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신문의 날」이다.36주년째 맞는 날이다.올해의 신문의 날 표어는 「사회에는 정의를,독자에겐 신뢰를」.신문협회·편집인협회·기자협회로 구성되는 신문 3단체가 공동으로 공모하여 당선시켰다.
근년에 이르러 신문은 「책임」과 「신뢰」의 역할을 의심받고 있다.책임을 다하지 못함으로써 신뢰에 균열이 생겼다는 질책을 받고 있는 것이다.사회의 정의를 바로 세우고,그렇게 함으로써 독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거나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는 뜻일,올해의 표어도 그런 맥락의 하나일 것이다.
신문이 하는 일이면 그게 바로 정의이고 가치기준이라고 믿어주었던 시대에 태어나서 장년에 이르러가는 우리 신문이 이토록 정당성의 의심을 받고 불신을 당하게 되었다는 일이 고통스럽다.
그러나 신문은 사회의 목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신문은 시대의 타구의 기능도 하고 있다.토해 놓은 모든 것을 담아내고 그 배설된 것들의 정체를 분별하여 체내의 기관들에 대한 건강을 점쳐 보고 예진해보고 그리고 처방을 모색 해보는 기능이 신문에는 있다.그가 담아낸 내용물을보고짧은안목으로그기여와공헌정도를속단하는것은부당하다고도할수있다.
항상 부정적이고 저항적인 역할로만 길들여진 「신문관」이 우리 독자들에게는 고착되어 있기도 하다.그래서 비판을 위한 비판이라도,비판하는 쪽이 용기가 있다고 믿고 있고,온당하게 긍정적 안목과 균형을 추구하는 매체의 노력에 대해서는 인색하고 경멸과 매도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독자들이 많이 있다.그 수가 그 반대의 경우보다 압도적으로 많기도 하다.신문도 기업으로 살아남지 못하면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하고 마는 것이 민주화시대의 토양이다.그러므로 독자가 길들여진 대로 거기 영합하며 제작하는 신문이 훨씬 쉽고 수지를 맞춰 재무구조를 탄탄히 해가는 방법도 된다.
그러나 그렇게만 해서도 안된다는 것을 우리 신문인은 뼛속깊이 알고 있다.정치가 폭풍속에 휘몰리면 함께 폭풍속에 휘말리며 증언을 해야하고,사회가 늪속을 허우적거리면서라도 사회를 지켜보아야 한다.그러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의견끼리의 갈등도 노정시키고 혼미속을 헤매게도 된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신문을 옳은 안목과 성숙한 논리로 바로 세우지 못하면 바로 그때문에 신문의 생명은 단축되고 사회와 국가를 해치게 되며 소생할 자생력도 소진시키게 된다는 것을 신문인들은 스스로 알고 있다.
신문의 날 표어가 정의와 책임,신뢰를 강조하는 것은 신문에 그렇게 기대할만한 능력이 있고 가치가 있다는 것의 증좌다.신문인은 그것도 알고 있다.시대가 그렇듯이 다양해진 신문의 모습때문에 다소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스스로 공정하고 공명하게 살아남으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끊임 없이 반성하고 끊임 없이 정진함으로써 자구하며 살아남는 것만이 신문의 지향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다짐한다.
근년에 이르러 신문은 「책임」과 「신뢰」의 역할을 의심받고 있다.책임을 다하지 못함으로써 신뢰에 균열이 생겼다는 질책을 받고 있는 것이다.사회의 정의를 바로 세우고,그렇게 함으로써 독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거나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는 뜻일,올해의 표어도 그런 맥락의 하나일 것이다.
신문이 하는 일이면 그게 바로 정의이고 가치기준이라고 믿어주었던 시대에 태어나서 장년에 이르러가는 우리 신문이 이토록 정당성의 의심을 받고 불신을 당하게 되었다는 일이 고통스럽다.
그러나 신문은 사회의 목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신문은 시대의 타구의 기능도 하고 있다.토해 놓은 모든 것을 담아내고 그 배설된 것들의 정체를 분별하여 체내의 기관들에 대한 건강을 점쳐 보고 예진해보고 그리고 처방을 모색 해보는 기능이 신문에는 있다.그가 담아낸 내용물을보고짧은안목으로그기여와공헌정도를속단하는것은부당하다고도할수있다.
항상 부정적이고 저항적인 역할로만 길들여진 「신문관」이 우리 독자들에게는 고착되어 있기도 하다.그래서 비판을 위한 비판이라도,비판하는 쪽이 용기가 있다고 믿고 있고,온당하게 긍정적 안목과 균형을 추구하는 매체의 노력에 대해서는 인색하고 경멸과 매도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독자들이 많이 있다.그 수가 그 반대의 경우보다 압도적으로 많기도 하다.신문도 기업으로 살아남지 못하면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하고 마는 것이 민주화시대의 토양이다.그러므로 독자가 길들여진 대로 거기 영합하며 제작하는 신문이 훨씬 쉽고 수지를 맞춰 재무구조를 탄탄히 해가는 방법도 된다.
그러나 그렇게만 해서도 안된다는 것을 우리 신문인은 뼛속깊이 알고 있다.정치가 폭풍속에 휘몰리면 함께 폭풍속에 휘말리며 증언을 해야하고,사회가 늪속을 허우적거리면서라도 사회를 지켜보아야 한다.그러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의견끼리의 갈등도 노정시키고 혼미속을 헤매게도 된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신문을 옳은 안목과 성숙한 논리로 바로 세우지 못하면 바로 그때문에 신문의 생명은 단축되고 사회와 국가를 해치게 되며 소생할 자생력도 소진시키게 된다는 것을 신문인들은 스스로 알고 있다.
신문의 날 표어가 정의와 책임,신뢰를 강조하는 것은 신문에 그렇게 기대할만한 능력이 있고 가치가 있다는 것의 증좌다.신문인은 그것도 알고 있다.시대가 그렇듯이 다양해진 신문의 모습때문에 다소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스스로 공정하고 공명하게 살아남으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끊임 없이 반성하고 끊임 없이 정진함으로써 자구하며 살아남는 것만이 신문의 지향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다짐한다.
1992-04-07 2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thumbnail - “영유 안 보내면 후회?” 이지혜 한마디에 ‘발끈’…맞는 말 아닌가요 [불꽃육아]](https://img.seoul.co.kr/img/upload/2026/02/11/SSC_20260211155549_N2.jpg.web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