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안팎에서 가장 자주 접할 수 있는 단어를 든다면 아마도 「이해」와 「화합」이 아닐까 생각한다.좁게는 가족이나 친구,하루종일 한 사무실에서 일하는 동료들간의 상호이해의 증진에서부터 넓게는 국민화합에 이르기까지 거의 매일 귀가 따가울 정도로 자주 듣는 말이다.우리는 이 두 단어의 홍수 속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당연히 이해와 화합에 동참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못한게 현실이다.주위에서 항상 마음의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보기는 쉽지 않다.때때로 자기 속마음을 누구에겐가 털어 놓는 경우도 간혹 있긴 하지만 대개는 마음의 벽을 높이 쌓아두고 자기만의 세계를 굳게 지킨다.
내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지난 몇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업무상 또는 이런 저런 일로 꽤 많은 사람들을 상대해 왔다.그러나 그 접촉은 대부분 길어야 5분 정도의 전화로 간단하게 끝나는 것이 보통이다.보다 자세한 정보교환이 필요할 때는 팩시밀리를 사용하곤 했다.직접 만나 서로의 업무형편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시간낭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같은 무감각의 외피를 벗어버릴 수 있게 된 것은 사내교육 프로그램으로 마련된 「한마음 수련회」에 참석하고 부터이다.처음에는 의례적인 교육이겠거니 생각하고 짐을 챙겨 집을 나섰다.그러나 수련원에 들어가 모든 임직원이 똑 같은 유니폼으로 갈아 입고,극기훈련에 참가해 구슬땀을 흘리고,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2박3일을 함께 지내는 동안 내 생각이 잘못이라는 점을 깨닫게 됐다.서로 상대방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느낄 수 있었다.친구나 직장동료,회사의 고객등 내가 접촉하는 사람들에게 스스로는 믿음을 갖지 못하면서 이해와 화합을 얘기했던 내 모습이 부끄럽게 여겨졌다.
당장 오늘부터라도 가까운 주변과의 화합을 위한 만남을 시작해야겠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못한게 현실이다.주위에서 항상 마음의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보기는 쉽지 않다.때때로 자기 속마음을 누구에겐가 털어 놓는 경우도 간혹 있긴 하지만 대개는 마음의 벽을 높이 쌓아두고 자기만의 세계를 굳게 지킨다.
내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지난 몇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업무상 또는 이런 저런 일로 꽤 많은 사람들을 상대해 왔다.그러나 그 접촉은 대부분 길어야 5분 정도의 전화로 간단하게 끝나는 것이 보통이다.보다 자세한 정보교환이 필요할 때는 팩시밀리를 사용하곤 했다.직접 만나 서로의 업무형편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시간낭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같은 무감각의 외피를 벗어버릴 수 있게 된 것은 사내교육 프로그램으로 마련된 「한마음 수련회」에 참석하고 부터이다.처음에는 의례적인 교육이겠거니 생각하고 짐을 챙겨 집을 나섰다.그러나 수련원에 들어가 모든 임직원이 똑 같은 유니폼으로 갈아 입고,극기훈련에 참가해 구슬땀을 흘리고,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2박3일을 함께 지내는 동안 내 생각이 잘못이라는 점을 깨닫게 됐다.서로 상대방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느낄 수 있었다.친구나 직장동료,회사의 고객등 내가 접촉하는 사람들에게 스스로는 믿음을 갖지 못하면서 이해와 화합을 얘기했던 내 모습이 부끄럽게 여겨졌다.
당장 오늘부터라도 가까운 주변과의 화합을 위한 만남을 시작해야겠다.
1993-02-19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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