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년만에 고향 다녀온 박영숙의원

44년만에 고향 다녀온 박영숙의원

김명서 기자 기자
입력 1991-05-07 00:00
수정 1991-05-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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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포근함 사라지고 잿빛 도시로/가로정비 자랑했지만 인적없어 누굴 위한 것인지…

『44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평양이라고 변하지 않을 수야 없겠죠. 옛자취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고향의 포근함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저 잘 정돈된 회색의 도시라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국제의회연맹(IPU) 평양총회 우리 대표단의 고문자격으로 고향인 평양을 8박9일 동안 다녀온 박영숙 신민당 최고위원(59)의 방북 소감에서는 무엇보다 낯설게 바뀌어버린 고향에 대한 섭섭함이 짙게 깔려 있었다.

박 의원이 태어난 곳은 평양의 중심지로 옛지명으로는 수동 58번지. 대동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이곳에서 성남소학교를 4학년까지 다니다 부모를 따라 만주로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정의여중 2학년을 다니던 47년에 월남했다. 그때 나이 15세. 부친이 별세하고 세상이 바뀌면서 할머니·어머니·여동생들과 함께 남쪽행을 결심한 것.

『IPU총회 개막식이 열린 만수대의사당도 내가 태어난 동네에 있었어요. 인민대학습당도 그곳에 있더군요. 이렇게 평양의 요지로서 대대적으로 개발되다보니 옛날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더군요』

기억 중에 현재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대동문·대동교·연광정·보통문·부벽루 등 유적지뿐이었다고 손가락으로 꼽으며 아쉬워 했다.

『그쪽 사람들은 6·25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도시가 폐허가 됐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나 변한 것은 사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몇 차례에 걸친 인구 대이동 때문이긴 하겠지만 현재 평양시민 중 토박이는 20%에 불과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평양을 찾아간 김에 함께 월남하지 못한 외가쪽 친척들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지만 결국 소재파악을 하지 못했다는 것.

평양에 대한 첫 인상은 사람과 차량의 통행이 드물어 쓸쓸하게 느낄 만큼 한가로웠다는 것이다. 『건물·도로 등의 정비가 세계적이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과연 누구를 위한 도시인가라고 생각할 정도로 썰렁했다』는 설명.

그곳 사람들과의 대화도 이미 전해들었던 것과 달라진 것이 전혀 없었다. 주제 자체가 통일·임수경·팀스피리트훈련·이종구 국방장관 발언 등 의도적인 내용으로만 일관됐고 『삶의 풋풋한 정취라고는 거의 느낄 수 없었다』고 못내 아쉬워 했다.

『30일 오후 우연히 만난 고등학생들이 남조선 소년소녀들이 배가 고파 깡통구걸을 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진지하고 말하데요. 어디서 그런 얘길 들었느냐고 했더니 최근 신문에서 봤다고 하더군요』

반공이데올로기가 풍미할 때 간혹 듣던 얘기지만 아직도 그것이 「평양의 현실」이라고 했다.

『평양 도착 직후 서점을 찾은 일이 있어요. 당시는 우리의 나들이에 대비한 조직(준비)을 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동행한 김광일 의원이 세계성서전설집이라는 책을 골라 사겠다고 했어요. 서점 직원이 곤혹스런 표정을 지으며 김일성 사상집이나 주체사상에 관한 책을 권하더군요. 그래도 성서전설집을 사겠다고 했더니 버럭 화를 내며 임수경이도 석방 못 시키는 국회의원이 그런 책을 사더라도 집에까지 갖고 갈 수 있겠느냐고 소리지르더군요』

이런 식의 평양체험에 바탕을 둔 탓인지 박 의원의 통일에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결국 우리측이 보다 분명하게 통일의 의지를 보여주는 방법밖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 쪽에서 과감하게 문호를 개방하는 등 포용력 있게 나와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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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의원은 남한측이 자신감있게 대북 문호개방을 해야 한다는 불가피성을 거듭 역설했다.<김명서 기자>
1991-05-07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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