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 타격… 더 참을 수 없었다”/화염병시위 막은 고대앞 주민들

“생계 타격… 더 참을 수 없었다”/화염병시위 막은 고대앞 주민들

오승호 기자 기자
입력 1991-06-07 00:00
수정 1991-06-07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폭력 재발땐 앞으로도 몸으로 막겠다/“민자당서 얼마나 받았나” 대들땐 서운

『화염병이 난무하는 과격한 시위는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 우리 시민들이 나서서 폭력시위를 막아야 할 때입니다』

6일 하오 서울 고려대 앞 신제기로터리 주변 인도에는 이 지역 주민 7∼8명이 모여 앉아 지난 5일 이 학교 학생들이 벌였던 화염병시위를 막았던 얘기를 주고 받으며 『앞으로 화염병시위가 또다시 재연될 경우엔 주민 모두가 나서 막아야 된다』고 말했다.

이 지역에서 조그만 구멍가게를 경영하거나 시장에서 행상 등을 하며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주민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학교 주변에서 빚어지는 화염병과 최루탄의 공방전 때문에 생계가 위협당하는 등 더 이상 고통스러워 참을 수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10여 일 전에 있었던 시위 때문에 매캐한 최루가스냄새가 아직까지 가시지 않아 어린이들이 목젖이 부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가면서까지도 인내해왔던 주민들은 한국외국어대생들의 정원식 총리서리 폭행사건을 계기로 급기야는 학생들의 화염병시위를 직접 몸으로 막고 나섰던 것이다.

『고려대 앞 신제기로터리에서는 5일 하오 5시50분쯤부터 이 학교 학생 4백여 명이 복면을 하고 쇠파이프를 든 것은 물론,언제나 그랬듯이 화염병을 투척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시위대와 1백여 m쯤 떨어진 우신향병원 앞과 제기시장 입구에는 경찰이 최루탄발사차를 대기시켜놓고 학생들을 해산시킬 준비를 하는 모습도 보였지요』 주민들은 학교 철책울타리를 뜯어내면서 거리로 뛰쳐나와 구호만을 외칠 때까지는 「이젠 좀 자제하겠지」 하는 한가닥의 기대 때문에 거리에 서서 지켜보기만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대는 역시 무너졌다. 시위학생들이 또다시 화염병을 마구 던져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리들 가운데 인도에 서 있던 20여 명이 시위대의 「선봉대」 앞으로 달려나가 도로를 가로막고 학생들의 진출을 막았습니다. 힘센 남자들은 시위학생들 사이에 끼어들어 「제발 화염병만은 던지지 말라」고 애타게 호소했죠』

주민들은 『이때 일부 학생들이 「민자당에서 돈을 얼마나 받고 이 같은 짓을 하느냐」 「누구의 사주를 받고 왔느냐」고 대들며 멱살을 잡고 삿대질까지 해댔다』면서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고 말햇다.

『등에 아기를 업은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돌아다니며 고통을 호소했지만 「선봉대」 학생들은 막무가내로 경찰에 화염병을 던져댔어요. 그럴 수가 있습니까』 주민들은 이내 목청을 높였다.

주민들이 나선 지 약 30분 지난 하오 6시20분쯤 됐을 때 시위학생들은 이들의 신분이 주민임을 확인하고는 『주민들과는 충돌을 빚지 말자』면서 준비한 5백여 개의 화염병 중 쓰다 남은 4백여 개를 들고는 더 이상 시위를 벌이지 않고 구호를 외치며 학교로 돌아갔다.

주민들은 학생들의 화염병시위도 막고 모처럼 최루탄 냄새도 피해갈 수 있었던 것이 참으로 다행스러웠다고 입을 모았다.

학교 앞에서 「삼표석유」라는 조그만 석유소매상을 경영하는 곽상만씨(28)는 『그 동안 화염병 불을 끄는 데 사용한 소화기 숫자만도 수십 개나 된다』고 상기하면서 『이젠 어떤 명분으로도 화염병시위는 용납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말했다.

학교 앞에서 문구점을 경영하는 윤성남 할아버지(71)는 『총리라서가 아니라 스승을 폭행하는 학생들의 행동이 개탄스러울 뿐』이라면서 『화염병을 못 던지게 하는 법을 강력히 만들어야 한다』고 분개했다.<오승호 기자>
1991-06-07 18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