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문명과 손/김재설 에너지기술연구소(해시계)

인류문명과 손/김재설 에너지기술연구소(해시계)

김재설 기자 기자
입력 1993-09-21 00:00
수정 1993-09-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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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연구실에서 틈이 있을 때 넋을 놓고 내 손을 내려다 보며 시간을 보낼 때가 많다.결코 묘령의 여성의 섬섬옥수처럼 아름다워서도 아니고 고사리 같은 아기 손의 귀여움을 느껴서도 아니다.이제는 거칠고 마디 박혀 지나 온 짧지않은 내 생애의 신고를 숨길 수도 없는 손이지만 인간의 손에서 느끼는 오묘한 섭리를 반추하기 위해서다.인간이 다른 동물과 달리 도구를 만들고 오늘의 문명을 이루는데 결정적인 요체가 바로 이 손의 구조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기도 하다.

청소년 시절 인간이 문명을 구측할 수 있었던 두가지 요건으로 두뇌와 손을 지적한 이야기를 읽고 감동했던 기억이 새롭다.인간의 그 출중한 두뇌가 한 요건이 되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그 손의 특이한 구조,즉 엄지손가락이 손의 본체에 직각이 될 수 있다는 어쩌면 무심할 수 있는 사실이 다른 하나의 문명 창업의 원인이라는 해석은 그때 나에게는 경이였다.다른 동물처럼 다섯 손가락이 모두 나란히 붙어 있다면 인간이 그렇게 자유자재로 손을 써서 정교하게 도구를 만들수 있었을까.

파스칼은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에 비유했지만 그 생각을 물질적으로 구체화시킬 수 있는 손이 없었다면 인간은 얼마나 허망한 갈대인가.인간이 머리 속에서 아무리 훌륭한 도구를 구상했다 하더라도 손의 움직임이 없었다면 그 구상의 현실화는 물론 그 구상 자체가 불가능했으리라.인간이 사고를 통하여 언어를 구사하지만 반대로 언어를 활용하여 사고하기도 하는 것처럼.

과학은 두뇌와 손의 조화된 활용으로 오늘까지 발전되어 왔지만 나는 두뇌보다 손에 더 비중을 둔다.두뇌에서 창출된 이론도 손을 쓰는 실험을 통하여 검증되지 않는 경우 그것은 한낱 허구일 가능성이 크다.오히려 손으로의 실험 결과가 새로운 이론의 유도로 연결되는 경우가 더 많다.그런데 두뇌 구사능력이 사람마다 다른 것 처럼 이 손의 구사 능력도 큰 차이가 있다.즉 실험도 누구나 똑 같은 것이 아니라 잘 하는 사람과 좀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다.머리 속에서 아무리 아름다운 그림을 구상해도 그것을 화폭에 형상화할 손재주가 무딘 사람은 훌륭한 미술가가 될 수 없는 것 처럼 실험 능력도 과학자의 필수조건이다.최근에는 아주 정교한 실험기구나 관측장비가 나왔지만 그렇다고 이 능력이 결코 경시될 수는 없다.

여기에 학교에서 실험교육이 좀 더 강조되어야 할 당위성이 있다.그리고 그것은 학생들이 직접 스스로의 손을 써서 익혀야 한다.교사의 이론을 실험을 통한 검증 없이 받아들이는 과학교육은 새로운 이론을 창출하는 자가 아닌 기성이론에 무조건 영합하는 과학계의 예스 맨만 배출할 뿐이다.한 교실에 그 많은 학생들을 몰아넣고 실험교육을 하라는 것은 하늘에서 별을 따라는 주문임을 잘 알지만 전쟁통에 천막교실에서 철판에 그림을 그려 실험법을 배운 우리 세대보다 지금의 중·고등학교도 이 점에서는 별로 나아진 것 같지 않다.참 답답한 일이다.

1993-09-21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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