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의 금요일”… 6백선 무너지던 날

“마의 금요일”… 6백선 무너지던 날

김재영 기자 기자
입력 1990-08-25 00:00
수정 1990-08-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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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휴지조각… 증권투자가들 울상/6백선 돌파 꼭 31개월만에 5백대 복귀/“대통령각하,투자자를 죽여줍소서” 격문/“떨어지게 그냥 놔둬라”… 「증안」에 전화빗발/“정부에 숨겨둔 카드 있다” 막연한 기대도

○“휴장하는게 상책”

개장되기가 무섭게 마지막 저지선으로 여겨지던 종합주가지수 6백선마저 무너지자 증권회사 객장은 초상집같은 분위기.

행여나 하며 실낱같은 희망으로 전광판을 지켜보고 있던 투자자들은 『이제 증권은 휴지조각이 되는 것 아니냐』 『정말 큰일 났다』며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들.

한 투자자는 『이젠 너무 지쳤다』고 투덜대면서 『정부가 증시회복에 이처럼 속수무책일 바에야 하루라도 빨리 휴장하는 게 상책이 아니겠느냐』며 허탈한 표정을 짓기도.

○주문전표 내던져

○…종합주가지수 6백선이 무너진 것은 6백선을 처음으로 돌파했던 88년 1월25일 이후 꼭 31개월만의 일.

이날 서울 명동 개양빌딩에서는 몇몇 투자자들이 주문전표를 밖에다 내동댕이쳐 버리고 한 점포의 시세판을 끄는 큰 소란을 빚었다.

이들은 「대통령각하,민자당 국회의원 여러분,주식투자자들을 죽여 주십시오」 「×××장관 당장 사퇴하라」등의 격문을 써 붙이고 당정을 싸잡아 공격했고 『증권사는 문 닫아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기도.

○“주가도 5공 회귀”

○…대전 점포에서 고위정치인 장례식겸 회복장세를 위한 고사가 치러졌는데 4개월전 지수 7백붕괴 당시와 비교하면 이날의 6백붕괴 현장은 반응의 열기마저 싸늘하게 식어 「탈진증시」증세를 뚜렷이 노정.

그러나 주가폭락으로 인한 정부당국에의 원성은 한층 깊어지고 노골화됐으며 이런 위험한 경향은 소수의 집단행동에서 뿐만 아니라 증권사 및 증권관계기관에 걸려오는 일반투자자들의 전화 내용과 격앙된 목소리에서 감지되고 있다. 전날 종가에서 0.12포인트의 간발의 차로 머물러 있던 6공증시는 이날로 지수 5백대와 함께 5공증시로 되돌아갔다.

24일 하락세는 중동사태를 일으킨 이라크의 쿠웨이트 철수설과 관련이 깊기는 하지만 87년 12월18일 첫 등장했다가 한달 일주일후 완전 철수했던 5백대의 증시 재진주는 「증시부양책」에 기인된바 크다. 민자당은 지난주부터 부양 추가조치를 성급하게 발설했고 정부당국은 누구의 눈에도 확연히 드러나는 「마지못해 응답하는」태도로 일관해오다가 주식시장을 이 모양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중동전 터지면 살때”

○…사태를 냉정히 보는 투자자들은 정부의 부양책 실시여부를 왈가왈부하기전에 장외문제인 중동상황의 원만한 해결이 최근 속락세에 제동을 거는 관건임을 강조한다.

이와 달리 정부에 호의적인 사람들은 정부가 침체회복을 위해 비장의 히든카드 부양책을 마련해 놓고도 중동사태에 걸려 이를 서랍속에 잠재우고 있다고도 말한다.

그 감추어진 카드도 전쟁이 발발해버리면 지금까지의 무수한 부양책처럼 무용지물이 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하락세 부추긴다”

○…이라크로 인한 중동사태가 국내증시에 악재중의 악재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으나 일부 증권사 창구 직원들은 손님들중에 『전쟁이 터지면 사겠다』고 말하는 투자자도 꽤 있다고 전언. 전쟁이 터지면 투매가 쏟아지겠지만 그때가 바로 기다리던 바닥권이라는 것.

또 증시안정기금측에 따르면 6백대 붕괴 전후해서 걸려오는 투자자들의 전화내용이 달라지고 있다. 전에는 투입액보다 더 많이 사달라는 요구 일색이었으나 23일과 24일에는 『힘들여 사들이지 말고 빠지게 그냥 놔둬라』는 전화가 더 우세.

○자금요구 표면화

○…6백선 붕괴로 증시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맥이 탁 풀려있는 와중에서 유독 힘을 얻은 것이 있으니 그것은 정부가 부양책으로 뭘 내놓을지는 몰라도 거기에는 직접적인 자금지원이 꼭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

직접 자금지원은 곧 돈을 주식시장에 풀라는 것인데 이때까지는 아무리 극성스런 투자자들도 의중에만 품고 있었을 뿐 직접 대놓고는 이런 말 하기를 삼가 왔었다.

침체장세를 살리는 즉효약으로서 누구나 정부의 자금지원을 꼽긴 하지만 전국민들이 올들어 유난스런 물가오름세를 걱정하는 판국에 증시에다 돈을 풀어달라는 요구는 너무 이기적인 것으로 비춰왔던 것. 그러나 지수 5백대 추락은 이때까지 터부시되어왔던 이 요구를 공적으로 발설케 하는용기를 일부 투자자들에게 불어넣고 있다.

투자자 뿐 아니라 전문가 가운데서도 이를 공공연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데 이들은 증시에 돈을 풀면 통화팽창이 기정사실이지만 이로 인해 장세가 회복될 경우 증시를 통한 통화환수가 가능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김재영기자>
1990-08-25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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