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참정권 보장이 최대과제/남아공 「주민등록법」폐지와 정치적 장래

흑인참정권 보장이 최대과제/남아공 「주민등록법」폐지와 정치적 장래

김주혁 기자 기자
입력 1991-06-19 00:00
수정 1991-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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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 경제제재 풀리면 개헌 미룰 가능성/흑인끼리 종족분쟁,주도권 다툼도 문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백인정권이 주민등록법을 폐지함으로써 그 동안 전세계적으로 악명높은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을 가능케 했던 법률적 차원의 근거들이 일단 모두 제거됐다. 이에 따라 그 동안 「요람에서 무덤까지」 극심한 차별대우로 끊임없는 유혈충돌사태를 빚어온 흑백분규종식 문제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이제 남은 걸림돌은 투표 및 선거권 등 흑인들의 참정권을 제한하고 있는 헌법의 개정과 정치범 석방 등 두 가지 가장 핵심적인 문제들이다.

프레데릭 데 클레르크 남아공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행한 지난해 2월 의회연설에서 인종차별정책의 폐기와 흑백간의 타협모색을 선언한 이래 아프리카 민족회의(ANC) 등 반정부단체를 합법화하고 ANC지도자인 넬슨 만델라를 투옥 된지 28년 만에 석방했으며,지난해 5월부터는 개헌문제를 놓고 만델라와 협상을 벌이는 등 꾸준히 약속이행작업을 벌여왔다. 지난달 재판없는 구속과 언론검열을 허용해온 국가보안법을개정했고 이달초 인종간의 주거지를 구분해 놓은 집단거주지역법과 전국토의 87%를 백인에게 할당한 토지법을 폐지한 데 이어 이번 주민등록법 폐지로 법률적인 문제해결은 일단 마무리된 셈이다.

물론 편의시설이용법이 폐지됨에 따라 흑인자녀도 비교적 시설이 좋은 백인학교에 입학할 수 있게 되기는 했지만 의무사항이 아니고 학부모 72%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데다가 대부분의 흑인들이 비싼 학비를 부담할 능력마저 없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예전과 다를 바 없는 등 피부에 와닿는 변화는 많지 않다.

때문에 흑인들은 이같은 법률차원의 개선작업도 환영하기는 하지만 자신들에게도 참정권을 부여하는 개헌이 하루빨리 이뤄져 흑인들의 생활수준 개선 등 보다 근본적이고도 급속한 해결책이 마련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개헌을 이룩하기까지는 아직도 넘어야 할 험난한 산들이 많다. 3천만명의 흑인에 비해 5분의1 정도인 6백만명에 불과한 소수 백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이제까지의 법률폐지작업은 정권과는 무관하면서도 전세계의 경제제재조치를벗어나기 위해 불가피한 양보였지만,개헌은 차기선거 및 정권창출로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계속 주도권을 잡으면서 지연작전을 펴고 있다. 이에 반해 ANC는 제헌의회 및 임시거국정부 구성을 주장하고 있다.

반백인 투쟁단계에서는 공동보조를 맞추었던 흑인들도 막상 개헌과 선거가 눈앞으로 다가오자 종족과 파벌간에 분열상을 드러내고 있다. 호사족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ANC가 백인정부와의 협상을 독점하자 최대종족인 줄루족의 인카타자유당(IFP)이 창과 도끼 등을 무기로 호사족에 대한 습격을 종종 벌여 지난해 ANC합법화 이후에만도 5천여 명의 사망자를 냈다. 이념적으로도 ACN가 전반적인 사회변혁과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중도좌파라면 IFP는 흑백분리통치 등 보수개혁과 자본주의를 앞세운 우파이며 공산당과 범아프리카회의 등 극좌파들도 제각각 협상참가를 주장하고 있다. 개헌 후 IFP 등 보수흑인집단과 연합해 재집권을 노리고 있는 백인들의 국민당정권은 이같은 흑인들간의 갈등에 내심 흐뭇해하고 있다.

따라서 내달쯤 적당한 수준에서 정치범이 석방되고 미국 등 세계각국의 경제제재가 완화된다면 개헌은 더욱 요원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부 백인들이 비록 심한 반발을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인종차별정책 폐지는 이제 되돌이킬 수 없는 대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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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동안 우월주의에 사로잡힌 백인과 억압에 짓눌려온 흑인들이 앞으로 슬기로운 타협점을 찾아내고 방종이 아닌 자유를 몸에 익히기까지에는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 같다.<김주혁 기자>
1991-06-19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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