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으로 하늘이 가려질까(박갑천칼럼)

손바닥으로 하늘이 가려질까(박갑천칼럼)

박갑천 기자 기자
입력 1993-04-10 00:00
수정 1993-04-10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성수패설」이라는 우스개 주워모은 책이 있다.점잖지 못한 내용도 담고 있어서인지 편찬자나 편찬 연대가 밝혀져 있지 않다.그러나 조선조 말기 18 30년쯤에 쓰인 게 아닐까 추측들은 한다.

이 책에 적혀있는 얘기 하나.­어떤 여자가 남편이 외출한 사이 간부와 건넌방에서 동침한다.이 불륜은 날이 밝는 줄을 몰랐다.안방에서는 늙은 시부모와 친정에 다니러온 시누이가 자고 있었다.늙은이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으나 시누이는 이미 일어나 뜨락을 오락가락하고 있다.간부를 내보내야겠는데 어쩌면 쓰겠는가.그여자는 계교를 생각한 다음 간부에게 귓속말을 한다.

『내가 이러저렇게 할 테니 당신은 그 때 도망쳐요』

그러고서 뜨락으로 내려가 시누이의 뒤로 다가간 다음 두손으로 시누이의 두눈을 가리면서 묻는다.

『내가 누구게?」

『누군 누구예요,언니지』

그 사이 간부가 도망쳐 버린 것은 두말할 것이 없다.

『손으로 시누이 눈 가린다』(수차매목)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눈 가리고 아옹한다』『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놓는다』따위 속담과 같이나쁜 짓 해놓고 탄로나지 않도록 계교를 꾸미는 경우들을 두고 쓰인다.얕은 계교라는 뜻이기도하다.그 비슷한 속담으로는 『가랑잎으로 하문가린다』『귀 막고 방울 도둑질한다』…등이 있다.

시누이의 두눈을 잠시 가렸다 해서 사실 자체가 언제까지나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잠들어 있었다고 생각한 안방의 시부모가 어느 사이엔가 보아버렸을 수 있다.눈가림 당한 시누이의 제6감에 감전되지 말라는 법이 있겠는가.또 온동네의 눈을 감쪽같이 다 피했다고 할수도 없다.역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수 있는 것은 아니다.『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들으며』(한국 속담)『숲에 귀가 있고 들에 눈이 있다』(영국 속담).한두 사람은 잠시 속일수 있어도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는 법 아니던가.

재산공개 정국 속에서 「시누이 눈가리기」를 본다.줄이고 감추고 변명하고….「간부와 놀아난 짓」그것보다 더 거년스럽고 괘다리적어 보이게 하는 몰골 아닌가.시누이 눈을 가린다고 모든 눈이 가려지는건 아니다.또 줄이고 감추고 하는건 부끄러워해야 할재산임을 자인하는 일이기도 하다.가졌다는 것이「죄」가 아니라 당당할수 있게 돼야 옳은 사회인 것을….<서울신문 논설위원>
1993-04-10 4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탈모약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재명 대통령이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탈모는 생존의 문제”라며 보건복지부에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탈모를 질병으로 볼 것인지, 미용의 영역으로 볼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이 정치권과 의료계, 온라인 커뮤니티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당신의 생각은?
1. 건강보험 적용이 돼야한다.
2. 건강보험 적용을 해선 안된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