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불편 덜자” 머리로 뛰는 공복/인감증명 부정방지등의 “명수”로/무의탁노인·소녀가장 가족처럼/“공익이 우선이지만 개인복지도 힘써야 할 때”
한밤은 물론 새벽녘까지 공장연기로 매캐한 대구시 북구 노곡동 일대.공장근로자들이 주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허름한 동네다.
올해로 공무원생활 8년째 접어든 청백리 이대영씨(39·대구시 북구청기획감사실 기획계직원)의 6백50만원짜리 전세집도 이 동네에 있다.
이씨의 3평짜리 단칸 셋방은 한낮에도 전등을 켜지 않으면 어두워서 앞을 잘 알아볼 수 없지만 방안에 들어서면 방문쪽을 빼고는 각종 서적이 빼곡히 쌓여있다.
『주민들의 요구에 행정서비스가 제때 뒤따르지 못하면 결국 불평과 불만이 나오게 되지요.그래서 이책 저책을 읽어가면서 주민들의 불편을 덜어줄 수 있는 방안들을 입안하곤 합니다』
이씨를 동료들은 신기한 눈으로 바라본다.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9급 동사무소 직원이 된것 자체에서부터 각종 행정제안을 제출해 내는가 하면 월급40만원으로 어렵게 살면서 불우이웃을돕는데 앞장서는 그의 생활 때문이다.이씨의 고향은 경북 예천군 하리면 우곡동.
산골짜기 다락논 열마지기에 11명의 대식구가 매달려 있는 가난탓에,당연한 것처럼 중학교 진학은 포기했다.
낮에는 농사일을 거들며 검정고시에 합격,대창고를 졸업했다.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중앙대 도서관학과에 진학했으나 학비가 없어 한학기만에 중도 포기했다.
낙담해있던 이씨에게 좋은 기회가 왔다.
우연히 알게된 이강무목사(65·서울 청파동 제일교회)의 주선으로 76년 9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시의 퍼시픽대학 경영학과에 입학하게 됐다.
책을 팔러다니고 보험세일즈맨으로 학비를 마련,3년만에 경영학 학사학위를 받았다.
그뒤 대학원에 입학했으나 한학기도 채 마치기 전에 아버지가 농사일을 하다 몸져 눕고 뒤이어 세상을 떠나는등 집안의 우환이 겹치자,가족들의 생계를 떠맡기 위해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고 귀국했다.
운이 따르지 않는지 이씨가 입사한 회사마다 부도로 망해 버렸다.
『유학까지 다녀온 고등실업자가 되어 놀자니 죽을 맛이었죠.특히 아내보기가 민망해 있던차에 공무원채용시험 공고가 있어 곧바로 응시한 것이 평생직업이 돼 가고 있습니다』
면접시험에서도 공무원을 택한 이유에 대해 『첫째 부도가 없기 때문이다』고 대답했을 정도로 처음에는 자포자기 상태에서 첫발을 내 디뎠다.
그러나 노곡동사무소에서 첫 업무를 시작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공무원이 주민들의 어려움 해결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하지만 길안내는 할 수 있다는 보람이 조금씩 생겨났다.
인감증명의 부정방지방안·컴퓨터 바이러스 방지방안·생보제도의 예산누수현상방지 등 5건의 공무원제안을 구청에 제출,이 가운데 2건이 우수제안으로 채택돼 상을 받기도 했다.
교통사고가 예상되는 구안국도 구조상의 문제점,영문표기가 잘못된 도로표지판·관광안내문을 고치도록 하는 등 지난 89년에는 시정통보 1위자로 선정돼 대구시장상을 받았다.
이씨의 이웃사랑은 더욱 유별나다.
신쌀붕어씨(80)등 무의탁노인 2명을 양아버지로,소녀가장 박미영양(15)을 친딸처럼 보살피는 등 이웃의 아픔을 쓰다듬는 이씨의 따뜻한 손길은 지역 곳곳에 스미고 있다.
거택보호 노인48가구와 지역유지와의 결연을 추진하고,무연고노인의 장례를 도맡아 치러 동네장의사라고 불리기까지 했다.
『공익이 최우선이던 시대는 끝났습니다.개인적 이익과 공적이익이 형평성을 이뤄야 합니다』이씨는 이같은 생각때문에 주민의 어려움 덜기에 앞장 서 준다고 말한다.
그가 주민들이 고맙다고 사주는 커피 한잔 입에 대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너무 잘 알려진 얘기다.
지난2월에는 이같은 사실이 알려져 청백리 장려상을 받았다.
이씨의 부인 변숙남씨(36)는 현수(12)덕수군(10)등 두아들을 키우면서 남편의 공직생활이 항상 정도를 걷게하기위해 공장에 나가고 있다고 했다.<대구=남윤호기자>
한밤은 물론 새벽녘까지 공장연기로 매캐한 대구시 북구 노곡동 일대.공장근로자들이 주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허름한 동네다.
올해로 공무원생활 8년째 접어든 청백리 이대영씨(39·대구시 북구청기획감사실 기획계직원)의 6백50만원짜리 전세집도 이 동네에 있다.
이씨의 3평짜리 단칸 셋방은 한낮에도 전등을 켜지 않으면 어두워서 앞을 잘 알아볼 수 없지만 방안에 들어서면 방문쪽을 빼고는 각종 서적이 빼곡히 쌓여있다.
『주민들의 요구에 행정서비스가 제때 뒤따르지 못하면 결국 불평과 불만이 나오게 되지요.그래서 이책 저책을 읽어가면서 주민들의 불편을 덜어줄 수 있는 방안들을 입안하곤 합니다』
이씨를 동료들은 신기한 눈으로 바라본다.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9급 동사무소 직원이 된것 자체에서부터 각종 행정제안을 제출해 내는가 하면 월급40만원으로 어렵게 살면서 불우이웃을돕는데 앞장서는 그의 생활 때문이다.이씨의 고향은 경북 예천군 하리면 우곡동.
산골짜기 다락논 열마지기에 11명의 대식구가 매달려 있는 가난탓에,당연한 것처럼 중학교 진학은 포기했다.
낮에는 농사일을 거들며 검정고시에 합격,대창고를 졸업했다.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중앙대 도서관학과에 진학했으나 학비가 없어 한학기만에 중도 포기했다.
낙담해있던 이씨에게 좋은 기회가 왔다.
우연히 알게된 이강무목사(65·서울 청파동 제일교회)의 주선으로 76년 9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시의 퍼시픽대학 경영학과에 입학하게 됐다.
책을 팔러다니고 보험세일즈맨으로 학비를 마련,3년만에 경영학 학사학위를 받았다.
그뒤 대학원에 입학했으나 한학기도 채 마치기 전에 아버지가 농사일을 하다 몸져 눕고 뒤이어 세상을 떠나는등 집안의 우환이 겹치자,가족들의 생계를 떠맡기 위해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고 귀국했다.
운이 따르지 않는지 이씨가 입사한 회사마다 부도로 망해 버렸다.
『유학까지 다녀온 고등실업자가 되어 놀자니 죽을 맛이었죠.특히 아내보기가 민망해 있던차에 공무원채용시험 공고가 있어 곧바로 응시한 것이 평생직업이 돼 가고 있습니다』
면접시험에서도 공무원을 택한 이유에 대해 『첫째 부도가 없기 때문이다』고 대답했을 정도로 처음에는 자포자기 상태에서 첫발을 내 디뎠다.
그러나 노곡동사무소에서 첫 업무를 시작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공무원이 주민들의 어려움 해결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하지만 길안내는 할 수 있다는 보람이 조금씩 생겨났다.
인감증명의 부정방지방안·컴퓨터 바이러스 방지방안·생보제도의 예산누수현상방지 등 5건의 공무원제안을 구청에 제출,이 가운데 2건이 우수제안으로 채택돼 상을 받기도 했다.
교통사고가 예상되는 구안국도 구조상의 문제점,영문표기가 잘못된 도로표지판·관광안내문을 고치도록 하는 등 지난 89년에는 시정통보 1위자로 선정돼 대구시장상을 받았다.
이씨의 이웃사랑은 더욱 유별나다.
신쌀붕어씨(80)등 무의탁노인 2명을 양아버지로,소녀가장 박미영양(15)을 친딸처럼 보살피는 등 이웃의 아픔을 쓰다듬는 이씨의 따뜻한 손길은 지역 곳곳에 스미고 있다.
거택보호 노인48가구와 지역유지와의 결연을 추진하고,무연고노인의 장례를 도맡아 치러 동네장의사라고 불리기까지 했다.
『공익이 최우선이던 시대는 끝났습니다.개인적 이익과 공적이익이 형평성을 이뤄야 합니다』이씨는 이같은 생각때문에 주민의 어려움 덜기에 앞장 서 준다고 말한다.
그가 주민들이 고맙다고 사주는 커피 한잔 입에 대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너무 잘 알려진 얘기다.
지난2월에는 이같은 사실이 알려져 청백리 장려상을 받았다.
이씨의 부인 변숙남씨(36)는 현수(12)덕수군(10)등 두아들을 키우면서 남편의 공직생활이 항상 정도를 걷게하기위해 공장에 나가고 있다고 했다.<대구=남윤호기자>
1992-07-1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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