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건넌 어미돼지 새끼 세기라(박갑천칼럼)

강 건넌 어미돼지 새끼 세기라(박갑천칼럼)

박갑천 기자 기자
입력 1993-09-25 00:00
수정 1993-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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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강건너기 우화가 있다.어미돼지가 새끼 아홉마리를 데리고 강을 건넌다.건넌다음 아무리 세어봐도 한마리가 모자라지 않은가.어미돼지는 울다지쳐 죽는다.건너기전에는 자기를 세었으면서 건넌 다음에는 빼고 세었으니 하나가 모자랄밖에 없었다.

이 얘기는 돼지의 어리석음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그러나 사람들도 이 어미돼지와 같은 어리석음을 저지르며 산다.자기는 쏙빼고서 셈을 하는 경우들이 그것이다.외국담배 피우는게 죄가 되던시절,외제품 쓰지말자는 글을 쓰는 사람이 외국담배를 물고서 썼다.자기는 세지않고 있는 어미돼지의 모습 그것이다.청렴결백을 외쳐대던 고관이 어느날 뇌물을 받았다하여 구속되는 일이나 윤리를 강의하던 교육자가 파렴치한 행위로 쇠고랑차는 사례에서도 어미돼지의 몰골을 본다.

배극렴이 기생한테 당하는 것도 기생의 눈에 그가 어미돼지로 비쳤기 때문이다.그는 고려공민왕(공민왕)때 문과에 오른다음 문하좌시중에 이른다.청렴·공근하다는 세평이었으나 이성계를 받들어 조선의 개국공신이 된다.어느날태조가 잔치를 베풀었는데 공교롭게도 모두 고려로부터 내려오는 신하들만 참석했다.그자리에 설매라는 기생이 있었다.술취한 배극렴이 희롱한다.

『너는 아침은 동쪽집에서 먹고(동가식)밤에는 서쪽집에서 잔다(서가숙)고 들었다.그러니 오늘은 이 노부를 위해 천침하도록 하라』

설매의 게정대는 말투가 나온다.

『동쪽집에서 먹고 서쪽집에서 자는 천한 기생의 몸으로 왕씨를 섬겼다가 이씨를 섬기는 정승을 시침하는 것이 어찌 마땅한 일이라 않겠습니까』

『듣는자는 모두 코가 시큰해졌다』(공사만록)고도 하고『…모두 비웃었다』(공사견문록)고도 적어놓고 있다.「시큰한」 경우는 그자리의 「고려신하」들이고 「비웃은」경우는 전해듣는 제3자들이었던 것 아닐까.변절을 미워하면서 누군가가 꾸며낸 이야기같기도 하지만 설매의 눈씨 한번 매섭구나싶다.

강을 건넌 어미돼지는 맨먼저 자기부터 세고 새끼들을 세었어야 한다.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사물을 보면서 생각하면서 혹은 말하려면서 자기자신부터 냉철하게 살필수 있어야 한다.그래야 어미돼지꼴이 안된다.하건만 「배극렴」은 오늘도 있다.모든문제에서 자기만은 예외로 두고 남만을 타박하려 든다.자기가 하는 말이 자기허물의 지적이라는데 생각이 미치지 못한채 남의 허물로만 여긴다.그러다가 쌓아온 지위와 명성을 잃고있는 사람들 많이 보고있다.<서울신문 논설위원>
1993-09-25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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