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우리 사회에서 도덕성의 회복이나 윤리의 재건을 외치는 일은 허공을 향한 독백으로 그치기 쉽다. 외치는 자체부터 쑥스럽고 듣는 이에게는 자칫 자조·자탄의 실소나 자아내게 할 뿐이라는 것도 현실이다. 그만큼 전반적으로 양심과 양식이 황폐해 있다. 더구나 그 황폐화를 주도한 사람들이 다름 아닌 우리 사회 지도층이며 지식인이다. 그래서 더욱 더 암담해진다.
돈을 먹고 부정입학을 시킨 대학 교수가 누구인가. 뇌물로 외유한 국회의원이 누구인가. 이른바 「워터웨스트(수서)」 사건에 연루된 고위 공직자나 기업인이 누구인가. 그들은 하나 같이 우리 사회의 상층부를 구성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윤리 도덕의식이 마비되어 있는 마당에 누가 어디에 대고 어떻게 그 회복과 재건을 외친다고 할수 있을 것인지 망연해진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긴 해도 그 와중에서나마 도덕성 회복을 위한 자정의 외침이 있었음을 본다. 그 하나가 지난 7일 채택된 「국회의원 윤리강령」이고 다른 하나는 20일에 한국경영자 총협회가 채택한 「기업윤리 헌장」이다.
그 내용들을 훑어보면 그야말로 공자 말씀이다. 「국회의원 윤리강령」의 경우 그 내용대로만 처신을 한다면 얼마나 믿음직스러운 선량이 될 것인지 알수 없게 한다. 7개항의 「기업윤리 헌장」도 그렇다. 오는 3월4일까지의 비업무용 부동산 매각 시한을 앞두고 1월31일 현재 18.4%밖에 처분하지 않은 재벌도 끼였을 이 총회의 자정선언은 참으로 훌륭하다. 그대로만 된다면 노사분규도 없어질 것 같고 소비자단체들도 설 땅을 잃을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같은 강령이나 헌장이 미사여구의 구두탄으로 끝나지 않게 하는 결연한 실천의지이다. 세상이 시끄러우니까 호도용으로 혹은 전시용으로 내놓았다가 금방 잊어버리게 된다 할 때는 차라리 처음부터 않느니만 못하다. 잘해 보자고 채택한 터이니까 박수는 쳐야겠지만 황폐할 대로 황폐해진 윤리·도덕의식 속에서 어느만큼 실효성을 거두게 될 것인지는 두고 보아야 할 듯싶다.
이런 움직임과도 관련하여 제 아무리 메아리 없는 외침이 된다 하더라도 그래도 거푸거푸 외치고 싶은 것이 역시 우리 사회의 도덕성 회복이다. 그것을 이루어내지 못할 때 우리는 끝내 공멸의 늪으로 빠져들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되어 온 일이기는 하지만 20일 노태우대통령이 임시 국무회의와 당직자 회의에서 깨끗한 공직풍토의 조성을 재강조한 뜻도 거기에 있다고 할 것이다. 이 말을 평범하고 진부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우리의 자정노력은 공직자사회와 윗물부터 시범을 보일 때 비로소 설득력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탄하고 자조하는 데에서 그쳐 버린다면 내일이 어두워진다. 또 최근의 일련의 사태들은 기실 어제 오늘의 일이라고만 할 수 없는 적폐이기도 하다. 그것이 민주발전 과정에서 도마위로 표출되었다는 것뿐이다. 그렇다 할 때 우리는 그를 슬기롭게 극복하여 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점에서 「국회의원 윤리강령」이나 「기업윤리헌장」의 정신은 그들만의 것이 아닌 국민 모두의 것으로 삼아야 한다. 그 실천의지로써 건강사회를 이룩해 나가야 한다.
돈을 먹고 부정입학을 시킨 대학 교수가 누구인가. 뇌물로 외유한 국회의원이 누구인가. 이른바 「워터웨스트(수서)」 사건에 연루된 고위 공직자나 기업인이 누구인가. 그들은 하나 같이 우리 사회의 상층부를 구성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윤리 도덕의식이 마비되어 있는 마당에 누가 어디에 대고 어떻게 그 회복과 재건을 외친다고 할수 있을 것인지 망연해진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긴 해도 그 와중에서나마 도덕성 회복을 위한 자정의 외침이 있었음을 본다. 그 하나가 지난 7일 채택된 「국회의원 윤리강령」이고 다른 하나는 20일에 한국경영자 총협회가 채택한 「기업윤리 헌장」이다.
그 내용들을 훑어보면 그야말로 공자 말씀이다. 「국회의원 윤리강령」의 경우 그 내용대로만 처신을 한다면 얼마나 믿음직스러운 선량이 될 것인지 알수 없게 한다. 7개항의 「기업윤리 헌장」도 그렇다. 오는 3월4일까지의 비업무용 부동산 매각 시한을 앞두고 1월31일 현재 18.4%밖에 처분하지 않은 재벌도 끼였을 이 총회의 자정선언은 참으로 훌륭하다. 그대로만 된다면 노사분규도 없어질 것 같고 소비자단체들도 설 땅을 잃을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같은 강령이나 헌장이 미사여구의 구두탄으로 끝나지 않게 하는 결연한 실천의지이다. 세상이 시끄러우니까 호도용으로 혹은 전시용으로 내놓았다가 금방 잊어버리게 된다 할 때는 차라리 처음부터 않느니만 못하다. 잘해 보자고 채택한 터이니까 박수는 쳐야겠지만 황폐할 대로 황폐해진 윤리·도덕의식 속에서 어느만큼 실효성을 거두게 될 것인지는 두고 보아야 할 듯싶다.
이런 움직임과도 관련하여 제 아무리 메아리 없는 외침이 된다 하더라도 그래도 거푸거푸 외치고 싶은 것이 역시 우리 사회의 도덕성 회복이다. 그것을 이루어내지 못할 때 우리는 끝내 공멸의 늪으로 빠져들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되어 온 일이기는 하지만 20일 노태우대통령이 임시 국무회의와 당직자 회의에서 깨끗한 공직풍토의 조성을 재강조한 뜻도 거기에 있다고 할 것이다. 이 말을 평범하고 진부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우리의 자정노력은 공직자사회와 윗물부터 시범을 보일 때 비로소 설득력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탄하고 자조하는 데에서 그쳐 버린다면 내일이 어두워진다. 또 최근의 일련의 사태들은 기실 어제 오늘의 일이라고만 할 수 없는 적폐이기도 하다. 그것이 민주발전 과정에서 도마위로 표출되었다는 것뿐이다. 그렇다 할 때 우리는 그를 슬기롭게 극복하여 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점에서 「국회의원 윤리강령」이나 「기업윤리헌장」의 정신은 그들만의 것이 아닌 국민 모두의 것으로 삼아야 한다. 그 실천의지로써 건강사회를 이룩해 나가야 한다.
1991-02-22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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