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디자이너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스스로도 무언가 개운치 못한 부분이 느껴진다.실제로 여러 미완의 구석을 갖고 있는 4년차 「designer」(대문자를 쓰게 되면 항상 쑥스러워진다)인 나.
이러한 내가 작업 속에서 보람과 행복을 느끼는 것은 언제인가.
우선 「아름다움」을 창조해내는 과정 속에서이다.선과 선의 조합,색과 색의 대비 등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미를 「옷」이라는 대상에 이입시키고,그 미를 다시 불특정 다수의 개인(고객)과 교감하는 기쁨만큼 더 큰 것은 없을 터이다.
또한 「과거」의 의미를 되살리는 과정 속에서 디자이너는 자부심을 느낀다.이들에게는 「유행」이라는 독특한 사이클을 연구함으로써 과거의 정신을 오늘에 연결시켜야 하는 의무가 있다.과거를 잊지 않는 인간은 선할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패션은 우리에게 과거의 향기를 옷을 통해 느끼게 하고 인간다움의 참의미를 느끼게 하는 묘한 힘을 갖고 있다.디자이너는 매일 이를 실천하려 한다.
그러면 디자이너에겐 보람과 행복만 있고 고충은 없는가.
디자이너에게도 분명 어려움은 따른다.생활 속의 예술인 옷을 창조하는 과정에서,예술가적 입장만 강조하고 「생활문화」로서의 옷을 외면하는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 그 하나다.이러한 생각이 하나의 디자인 경향으로 흐른다면 디자이너의 존재의의도 상실되고 고객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또 자유로움과 조직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어려움이다.연필을 쥐고 화판 앞에 앉을 때면 「창조」를 위해 생각의 여백을 만들고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어주는 것이 절대 필요한 일.그러나 거대한 조직의 틈바구니에 서있는 내 모습을 생각하면 끊임없이 긴장이 몰려오곤 한다.
옷을 통해 아름다움을 향유하고 이를 가치있게 추구할 수 있는 동기를 고객에게 부여할 책임이 우리 디자이너들에게 있다는 점,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루를 채워가는 우리의 업무가 우리나라 패션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가는 첫걸음이 되어야 한다는 어줍잖은 사명감이다.
이러한 내가 작업 속에서 보람과 행복을 느끼는 것은 언제인가.
우선 「아름다움」을 창조해내는 과정 속에서이다.선과 선의 조합,색과 색의 대비 등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미를 「옷」이라는 대상에 이입시키고,그 미를 다시 불특정 다수의 개인(고객)과 교감하는 기쁨만큼 더 큰 것은 없을 터이다.
또한 「과거」의 의미를 되살리는 과정 속에서 디자이너는 자부심을 느낀다.이들에게는 「유행」이라는 독특한 사이클을 연구함으로써 과거의 정신을 오늘에 연결시켜야 하는 의무가 있다.과거를 잊지 않는 인간은 선할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패션은 우리에게 과거의 향기를 옷을 통해 느끼게 하고 인간다움의 참의미를 느끼게 하는 묘한 힘을 갖고 있다.디자이너는 매일 이를 실천하려 한다.
그러면 디자이너에겐 보람과 행복만 있고 고충은 없는가.
디자이너에게도 분명 어려움은 따른다.생활 속의 예술인 옷을 창조하는 과정에서,예술가적 입장만 강조하고 「생활문화」로서의 옷을 외면하는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 그 하나다.이러한 생각이 하나의 디자인 경향으로 흐른다면 디자이너의 존재의의도 상실되고 고객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또 자유로움과 조직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어려움이다.연필을 쥐고 화판 앞에 앉을 때면 「창조」를 위해 생각의 여백을 만들고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어주는 것이 절대 필요한 일.그러나 거대한 조직의 틈바구니에 서있는 내 모습을 생각하면 끊임없이 긴장이 몰려오곤 한다.
옷을 통해 아름다움을 향유하고 이를 가치있게 추구할 수 있는 동기를 고객에게 부여할 책임이 우리 디자이너들에게 있다는 점,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루를 채워가는 우리의 업무가 우리나라 패션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가는 첫걸음이 되어야 한다는 어줍잖은 사명감이다.
1993-08-12 12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