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원치 않는 「국민대회」(사설)

「국민」이 원치 않는 「국민대회」(사설)

입력 1991-06-09 00:00
수정 1991-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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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검」도 이루어졌다. 몸이 아파 입원한 환자들이 화염병과 최루탄의 위험 속에 갇혀 인질 같은 생활을 한 지난 며칠동안의 불편에서도 벗어났다. 그만해도 숨이 돌려지는 듯한 느낌이다. 바리케이드와 모래주머니로 참호 같은 저지선을 만들어놓고 시신사촌을 하던 시위학생들이 솔선해서 「장애물」들을 거둬내고 경찰력이 동원되어 청소도 했다. 결국 대화를 통해 노력하고 또 노력해서 이 귀한 화해의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시위로 해결되는 일이 아무것도 없음을 다시 한 번 실감한다.

그런데도 이 판국에 전국에서 「제5차 국민대회」가 또다시 열리고 있다. 명분을 「6·10 항쟁 계승」에 두고 노정권 퇴진을 위해 투쟁하겠다고 한다. 지난 5월9일부터 6월2일까지 4차례의 「국민대회」 동안 연인원 23만3천여 명의 학생·재야단체회원 등이 참가했으며 화염병 5만1천여 개,돌 32만여 개 등이 던져져 35곳의 공공건물이 피습되거나 방화된 것으로 집계되었다.

이 「파괴대회」가 어째서 「국민대회」인가. 「국민」들은 이 시위대회에 넌덜머리가 나 있는데 여전히 「국민」을 칭하는 것을 누가 허락했는가. 지나간 4번의 「국민대회」가 너무도 지겹고 생업에 지장을 주어 이제는 「맨몸」으로 시위대 앞을 가로막는 중인 것이 국민이다.

고려대에서 「출정」한 시위꾼 수백명 앞을 시민들이 몸소 막고 앉았었음을 우리는 사흘 전에 목격했다. 그 시민들을 「돈 받고 동원된」 것으로 자극했다가 호된 분노를 사고 시위대는 쫓겨서 되돌아갔다. 「살기 위해서」 데모를 막으려고 나선 「국민」을 돈 받고 동원된 것으로 모욕하기를 서슴치 않는 「국민대회」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위한 시위대회인가. 고대 앞에 이어서 서울대 앞에서도 시위대는 「국민」에게 야단맞고 쫓겨 들어갔다.

그런데도 여전히 「제5차 국민대회」라니,그런 「국민대회」를 무엇 때문에 하는가. 우선 「국민」을 사칭하지도 말라. 운동권이 그렇게 불렀다는 이유만으로 그걸 단속하는 치안책임자들도 덩달아 「국민대회」라고 부르는 것도 무신경한 행동이다.

사회주의 혁명운동권들의 전략에는 바로 그런 부분이 있다. 시민을설득해서 시위에 가담시킬 것을 기대하지 말고 시위운동을 먼저 저질러서 시민을 끌어들이게 하는 방법이다. 「국민」을 접두어로 계속 칭하는 것은 그런 효과를 위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들이 그런 집회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명백해졌다. 시위꾼의 정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정 총리 사건」 이후에는 자율적으로,솔선해서 소요와 시위를 거부하기로 하고 나서려는 것이 국민의 의지다.

그 시민(국민)의 목소리를,운동권은 알아듣도록 하라.

특히 「범국민대책위」라는 운동권의 지도부는 이 소리를 잘 새겨 들어야 한다. 한줌도 안 되는 환상적인 혁명운동세력이 「범」국민을 사칭하는 일부터가 정직하지 못한 일이다. 성숙하기 전의 어린 학생들을 끌어들여 이성능력을 마비시켜 편향적 이념에 고착시켜 놓고 그들을 하수인 삼아 극렬한 사회파괴운동을 벌이면서 그걸 「국민대회」라고 부르는 일에,정작 「국민」은 염증이 났다. 그 폭력에 다칠까봐 「시위학생의 도덕적 정당성」에 손을 들어주는 눈치 빠른 지식인들에게도 회의를 보낼만큼 「국민」들은 중심을 잡고 있다. 그러니 국민이 원치 않는 국민대회는 이제 끝내라. 그리고 실날같이 보이기 시작한 화해와 순리의 지혜를 발휘하도록 하라. 그것이 나라를 위하고 스스로를 구하는 길이다.
1991-06-09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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