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장 자퇴” 선수로 재신임 획득/「평가보고」 요구도 측근동원 봉쇄/“당운영방식 여전히 정치국 중심” 확인
25일 끝난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당내 보수파들이 보여준 고르바초프 당 서기장에 대한 「숙청」 기도는 결국 고르바초프의 정치적 입지를 더욱 강화시켜준 결과가 됐다.
고르바초프 당 서기장은 서기장직 사의표명,중앙위 반려의 절차를 거치면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앞으로 개혁을 더욱 자신있게 추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셈이다.
24일부터 이틀간 진행된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고르바초프는 두 차례에 걸쳐 강경보수세력으로부터 표대결을 요청받았다. 하나는 개회 직후 열린 의제상정과정에서 보수파는 고르바초프의 지난 2년간에 걸친 「평가보고」를 의제로 상정할 것을 요구했다. 또 하나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25일 상오에 선제공격을 편 사임의사 표명이다. 이들 두 사건은 모두 고르바초프가 여전히 공산당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음은 물론 공산당내에 그를 대신할 대안이 없음을 확인시키는,말하자면 「공산당=고르바초프」의 등식을 재확인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끝났다.
보수파가 시도한 평가보고의 의제상정제안은 그 속성상 의제로 상정될 경우 퇴임으로까진 이르지 않더라도 정치적으로 상당한 부담을 안길 수 있는 사안이다. 대체적으로 평가보고는 자아비판의 성격을 띠게 된다.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그것이 비록 부분적이라 하더라도 과오를 인정해야 하는 결과를 낳는다. 과오의 인정은 또다른 시비를 낳게 마련이고 보수파가 주장해온 부분들을 합리화시켜주는 역할을 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고르바초프측은 압도적으로 보수파의 의제 상정제안을 제외시킴으로써 일찌감치 고르바초프의 승리를 확인시켰다.
의제상정과정에서 나타난 중앙위의 형태는 여전히 당운영방식이 정치국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정치국이 사전에 의제를 국내정세 및 국제정세에 대한 현안논의로 확정지었고 이후 중앙위 일부 세력이 의제에 평가보고를 넣을 것을 요구했지만 전체 중앙위는 정치국 결정 존중의 선례를 지킨 것이다.
서기장 사임의사표명과 반려는 고르비의 계산된 도박으로 분석되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이어 개회연설을 통해 『많은 당원들이 갈피를 못잡고 있으며 많은 당지도자들은 히스테리적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지금의 상황은 레닌이 신경제정책(NEP)를 폈을 때와 비슷하다. 그때 개혁이 실시되지 못한 것이 유감이고 우린 지금 다시 그 시도를 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이 자리(당 서기장)에서 물러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누가 하든 대통령과 서기장의 겸직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는 토론자로 나선 보수파들이 자신에 대한 비판을 강화하자 25일 상오 정회에 들어가기 직전 사임의사를 표명,중앙위원들의 의사를 물어줄 것을 요구했다. 그 결과 4백명에 가까운 전체위원 중 단지 13명의 위원만이 사임문제를 다룰 것에 찬성하는 압도적인 재신임을 획득한 것이다.
오전회의가 끝난 뒤 회의 결과를 발표한 자소호프 당서기는 『근본의제는 국가의 위기탈출방안과 당의 역할에 관한 것이었으며 9개 공화국리더들과 체결한 성명이 회의참가자들에게 큰 파문을 일으켰다』고 말해 성명을 둘러싼 보수파들의 공세가 치열했음을 시사했다. 그는 극히 비판적인 토론이 시작되었으며 현실위기에 대한 책임이 고르비에 있다는 토론이 많았으나 극단적인 주장들은 소수였다고 공식적으로 고르비 사임에 대한 문제가 이미 종결되었음을 밝혔다.
뒤이어 국영 TV가 인터뷰한 의원들은 『대회에서 날카로운 비판이 잇따르자 고르비는 정회 직전 사임의사를 발표했다』고 전하고 『그러나 고르비에게 있어서는 사임이 더 유익할지 모르지만 당으로서는 비극적인 결과가 예상되기 때문에 이를 다룰 것인가 하는 논의에서 13명이 찬성,14명이 기권하고 나머지는 다룰 필요조차 없다는 반대를 표시했다』고 전했다. 이날 회의에서 보수파들은 특히 9개 공화국 지도자들과 체결한 공동성명이 원칙없는 지나친 절충의 결과라고 지적하면서 사임을 요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소유즈대회와 레닌그라드에서 있었던 골수 막스 레닌주의자들의 궐기대회,여러 지방 공산당위원회에서 있었던 고르비 사임요구 등을 고려한다면 중앙위의 진행은 오히려 뜻밖일 정도였다. 그러나 소유즈 등 사임을 요구했던 그룹이 주로 하위 노멘클라투라(공산당내 특권계층)에서 일어났던 점이 특이했다. 즉 최상위 노멘클라투라로 구성된 중앙위원회는 이들과는 생각이 달랐고 그래서 예상보다 훨씬 큰 일방적인 고르바초프의 승리를 가져온 것이 아닌가 분석되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지난 24일 9개 공화국과의 공동성명을 통해 개혁 및 민족주의세력과의 공존의 길을 열었다. 이를 실천하는데 가장 큰 변수로 여겨졌던 당내 보수파의 반동을 이번 중앙위를 통해 잠재움으로써 어느 때보다 안정적인 정치적 입지를 확보했다고 할 수 있다. 당내 보수파의 반발이라는 중대한 고비를 무난히 넘겼지만 소련의 장래는 여전히 불안하다.<모스크바=김영만 특파원>
25일 끝난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당내 보수파들이 보여준 고르바초프 당 서기장에 대한 「숙청」 기도는 결국 고르바초프의 정치적 입지를 더욱 강화시켜준 결과가 됐다.
고르바초프 당 서기장은 서기장직 사의표명,중앙위 반려의 절차를 거치면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앞으로 개혁을 더욱 자신있게 추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셈이다.
24일부터 이틀간 진행된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고르바초프는 두 차례에 걸쳐 강경보수세력으로부터 표대결을 요청받았다. 하나는 개회 직후 열린 의제상정과정에서 보수파는 고르바초프의 지난 2년간에 걸친 「평가보고」를 의제로 상정할 것을 요구했다. 또 하나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25일 상오에 선제공격을 편 사임의사 표명이다. 이들 두 사건은 모두 고르바초프가 여전히 공산당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음은 물론 공산당내에 그를 대신할 대안이 없음을 확인시키는,말하자면 「공산당=고르바초프」의 등식을 재확인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끝났다.
보수파가 시도한 평가보고의 의제상정제안은 그 속성상 의제로 상정될 경우 퇴임으로까진 이르지 않더라도 정치적으로 상당한 부담을 안길 수 있는 사안이다. 대체적으로 평가보고는 자아비판의 성격을 띠게 된다.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그것이 비록 부분적이라 하더라도 과오를 인정해야 하는 결과를 낳는다. 과오의 인정은 또다른 시비를 낳게 마련이고 보수파가 주장해온 부분들을 합리화시켜주는 역할을 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고르바초프측은 압도적으로 보수파의 의제 상정제안을 제외시킴으로써 일찌감치 고르바초프의 승리를 확인시켰다.
의제상정과정에서 나타난 중앙위의 형태는 여전히 당운영방식이 정치국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정치국이 사전에 의제를 국내정세 및 국제정세에 대한 현안논의로 확정지었고 이후 중앙위 일부 세력이 의제에 평가보고를 넣을 것을 요구했지만 전체 중앙위는 정치국 결정 존중의 선례를 지킨 것이다.
서기장 사임의사표명과 반려는 고르비의 계산된 도박으로 분석되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이어 개회연설을 통해 『많은 당원들이 갈피를 못잡고 있으며 많은 당지도자들은 히스테리적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지금의 상황은 레닌이 신경제정책(NEP)를 폈을 때와 비슷하다. 그때 개혁이 실시되지 못한 것이 유감이고 우린 지금 다시 그 시도를 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이 자리(당 서기장)에서 물러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누가 하든 대통령과 서기장의 겸직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는 토론자로 나선 보수파들이 자신에 대한 비판을 강화하자 25일 상오 정회에 들어가기 직전 사임의사를 표명,중앙위원들의 의사를 물어줄 것을 요구했다. 그 결과 4백명에 가까운 전체위원 중 단지 13명의 위원만이 사임문제를 다룰 것에 찬성하는 압도적인 재신임을 획득한 것이다.
오전회의가 끝난 뒤 회의 결과를 발표한 자소호프 당서기는 『근본의제는 국가의 위기탈출방안과 당의 역할에 관한 것이었으며 9개 공화국리더들과 체결한 성명이 회의참가자들에게 큰 파문을 일으켰다』고 말해 성명을 둘러싼 보수파들의 공세가 치열했음을 시사했다. 그는 극히 비판적인 토론이 시작되었으며 현실위기에 대한 책임이 고르비에 있다는 토론이 많았으나 극단적인 주장들은 소수였다고 공식적으로 고르비 사임에 대한 문제가 이미 종결되었음을 밝혔다.
뒤이어 국영 TV가 인터뷰한 의원들은 『대회에서 날카로운 비판이 잇따르자 고르비는 정회 직전 사임의사를 발표했다』고 전하고 『그러나 고르비에게 있어서는 사임이 더 유익할지 모르지만 당으로서는 비극적인 결과가 예상되기 때문에 이를 다룰 것인가 하는 논의에서 13명이 찬성,14명이 기권하고 나머지는 다룰 필요조차 없다는 반대를 표시했다』고 전했다. 이날 회의에서 보수파들은 특히 9개 공화국 지도자들과 체결한 공동성명이 원칙없는 지나친 절충의 결과라고 지적하면서 사임을 요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소유즈대회와 레닌그라드에서 있었던 골수 막스 레닌주의자들의 궐기대회,여러 지방 공산당위원회에서 있었던 고르비 사임요구 등을 고려한다면 중앙위의 진행은 오히려 뜻밖일 정도였다. 그러나 소유즈 등 사임을 요구했던 그룹이 주로 하위 노멘클라투라(공산당내 특권계층)에서 일어났던 점이 특이했다. 즉 최상위 노멘클라투라로 구성된 중앙위원회는 이들과는 생각이 달랐고 그래서 예상보다 훨씬 큰 일방적인 고르바초프의 승리를 가져온 것이 아닌가 분석되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지난 24일 9개 공화국과의 공동성명을 통해 개혁 및 민족주의세력과의 공존의 길을 열었다. 이를 실천하는데 가장 큰 변수로 여겨졌던 당내 보수파의 반동을 이번 중앙위를 통해 잠재움으로써 어느 때보다 안정적인 정치적 입지를 확보했다고 할 수 있다. 당내 보수파의 반발이라는 중대한 고비를 무난히 넘겼지만 소련의 장래는 여전히 불안하다.<모스크바=김영만 특파원>
1991-04-27 5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