은 여자보다 임금이 높은 남자부터 자르는 추세여서 남성실업률이 높아지고 있는게 하나의 이유이고 다음으로는 남자의 실질임금수준이 낮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한 연구기관 조사를 보면 87년부터 93년까지 여성들의 실질임금은 1.4% 상승한데 반해 같은 기간 남성임금은 10% 하락했다.그만큼 주부수입의 비중이 커졌다는 얘기다.그 실례로 20년전에는 2개 이상의 직장을 갖고 있는 근로자 6명중 1명이 여자였는데 지금은 47%가 여성이라는 것이다.여자가 두가지 직장을 갖지 않으면 안될 만큼 미국의 사정이 어려워졌다는 반증이다.

이런 현실을 간과하고 『여자는 집에 있는게 더 행복하다』고 노래한 공화당이 패배한 것은 어쩌면 당연했는지도 모를 일이다.우리나라에도 집안의 생계를 꾸려가는 여성들이 많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론 미미한 비율일 것이다.그런 점에서는 한국여성들은 아직도 요람속에 있는지도 모른다.<뉴욕특파원>
1994-03-25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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